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조금은 무거웠던 우리들의 환상, 그리고 그들의 광대스러움

글 입력 2016.12.07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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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단.소 전문필진으로 활동하면서 소개했던 여러 단체들 중 하나가 연희집단 The 광대였다. 전통연희라는 나름 희소한 콘텐츠를 중심으로 한 달 동안 한 단체만을 집중적으로 기고했기 때문인지 기억에 많이 남았다. 얼마 전 <굿모닝 광대굿>을 보러갈 기회가 주어졌을 때 참석하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 컸기에 이번 10주년 기념 공연인 <용용 죽겠지>에는 고민할 새도 없이 바로 신청해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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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아이였을 때 우리는 쉽게 환상에 취했었는데
어른이 된 우리는 왜 술의 취기에만 빠지는 걸까?
옛 사람들에게는 믿고 의지할 환상이 있었는데
지금 사람들은 왜 환상을 잃어버린 걸까?
아이와 옛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 환상에 빠지고
환상으로부터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걸까?

비를 내려주는 농신(農神)이자
나라를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수많은 이야기와 민화 속에 등장하는
친근하고 신비한 동물 용.

우리 곁을 든든히 지켜주던 용은
왜 더 이상 우리 곁에 없을까?

숨바꼭질을 시작한 용과
자신이 술래인 것을 잊어버린 사람들.
백 년이 넘는 동안 아무도 모르는 곳에
꼭꼭 숨어있던 용을 광대가 찾아 나선다!


1장  그림자의 노래
방방곡곡의 용에 얽힌 설화들이 희미하게 나타난다.

2장  옥토끼 포장마차
포장마차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세 아저씨의 춤

 3장  용용 죽겠지
옥토끼의 그물에 걸려든 세 아저씨의 숨바꼭질

4장  환상의 용춤
환상을 잃어버렸던 세 아저씨가 잃어버렸던 환상과 함께 춤을 춘다.





       생각보다 무거운 메시지 

 포스터와 시놉시스만보고 <용용 죽겠지>가 마냥 재밌고 단순할 줄로만 알았다면 큰 오산이다. 내가 그랬었다. 용, 옥토끼. 용과의 숨바꼭질이라니. 듣기만 해도 동화 속 장면들이 떠오르는 <용용 죽겠지>는 사실 굉장히 진지했다.
 공연 초반에는 취기가 오른 세 아저씨들의 유쾌한 춤판이 벌어지기도 하고 옥토끼들의 익살스러움 때문에 시원스럽게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하지만 세 아저씨들이 옥토끼의 말을 듣고 용을 찾아 나서면서부터는 극이 무거워지는 느낌을 피할 수 없었다. 세 명의 남자들이 용에 대한 환상이 묻어나는 용버들, 용바위, 용추폭포를 차례대로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극의 대부분이 이루어져있었는데, 이 부분이 생각보다 어둡게 그려졌기 때문이다.
 용버들, 용바위, 용추폭포가 쏟아내는 이야기들은 마치 판소리처럼 구슬프게 울려 퍼졌다. 사람들이 용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자신들을 찾았던 과거, 하지만 언젠가부터 현실로부터 철저히 배재된 채 한 때 친구였던 사람들을 멀리서 지켜만 봐야하는 서러움, 아니면 분노 같은 것들이 그들의 곡조에서 흘러나왔다.

 어떤 메시지를 무겁게 전달하는 건 너무나도 가벼운 나머지 무대와 따로 노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번 <용용 죽겠지>는 아무래도 밝은 이미지를 기대했기 때문인지 이러한 무거움이 조금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용이나 옥토끼가 등장하는 만큼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나 전래 동화 같은 분위기였다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보다 자연스럽게 어우러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건 그거대로 너무 진부한 방식이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어느 쪽이 됐든 장단점이 있겠지만, 나로서는 그런 무거움에 대해서는 아쉬우면서도 <용용 죽겠지>가 말하고자 하는 환상이 사라진 현실, 환상을 꿈꿀 수도 있다는 사실 조차 잊어버린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에 대해서는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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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시도, 그 속에 녹아든 그들의 광대스러움 

 <용용 죽겠지>는 완전히 내 예상을 빗나간 공연이었다. 전체적인 흐름도 그랬지만 공연의 구성도 마찬가지였다. 나름 연희집단 The 광대에 대해 알아보았기에 그들의 공연을 직접 보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더 당황스러웠다. 버나놀이나 탈춤, 사자춤같이 기존 그들의 공연을 구성했던 전통연희의 요소들이 단순한 관객의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나중에 프로그램 북을 읽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런 당혹스러움의 원인은 ‘현대무용’에 있었다. 안무가의 글에서 이번 <용용 죽겠지>의 안무는 기존과 달리 현대무용을 접목시켰다는 내용이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물론 그들의 시도는 당황스럽고 낯설었다. 하지만 이런 감정들은 그들에 대한 또 한 번의 감탄으로 이어졌다. 전통연희를 바탕으로 하는 단체에서 10주년 기념 무대에 현대무용을 수용했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들이 대중들 앞에 선보일 콘텐츠에 대한 자신감이 없다면 과연 쉽게 결정할 수 있었던 일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용용 죽겠지>에서 선보인 안무는 어쩌면 조금은 서툴렀을 것이다. 아니, 전통연희가 물들어 있는 그들의 몸에 현대무용이 가미되면서 보다 독특한 몸짓을 이루어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찌됐든 그들에겐 쉽지 않은 시도였음에도 그들은 과감히 수용했고 이를 무대에서 충분히 즐길 줄 알았으며 보는 사람까지도 어깨를 들썩들썩 하게 하는 진정한 ‘광대’였다. 그런 그들의 자신감과 광대스러움, 그리고 여유로움은 무대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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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상풍자극 다운 무대와 조명 
  
 앞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했지만 무엇보다도 이번 공연에서 눈에 띄었던 것은 무대와 조명, 그리고 음악이었다. 환상극답게 무대는 그 자체만으로도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형형색색의 꼬리, 그 꼬리 끝에 걸려있는 달, 한 켠에 자리 잡은 바위는 은은한 조명 아래 동화 속 한 장면처럼 보였다. 또한 1장에서 방방곡곡의 용에 얽힌 설화들이 흘러나올 때는 선명한 노래 소리와 함께 이름 모를 악기들의 은근한 연주와 박수 소리가 맞물려 환상적인 분위기를 더했다. 세 아저씨들이 술기운에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출 때는 공연장 벽면에 그림자가 비추도록 해서 마치 여러 명이 다함께 춤을 추는 듯한 모습을 연출했다. 이러한 부분들에서 환상풍자극에 맞게 좀 더 신비로운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노력들이 엿보였고 이들이 성공적으로 작용해 공연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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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년부터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다’, ‘10년째 공연 중인 연극!’ 이런 말들이 어릴 땐 그리도 쉬워보였다. 뭐 어쨌다는 건가, 그게 그렇게 대단한 건가 했었는데 지금은 안다. 그게 얼마나 고단하고 어려운 길인지. 어떤 일을 꾸준히 10년을 하면 전문가가 된다고 한다. 단언컨대 연희집단 The 광대는 전통연희의 ‘전문가’이다. <용용 죽겠지>는 개인적으로 마냥 좋지만도, 마냥 나쁘지만도 않았던 공연이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광대의 역할, 연희의 의미, 그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탐구가 켜켜이 쌓여 어떤 문학가의 책장과 같은 연희집단 The 광대의 넉넉함만큼은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공연에서 용은 곧 환상이자 이제는 잊혀가는 모든 것들이며 희망이자 순수함이다. 그리고 어쩌면 용은 전통연희 그 자체를 의미할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것이지만 가장 대중들에게서 멀어지기 쉬운 문화예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희집단 The 광대가 사라져가는 용의 존재를 우리에게 상기시켰듯, 연희집단 The 광대는 지난 10년과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전통연희의 건재함을 일깨워 줄 것이라 믿으며 앞으로 그들이 선보일 또 다른 ‘환상’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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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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