[Opinion] 재즈 보컬리스트 연구소 (1): 엘라 피츠제럴드 [해외문화]

글 입력 2017.07.09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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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라 피츠제럴드 (1):
"할렘의 빅밴드 객원보컬에서 솔로 가수가 되기까지"



성공적인 국내 재즈 페스티벌들의 부상과 함께, 한국 내에서도 재즈 음악에 대한 관심이 다시 자라나고 있습니다. 정형화된 "스탠더드" 레퍼토리를 (라이브로, 혹은 음반으로) 연주하곤 하는 재즈계의 분위기상, 오늘의 유명한 국내외 아티스트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만큼 기존의 유명한 스탠더드 곡들, 그리고 이전 세대 아티스트들의 계보를 알아가는 것도 재미있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이전 세대의 재즈 보컬리스트들을 소개하고, 10개 남짓의 대표곡들을 통해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보는 코너를 마련해 보고자 "재즈 보컬리스트 연구소"라는 (다소 거창할지도 모를) 제목을 달아보았습니다.

'재즈 보컬리스트 연구소'의 첫 편은, 올해 4월 25일에 탄생 100주년을 맞이한 재즈의 First Lady, 엘라 피츠제럴드와 함께 시작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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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la Jane Fitzgerald (1917.4.25 ~ 1996.06.25)
(이미지 출처: biography.com)


그야말로 재즈 전성기의 시대를 풍미한 엘라 피츠제럴드는 미국의 3대 디바 중의 한 명으로 당당하게 군림하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수많은 보컬들이 동경하고 오마주하는 보컬리스트입니다. 무려 세 옥타브에 이르는 넓은 음역대에, 티없이 맑은 음정에, 깔끔한 인토네이션, 프레이징과 발음에, 난이도 높은 즉흥 스캣까지 완벽하게 소화하는 그녀에게 “재즈의 여왕”이라는 칭호는 더욱 걸맞습니다.



0. 재즈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스캣으로 답하는 엘라





데뷔

60년에 육박하는 화려한 노래 인생을 살았지만, 그녀의 데뷔길은 그녀의 파란만장한 유년기만큼이나 순탄치 않았습니다. 당시 1930년대 뉴욕 할렘의 아폴로 극장에서는 매주 한 번, 신인들을 위한 '아마추어 나이트’를 열곤 했습니다. 길거리를 전진하던 17살의 엘라는 1934년 11월 21일에 그 곳에서 "The Object of my Affection”과 "Judy" 두 곡을 부르며 당당히 우승을 차지합니다. (이 때 우승자에게는 각각 상금 $25과 아폴로 극장에서 1주일 간 공연할 기회가 주어졌는데, 엘라는 단정치 못한 외모를 이유로 상금만 받고 무대에 서지는 못했다는 여담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듬해 그녀는 할렘 오페라 하우스에서 떳떳하게 공연할 기회를 얻게 되고, 그 무렵에 드러머 칙 웨브를 만나게 됩니다. 때마침 보컬이 필요한 그의 눈에 띄었던 엘라는 1935년부터 그의 빅밴드에서 활동하면서, 30년대 스윙의 시대의 중심을 차지합니다. 관악기 빅밴드 편성을 중심으로 한 빵빵한 사운드!의 음악이 유행하던 시기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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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ck Webb Orchestra 시절의 엘라
(이미지 출처: 상 - npr.org, 하 - lindy.mag)


1. You'll Have to Swing It (Mr. Paganini)




2. I'll Chase the Blues Away




객원 보컬 시절에는, 음반 녹음에 참여해도 본인의 이름을 못 올리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이 곡을 계기로 엘라는 !처음으로! Chick Webb Orchestra의 싱글 음반에 본인의 이름을 올릴 수 있게 됩니다.


3. A-Tisket, A-Tasket




기존의 nursery rhyme을 바탕으로 만들어서 큰 인기를 끌었던 엘라의 대표곡입니다. "노란 바구니"를 잃어버려 어쩔 줄 몰라하는 아이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여담으로, "I Found My Yellow Basket"이라는 후속곡 역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
1939년에 칙 웨브가 세상을 떠나면서 엘라는 밴드의 리더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밴드의 이름을 Ella and her Famous Orchestra로 바꾸어 활동을 이어갔고, 1942년까지 자신의 밴드와 함께 거의 150곡을 녹음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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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 굿맨 (Benny Goodman)의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공연 (1950)
(이미지 출처: jazzinphoto.wordpress.com)


한편으로 엘라는 당대에 "스윙의 제왕"이라 불리었던 클라리네티스트 베니 굿맨(Benny Goodman)의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콜라보 음반을 내고, 비슷한 시기에 Ella Fitzgerald and Her Savoy Eight이라는 밴드에서도 활동하며 정말 부지런히 활동했습니다.


4.  Good Night My Love 



5. If That's What You're Thinking




Ella Fitzgerald and her Savoy Eight 밴드 시절의 곡입니다.



솔로 활동 시절

1942년에 밴드 활동을 정리하면서 그녀는 비로소 솔로 가수로 활동을 시작합니다.  빅밴드를 중심으로 한 30년대의 화려한 스윙 음악이 쇠퇴하면서, 코드 진행이 복잡하고 템포가 보다 빠른 “비밥” 재즈가 부상하던 시기입니다. 그렇다 보니 빅밴드에 맞춰졌던 엘라의 창법도 자연스레 바뀌게 되는데,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인 즉흥 '스캣'은 이 때부터 비로소 형태를 갖추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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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pie)의 밴드와 함께 한 공연 (1947)
엘라는 인터뷰에서 "길레스피와 함께 하던 시절이 본인의 스캣 창법에 큰 영감이 되었다"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telegraph.co.uk)


아래의 곡들은 엘라의 스캣에 집중하며 들어보세요. 
특히 7번째 소개곡 "Oh! Lady Be Good"에서는, 관악기들의 음색을 모방하는 엘라의 화려한 스캣을 엿볼 수 있습니다. ("A-Tisket, A Tasket"을 오마주한 부분도 있으니 꼼꼼히 들어보세요.)


6. Flying Home



7. Oh! Lady, Be Good



*
엘라는 빅밴드 시절에도 데카 음반사와 함께 했고, 솔로로 활동하면서도 데카 음반사에 남았으니 장장 20년 동안 한 음반사와 함께했습니다. 그녀는 솔로 활동 중에도 당대의 수많은 아티스트들과 협업하면서 꾸준히 히트곡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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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ca 음반사에서 발매한 엘라의 앨범들 중 일부
(이미지 출처: discogs.com)
 

8. (I Love You) For Sentimental Reasons 




Delta & The Rhythm Boys와 함께 한 곡입니다. Delta & The Rhythm Boys와 함께 녹음한 다른 곡 It's Only A Paper Moon 역시 당대에 큰 히트를 쳤습니다.


9. I'm Beginning to See the Light




The Ink Spots와 함께 한 곡입니다.


10. Baby, It's Cold Outside




지금까지도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스탠더드 캐롤 곡입니다. 
Louis Jordan과 함께한 버전입니다.


11. Lullaby of Birdland (JATP Live)




필자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엘라의 곡입니다. 스튜디오 버전도 좋지만, 제가 소개해드리고 싶은 버전은 Jazz at the Philharmonic (JATP) 콘서트의 라이브입니다.  엘라는 자신의 매니저를 편으로 공연 기획가 노만 그란츠를 만나게 되는데, 이를 계기로 Jazz at the Philharmonic (JATP) 콘서트에 정기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엘라와 노만 그란츠와의 인연은 계속됩니다.)



커리어의 또 다른 전환점

엘라는 인지도가 상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흑인이었기 때문에 그 당시의 미국에서 음악을 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마릴린 먼로의 독특한 로비(?) 덕택에, 엘라가 50년대 할리웃 재즈바 무대에 어렵사리 설 수 있었다는 씁쓸한 일화가 유명하지요.) 초대가수임에도 공연장 뒷문으로 출입해야 했고, 투어 공연 도중에 비행기 탑승 거부를 당해 공연을 취소해야 했던 어처구니 없는 일들을 겪기도 했습니다.  

이 고충을 가까이서 본 노만 그란츠는, 피츠제럴드를 중심으로 한 독립 음반사 Verve를 차리게 되고, 엘라는 Verve와 함께 커리어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다음 편에 자세하게 소개하기로 하겠습니다.


**
[소개곡 모아듣기]




***
[다음 편 예고] (2) 세기의 콤비: 엘라 피츠제럴드와 루이 암스트롱
Verve 음반사 시절 엘라는 커리어의 전성기를 누리게 됩니다. 수많은 아티스트들과 콜라보를 하지만 유독 루이 암스트롱과 함께한 음반들은 당대에도, 지금도 최고의 명반으로 평가 받곤 합니다. 재즈 보컬리스트 연구소 두번째 편에서는 "세기의 콤비", 엘라 & 루이의 앨범과 명곡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강희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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