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연극 '개,돼지'_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글 입력 2017.03.27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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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개돼지’라는 제목이 강하게 뇌리에 박혔다. 적나라한 표현에 연극을 보기도 전에 내용이 다 예측될 것만 같았다. 그렇기에 너무나 뻔한 내용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나 자신을 반성하다가 돌아오는 것은 아닌지 염려되기도 했다. 사실상 전반적인 스토리 자체는 예상했던 대로 흘러가긴 했다. 그러나 극을 진행시키는 방식이 새로웠고, 다양한 연극적인 시도를 해서 참신했기에 지루하지는 않았다. 작년에 다양한 사건들이 터지기 이전에 이미 기획된 극이기에 정치적 이슈를 암시하려는 것을 극단이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요즘의 우리나라 상황과 맞물려 시기적절한 내용을 다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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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화가이자 여성 운동가인 나혜석을 다루는 <경희>,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무마시키기 위한 대규모 축제 <국풍 81>, 10년 동안 숨겨져 왔던 대학 풋볼팀 감독의 성폭행 사건인 <터치, 다운>. 이 세 사건을 중심으로 각 이야기가 전개되어 극은 민중이 ‘개, 돼지’라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극의 초중반은 일단 실제 일어났었던 이 사건들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다룬다. 극을 보기 전에 <경희>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국풍 81>은 들어보기만 했고, <터치, 다운>은 왠지 뉴스에서 한 번쯤 나올 것만 같은 내용에 대충 그런가보다 하고 말았다. 그러나 극을 실제로 보니 그들이 겪은 과정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심각했고, 그들이 겪은 현실을 더욱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세 이야기를 교차적으로 배치하여 극이 진행되는데, 장면이 빠르게 전환되어서 재미있었다. 약간은 산만하고 정신없다고 느껴지지도 했지만, 한 이야기만을 늘여놓는 것보다는 훨씬 긴장감이 있었고, 극 자체의 속도감이 붙는 느낌이었다. 또한 아무래도 등장인물이 많아지니까 당연히 한 배우가 여러 인물을 맡아서 연기할 수밖에 없었는데, 각 스토리에 맞춰서 그들의 연기가 완전히 바뀌었기에 배우들의 다채로운 연기를 볼 수 있던 것도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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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각각의 사건들도 파격적인 그 내용 때문에 충격적이었지만, 무엇보다도 그것을 대하는, ‘개, 돼지’로 표명되는 일반 시민들의 모습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단편적인 생각으로 추하게 행동하는 그 모습이 전혀 낯설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대를 뛰어넘어 그 옛날에서부터 오늘날까지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그리고 어쩌면 지금 우리 스스로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사건의 진실을 보지 못하고, 혹은 알려고도 하지 않고 그저 권력과 언론의 속임수에 놀아나는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었다. 또는 자신의 분명한 생각이나 의견 없이 대다수의 생각에 따라 휩쓸리기도 하는 모습에 괜히 그것을 보는 내가 더 부끄러워지는 기분이었다. 지금은 연극의 관객으로 철저하게 외부자의 시선에서 바라보고 있지만, 그것이 현실 속에서 우리 스스로의 모습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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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우리가 아는 대로 그렇게 흘러간다. 경희는 홀로 외로움에 사무쳐 자신의 지난날을 오히려 후회하면서 쓸쓸한 노년을 보낸다. 권력의 힘에 눌린 시민들은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제 소리를 내지 못하고 거짓 증언을 하기에 이른다. 풋볼팀 성폭행 사건도 피해자들 모두가 이를 덮어두려하다가 결국 이를 폭로한 선수만 그 세계에서 쫓겨나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 주변에서는 항상 그들의 상황을 더욱 힘겹게 하는 수많은 개와 돼지의 탈을 쓴 사람들이 있었다. 그 당시 시대적 상황 속에서는 더 나은 생각을 할 수 없었고, 당시 언론에 의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차단되고, 인터넷에서 난무하는 잡다한 추측과 이야기들에 속은 것이라 하더라도 민중들이 개, 돼지의 탈을 쓰고 하는 행동들이 용납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불편한 진실들을 가득 담고 극이 끝나기에 사실 집에 가는 길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결국 개, 돼지의 탈을 벗지 못한 우리들의 모습과 오늘날까지도 민중은 개, 돼지라고 당당하게 외치는 정치인들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맴돌았기 때문이다. 시대가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만 같은 우리들의 모습에 씁쓸했다. 오늘날 우리들을 밖에서 바라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현실 속의 우리의 모습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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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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