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는 오늘도 '불편함'을 구매한다 [문화전반]

'적당한 불편함'에서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
글 입력 2016.11.14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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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법이 '아닌 것'을 사랑하는 마녀, 제니바

“마법으로 만들면 아무것도 아니게 되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中





# 밤늦게, 책상에 늘어놓은 수십자루의 연필을 깎으며 생각한다. 
지긋지긋한 통학생, 축지법이나 할 수 있었으면... 
마법 같은 힘으로 조금이나마 편해진 삶을 상상해보는 일은 늘 즐겁다. 
그나저나 이 연필은 왜이렇게 안 깎이는지.


'마법'을 꿈꾸던 사람들

  이젠 '마법의 힘'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원리를 가늠하기 어려운 기술들은 마치 ‘마법’처럼 편리한 삶을 만들어 준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얼굴을 보며 대화하고, 10초도 안돼서 고화질의 영화를 다운받는다. 더 편하고, 빠르게 누리려는 욕구는 우리를 지금의 생활에 이르게 했다. 시간과 노력의 과정없이도 얻어내는 것, 그것이 '마법'같은 편리함의 매력이다.

  역설적이게도, 편리함에 감탄하던 사람들이 ‘불편함’을 찾아 다니기 시작했다. 애초에 “시간이나 노력이 들지 않는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이. 『라이프 트렌드 (적당한 불편,2017) 』(김용섭 저, 부키, 2016)의 저자는 이제 '적당한 불편’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다고 말한다. 시간과 노력의 절차, '불편함'으로 통칭하던 그 과정을, 심지어 돈을 내고 소비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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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art-magazine.com


  2014년, 베를린에는 '오리기날 운페어팍트'(:원래 포장되어 있지 않다)라는 슈퍼마켓이 문을 열었다. 가게명에서부터 알 수 있듯, 물건을 사려면 직접 포장해 갈 용기를 가져와야 한다. 포장하지 않음으로써 쓰레기를 줄이려는 것이다. 포장재 값이 포함되지 않아 제품들의 가격 역시 저렴하다. 그러나 사람들로 하여금 불편을 감수하게 하는 것은 '저렴한 가격'이 아니다. ‘환경보호’라는 사회적 가치가 이들을 움직인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것, 이를테면 환경이나 안전, 좋은 음식 등을 위해서라면 ‘적당한 불편’을 감수하는 것이다. 저자는 단순히 소비하고 소유하는 것만이 전부인 시대는 지났다고 말한다. 오늘날 어떤 것에 소비하느냐는 그 사람의 가치관과 라이프 스타일, 정체성에 직결된다. 자신의 소비에 의미가 있기를 바라며, 그것이 사회적 가치에 기여하길 바라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예쁘게 깎인 수십자루의 연필을 보면 이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연필의 양이 많다보니 한 시간 가까이 지나버렸다. 벌써부터 잔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샤프 쓰지 그냥..’ ‘샤프심 사서 끼워 넣으면 빠르잖아’
뭘 모르는 소리다. 샤프는 금방 고장나고 그러면 돈도 들고 환경도 오염되고....
그런데 사실 샤프로는 글씨가 예쁘게 안 써진다. 진짜다. 

  '쉑쉑버거'를 먹기 위해 줄을 서거나 홈패션, 셀프 인테리어에 호응하는 것을 보면 그것이 어떤 사회적 가치와 연결되어 있는지 의문이 들지도 모른다. 맛있는 음식? 저렴한 비용? 나만의 인테리어? 멀리서 보면, 어떤 성과물이나 가치를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사람들은 '불편함' 자체를 즐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불편함'은 시간과 노력의 과정을 부르는 다른 말이다. 때론 이 '불편함'이 같은 상품이나 서비스도 더 가치있는 것으로 만들어 주기도 한다. 제거될 것으로만 여겨졌지만, 사실 '시간과 노력의 과정'은 인간적인 삶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이는 성취감과 만족감의 근본 원리이며 이 과정을 통해 행위에 의미가 부여되기도 한다. 여기엔 돈이나 편리함으로는 환산될 수 없는 어떤 것이 묻어 있다. 인간 삶의 많은 것들이 빠르고, 쉽게 얻을 수 있게 되며 생긴 변화인 것이다. 

"편리에 길들여지고, 편리를 욕망하는 사람이 자발적 불편에 관심을 두는 건 
결국 행복해지기 위해서다."
라이프 트렌드 (적당한 불편, 2017) 中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속 마녀 제니바는 주인공 치히로의 방문에 직접 물을 끓이고 차를 내온다. 물레를 돌려 실을 만들고, 뜨개질을 하기도 한다. 마법으로 쉽게 끝낼 수 있는 일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불편함'을 제거하는 일은 마법같은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진짜 '마법'은 오히려 '불편함'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 치히로의 친구들이 직접 실을 엮어 만든 머리끈이 '부적'이 되었듯이. 


[이서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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