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광장을 채우는 저항의 몸짓- 광장극장 블랙텐트 무용주간 [공연예술]

무용인 릴레이공연 '몸, 외치다'
글 입력 2017.03.11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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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극장에 다녀왔습니다. 틈날 때마다 갑니다. 
3월 첫주는 무용주간이었습니다. 그 중 제가 보고 온 공연은 2월 28일에 있었던 '프로젝트 정오의 1인' 팀의 공연입니다.

공연 제목보다 팀의 이름을 언급한 것은 설명을 위해서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현 정권에 대해 비판적 스탠스를 취했거나 야권의 주요 정치인들을 지지한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정부가 직접 작성한 '블랙리스트'에 올랐고, '관리' 당했습니다. '정오의 1인'은 목요일 정오마다 광화문광장에서 블랙리스트에 항의하는 범무용계 1인 퍼포먼스 시위에 동참해온 무용인들의 프로젝트 그룹입니다.

저는 무용을 잘 모릅니다. 다만 즐겨보고 열심히 봅니다. 이 날은 광장극장의 의미나 지속성 등 여러 가지를 생각하며 찾아갔던 터라 더욱 많은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겸사 두서 없이 몇 자 적어봅니다. 

몸짓이 탁월한 무용수들이었습니다. 그들을 보며 "나는 무른 몸이다"라는 문장이 떠올랐고 얼마간 그 문장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들과 내게는 작동하는 중력이 다른 것 같습니다. 단단하달까, 쫀쫀하달까, 불규칙한- 아니 '규칙 없는' 부드러움. 초반부를 채운 어느 무용수의 몸짓 한 컷이 머릿속에 사진으로 박혔습니다. 

거의 즉흥으로 구성될 것이란 이야기를 공연 시작 전에 언뜻 들었습니다. 내공 있는 선생님들이 대거 함께 출연하는 무대였고, 음악도 여러 악기와 사운드가 다양하게 사용된 즉흥 라이브였습니다. 
공연 중후반쯤 한 무용수가 나왔습니다. 즉흥적인 음악에 그야말로 '즉흥적으로' 템포를 맞추기 시작합니다. 그리곤 이내 몸짓만으로 '박자를 가져가버렸습니다.' 이를테면 앞박을 탄다거나 뒷박을 탄다거나 그런 차원이 아니고, 즉흥이라 하여 완결성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며, 카리스마적으로 음악을 압도해 끌어가버리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박자를 가져가 몸과 합치시키는 그림이었달까요. '내공이 있다'는 건, '조화'를 순식간에 이뤄내는 것임을, 찰나에 확인했습니다. 정말이지 숨이 턱 차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무용은 추상적이고, 감각적입니다. 무용수들의 몸짓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무용과 시는 닮은 점이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도화된 언어로, 스스로를 혹은 세상을, 달리 감각하게 하는, 낯선 렌즈, 같습니다. 그러자니 무용가나 시인들은 참 고독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무렴 예술가 중 고독하지 않은 사람이 있겠느냐마는...)

무용은 진보적인 장르입니다. 무대 밖에서야 어떨지 몰라도, 무대 위에서는 여남이나 노소의 차별이 없습니다. 성별이 됐든 생물학적 나이가 됐든, 지니고 있는 본연의 특성에 충실한 상태로 각자의 몸짓을 선보입니다. (물론 얼마나 준비된 몸이냐에 따라 잘 추고 못 추는 차이는 있겠지요. 그 잘 추고 못 추는 차이 또한 관객 개개인과 무용수 자신만이 판단하는 영역이라고 보고요.)

무용은 온감각입니다. 오롯이 몸에 집중한다는 것이 무용의 가장 강한 특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몸에 대한 자각. 감각에 대한 인지. 움직임으로 대두되는 표현 언어. 안으로만 굽어지는 팔꿈치처럼 한계가 명확하다가도 다른 근육과 뼈마디를 뒤틀어 팔을 뒤로도 보낼 수 있는 몸짓의 역량. 
무용수들의 무대를 보면 다른 장르에 비해 퍼포머가 자신에게 집중하는 비중이 큰 것 같습니다. (음악이나 연극 공연은 관객과 시선을 자주 맞추는 편이지요.)

저는 무용을 잘 모릅니다. 다만 즐겨보고 열심히 봅니다. 무용수들의 몸과 몸짓을. 
그리고 상상해봅니다. 저 몸은 어떤 과정을 거쳐 얼마나 훈련이 쌓인 몸일까. 저 손짓 하나 고갯짓 하나에 무엇을 실어나르고 있을까. 무용수가 그리는 선도 보고 그림도 봅니다. 내가 탁월하다고 읽어내는 선과, 그이가 관객인 내게 보여주려고 했던 선의 결이 궁금합니다. 답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답이 있는 것처럼 바라봅니다. 그렇게 무용수의 무대에 집중하다 보면, 텍스트 언어로 범람하던 머릿속이 잠시 휴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 날의 공연은 무척 번잡한 며칠을 보냈던 저를 진정시켜주는 공연이었습니다. 

몸에 충실한 작품을 보고 나면 나의 몸에 대해서도 생각합니다. 나의 의지로 다스릴 수 있는 몸, 통제가 가능한 몸을 넘어, 지척의 공기나 타인들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몸, 우주의 일부이자 우주적 흐름을 감각하는 몸, 그런 몸이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을 이해하고 싶다면 아티스트를 통해 이해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막연한 무용 공연은 여전히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광장극장 블랙텐트를 채운 이 주간의 무용 공연들은, 세상과 함께 호흡하고자 하는 무용수들의 몸짓이었음을 알기에 조금은 더 공감하고 이해하기 수월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제가 느낀 광장극장의 관객들은 수준이 아주 높습니다. 극장이 세워진 취지를 이해하고, 극장의 열악함을 알고 있으며, 공연을 보고 후원금을 보탬으로써 극장과 함께 할 줄 아는 관객들입니다. 
탄핵 정국이 끝나고 광장극장이 사라지더라도, 이 곳을 거쳐간 시민 관객들은 공감의 에너지를 품은 채로 일상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공연장 어느 광장에서 관객으로 시민으로 또 스치듯 만나도 좋겠습니다. 


[정한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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