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랑의 단상, 대담 [문학]

미적지근한 온도의 소모,
글 입력 2017.05.30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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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사랑의 단상, 대담 [문학]
_ 미적지근한 온도의 소모,


사랑을 정확하게 표현해야 하는 우리는 (,상대가 다치지 않도록,) 사랑을 공부한다. 한 사람은 ‘연애 중’이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한다. 항상 ‘연애를 하는 중’이거나 ‘연애를 준비하는 중’이기 때문에. 자신은 언제나 ‘연애 중’이라고 대답했다. 우리는 언제나 연애 중인 사람으로서, 그런 자세로 사랑을 하고 사랑을 준비하고 실험한다.
 
나의 사랑에 대한 공부가 본격적으로 개시되었다는 걸 깨달은 때는 철학자 레비나스의 증언들을 맹신하는 나를 발견했을 때나 (레비나스는 본래 그를 스승이라 부르며 자칭 제자가 되어버린 이를 둔 철학자이다. 설사, 그를 비판하거나 그의 논리를 꼬집는 이들도 어쩐지 그의 논리 내에서 모순점을 발견할 뿐 레비나스 자체의 철학을 비판하지 못한다.), 나의 연인과의 키워드를 떠올려 사랑의 단상의 작은 제목들과 비추어 보았을 때다.

가령 그에 대한 나의 사랑이 한없이 속절없는 것으로 느껴질 때, 그럴 때는 레비나스의 철학으로 나를 달래고, 그와의 대화와 만남의 시간 속에서 강렬했던 언어는 까먹지 않게 적어뒀다가 사랑의 단상의 작은 챕터들을 뒤적여 그 단어를 제목으로 삼은 챕터를 꺼내 읽는다. 노랫말 속에서, 영화 장면 속에서, 소설책 속 한 줄에서 발견하던 사랑의 대목들이 보다 길게 늘어지고 문장이 되어 가고 있다. 압축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됐던 대화들은 문장이 되고 산문이 되면서 그에 대한 나의 이야기, 혹은 우리의 이야기는 정의될 수 없음 속에서 수많은 실험을 통해 구체성을 띄려 한다. 이 구체성은 아마 그에게 나의 사랑을 상처 없이 전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필수 요소일 것이다.
 
 

선언. 사랑하는 사람이 감정을 억제하고, 사랑하는 이와 더불어 그의 사랑, 자신, 그들 자신에 대해 끝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는 성향. 선언은 사랑의 고백에 관계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관계의 형태에 관계된다.
 
1. 언어는 살갗이다. 나는 그 사람을 내 언어로 문지른다. 마치 손가락 대신에 말이란 걸 갖고 있다는 듯이, 또는 내 말 끝에 손가락이 달려 있기라도 하듯이. ……. 또 다른 한편으로는 나는 그 사람을 내 말 속에 둘둘 말아 어루만지며, 애무하며, 이 만짐을 얘기하며, 우리 관계에 대한 논평을 지속하고자 온 힘을 소모한다.
 
(사랑스럽게 말한다는 것은, 끝이 없는 미적지근한 소모를 의미한다. 오르가슴을 느끼지 못한 채 관계를 맺는 것이라고나 할까.)
 
롤랑 바르트, 『사랑의 단상』 대담 일부
 
 

나는 사랑의 단상 중 ‘대담’ 부분을 반복해 읽는다. 메모장에 옮겨두길 반복한다. 우리의 언어가 서로를 향해 간질간질한 손가락이 되어서 스멀스멀 올라올 때, 우리는 서로를 문지른다. 그리고 끊임없이 얘기하고 우리의 대담을 이어나가기 위해 온 힘을 소모한다. 정말이지 우리는 끝이 없는 미적지근한 소모를 위해 온 힘을 다한다. 나는 이런 우리를 마주할 때 서로를 사랑하고 정확히 사랑하기 위한 실험 과정에 우리는 이미 깊이 빠져있다는 걸 깨닫는다.
 
그와 나는 쓸모없는 얘기들로 밤을 지새울 수 있고 우린 서로를 껴안고 쓸모없는 이야기로 가득히 주변을 채운다. 우리 사이를 오가는 손가락들은 간질간질하고 따뜻해서 미적지근한 그 온도 그대로 서로의 살갗에 착 달라붙는다. 그렇게 우린 사랑을 공부하고 실험하는데 이 실험의 자세에서 중요한 건 무엇보다 실험을, 그러니까 우리의 대담을 끝내지 않으려는 미적지근한 온도의 소모라는 걸 되새기며 정확한 사랑을 향해 간다.
 




위의 사진은 인스타그램 zzee_wonn 의 사진입니다.


[양나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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