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한글 위에 멋을 짓다 - 날개, 파티 [시각예술]

글 입력 2017.03.30 05:14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1.jpg
 
2.jpg
 

  제 멋대로 솟고 튀는 듯한,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흔한 서체, 바로 안상수체다. 이렇듯 그의 대표작은 뾰족뾰족하고 자유로운 개구쟁이인듯 보이지만, 사실 한글의 가장 기본적인 질서를 품고 있다. 3월 14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아직 움츠러있던 마음을 깨우듯 잔잔하지만 즐거움과 신선함을 선물하는 그의 작품과 그의 ‘부록’을 마주해보았다.





  신문이든 전시장이든, 그 어디에서든 그를 한 번이라도 만난 적이 있다면 파란 작업복을 입은 그의 모습을 익숙하게 여길 테다. 파란 작업복과 빨간 공이 달린 털비니 모자, 이렇듯 전혀 예상치 못한 조합의 차림을 한 그는 누구인가?

  ‘안상수체’라는 이름으로 우리들에게 익숙한 그는 타이포그라피라는, 어찌 보면 디자인에 있어 가장 근본이 되는 영역에 날개를 달아준 시각디자이너이자 그의 철학을 담은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 PaTi의 교장이다. 그의 약력은 이미 어디서든 찾아 볼 수 있을테니 생략하고, 나는 그의 디자인 인생에서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는 그의 대표작, 안상수체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보려 한다.


3.jpg
 

  1985년 발표한 안상수체는, 그의 작품 이전의 대부분의 서체들이 그러했던 네모꼴을 벗어난 빼쭉하고 쬬뼛한 모양새를 가지고 있다. 훈민정음을 보면 ‘끝소리에는 첫소리를 다시 쓴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끝이 다시 시작이 되고, 겨울이 다시 봄이 되는 ’우주의 원리‘를 적용한 것’이다. 한 글자를 이루는 초성, 중성, 종성의 크기 혹은 모양이 어떤 위치에서든 똑 같은 안상수체는 이러한 한글의 기본 원리를 담았다고 한다. 또한 손글씨처럼 굵기의 미묘한 차이와 삐침이 있는 기존의 서체들과는 달리 어느 모로 보던 일정한 직선과 컴퍼스를 대고 그린 듯한 동그라미는 마치 도형들로 이루어진 그림을 보는 것만 같다. 그림을 읽을 수 있게 만들었다면 그것이 바로 안상수체가 아닐까.

  작가와 작품들이 모두 한글과 문자에 집중하는 것은 문화란 ‘글자에 담기는 것’, ‘문화 자체란 글자’라는 그의 작가로서의 정체성 때문이다. 그의 작품세계를 잠시나마 들여다보면, 그에게 있어 ‘타이포그라피’라는 것은 그의 ‘작품세계의 시작’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의 작품은 다양한 형식으로 글자, 우리의 ‘한글’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날개라고 불러주세요.”


  안상수는 한 인터뷰에서 "우리 교육이 어미의 것을 자꾸만 부정하고 남의 것을 따라 하는 데만 급급하단 생각이 들었다. … 어미의 것을 다시 보고 보다 삶에 밀착한 현장 중심 디자인 교육을 실험하기 위해 PaTi를 세웠다. 내겐 '부록' 같은 삶이다."라고 이야기했다. 그가 디자인한 교육, 이를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라 할 수 있겠다. PaTi는 문화의 뿌리가 되는 문자에서 시작하여, 모든 것을 이루는 디자인에 대해서 배우는 안상수의 배우미들이 모인 학교이다. 이 곳에서 그는, 배움에 날개를 달아주는 이가 되고 싶다고 한다. 그의 호이자, PaTi의 교장을 뜻하는 용어인 ‘날개’는, 그에게 있어서 ‘부록’과 안상수 자신을 이어주는, 단어, 그 이상의 존재인 것 같다고 생각한다.

  PaTi에서는 이렇듯 전통에 대해 스스로 존중하는 문화를 지향한다. 날개도, 배우미도, PaTi에서는 대부분의 외래어를 순우리말로 바꾸어 사용한다. 그 중 가장 대표적으로 알려진 것이 디자인을 ‘멋지음’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디자인이란 무언가를 멋있게 만드는 것, 멋을 지어낸는 것, 바로 멋지음이다.
   


4.jpg
 
5.jpg
 
6.jpg

 
  안상수와 그의 멋지음 PaTi가 함께 멋을 지어낸 전시장에 들어서면 안상수체를 포함한 그의 작품들이 맞이해준다. 나에게 그의 작품들 중 일부는 도형도와 같은 정제된 느낌을, 일부는 붓이 종이 위에서 물처럼 흐른 듯 한들한들한 느낌을 주었다. 아카이브, 영상, 실크스크린 등 여러 형식을 가진 그의 한글을 지나오면, PaTi가 모시는 스승들의 얼굴이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린 커다란 원 형태의 아카이브 플랫폼이 펼쳐진다. 그 플랫폼에서 만나게 된 배우미들의 모든 수업 결과물, 프로젝트 등의 기록물들은, 작은 부분 하나하나들이 이루는 배우미들의 가치관과 정체성들은, 한 명 한 명이 그 자리에 작품들 대신 우뚝 서있는 것처럼 나에게 매우 직접적인 다채로움을 보여주었다.
  안상수와 PaTi의 공간에서는 관객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과 워크샵 또한 이루어지고 있다. 넓은 색색의 배움을 보여주는 그들의 공간이 또 다른 이들의 배움으로 채워지는 순간이다.


7.jpg
 
8.jpg
 
9.jpg
 
10.jpg
 
11.jpg
 
12.jpg
 
13.jpg
 
14.jpg
 
15.jpg
 
16.jpg
 
17.jpg
 


 

  ‘홀려라!’ 몰입을 우리말로 풀어낸 이 말은 공동체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가 스며든, 일상 속 사람의 감정과 가장 가까운 민화의 정신이자 안상수와 PaTi의 디자인 철학이다. 안상수는 몰입을 통해 상상력과 창의력이라는 에너지를 얻어, 새로운 멋을 창조하는 것이 멋지음이의 기본적인 태도라고 이야기한다.

  우리의 것, 하지만 정말 근본적으로는 우리들의 어미의 것과 멋을 끊임 없이 꿈꾸고 탐색하고 향하고 발견하고 또 새롭게 지어내는 그들의 잔치에 초대되어, 기쁜 마음으로 다녀온 나들이었다. 


18.jpg
 
 
정다빈.jpg
 

[정다빈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