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담한 문장의 다락방, 떠오른 것을 빚어내는 어플 < 씀 > [문화 전반]
글 입력 2016.10.02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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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엔 집에 혼자 돌아가는 날 심심함을 달랠 겸 책을 읽으며 발걸음을 재촉하곤 했다. 마음에 드는 책이면 집에 돌아가기 전까지 궁금해서 핑계김에 읽기도 했고. 중간중간 종이에 눈길을 주다가 고개를 들어 사람들도 보고, 횡단보도에서 멈춰서는 순간을 지나면 어느새 집에 도착해 있었다. 유난이다 싶을 수도 있겠지만 그땐 그렇게 책을 읽곤 했다. 책을 도서관에서 고르는 순간엔 마치 자기만의 기준이 확신한 사람마냥 거창하게 이 책 저 책 뽑았다가 다시 집어넣곤 했다. 집에 함께 할 책인지 다시 책장에 꼽힐 책일지를 결정하는 건 마음에 드는 문장이 있는지의 여부다. 대단한 문장일 필요는 없다. 사람들이 말하는 약 3초라는 첫눈에 반하는 순간처럼, 그만큼 찰나의 순간 책의 어느 문장이 눈길을 사로잡으면 그 책과 나의 인연은 시작되는 것이다. 전혀 알지도 못했던 작가가 쓴, 전혀 알지도 못했던 이야기일 수도 있다. 어떤 글이든 우리를 사로잡는 건 결국 문장이다.이 쯤되면 문장의 힘은 대단하다. 칼보다 강할 수 있는 게 펜이라고도 하지 않던가. 하지만 이마저도 편견일 수도 있다. 글은 멋진 '작가님'만 쓰는 거란 생각을 했던 건 아닌가. 물론 전문가의 세계에선 좋은 글과 나쁜 글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등단을 할 수 있는 글과 그렇지 않은 글도 있을테고. 하지만 나에겐 혼자 중얼거리듯 내뱉은 두서없는 독백이라 해서 많은 사람에게 전설처럼 오르내리는 고전보다 귀하지 않은 글인 건 아니다.어플 <씀>은 누구에게나 열린 아늑한 문장의 다락방이다. 누구든 부담스럽지 않게 차곡차곡 잠시 머릿속에 떠오르는 감정과 생각을 차곡차곡 모아둘 수 있는 다락방. 매일 두 번 간단한 소재와 함께 문장의 예시를 함께 올려준다. 어플인데도 아날로그 느낌이 나는 건 첫 화면의 흰 바탕에 빨간 원고지, 글을 쓸 때 누르는 펜촉 모양의 버튼 덕분이기도 하다. 별명은 언제든지 바꿀 수 있고, 원하는 때 글을 쓰고 저장할 수 있다. 공개하고 싶은 글만 공개하고 남은 공개글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다.가끔은 같은 소재라서 결국 전하고자 하는 말은 비슷한 경우도 많지만 그 글은 모두 조금씩 다르다. 다들 이렇게 많이 생각하고, 이렇게 글을 잘 쓰는데 마구마구 칭찬을 전해주고 싶을만큼. 얼굴을 보지 않아도 친근함이 느껴지곤 한다. 매일 수많은 사람과 스쳐지나가지만 그 중에 유독 기억에 오래 남는 사람들이 몇 안되는 것처럼, 차곡차곡 쌓인 글 중에서도 잠시 더 눈길이 머무르는 글이 있다. 어플 <씀>에서 가장 좋았던 순간은 잠시 스크로를 내리던 손끝이 멈추는 그런 순간이었다. 나의 글이 그렇게 눈길이 머무르는 글이 아니더라도 좋다. 어릴 적 일기장과 다이어리를 읽으면서 퍼지는 반가운 미소만큼이나 내가 쓴 글 목록도 나에겐 그런 비밀스러운 즐거움으로도 충분하다.매년 한국 사람들이 손가락에 꼽을 만큼 책을 읽지 않는다는 통계는 최근 몇 년간 큰 변화는 없다. 과거와 너무 다르다며 탄식하는 기사도 많다. 책장을 넘기는 사각거리는 종이와 알알이 새겨져 있는 글과 너무 거리가 멀어졌다며 수많은 원인을 찾고 있다. 여가시간도 줄었고 책 자체를 사지도 않으니 읽지도 않으며, 기껏 사는 책은 대체로 문제집이나 참고서인 팍팍한 사회적 분위기에, 스마트폰 등 책이 아니어도 글을 읽을 수 있는 기술의 발전 때문이라고도 한다. 혹은 시간이 없다는 핑계 때문이라고도 한다. 스마트폰은 하루 평균 20분하는데 책은 6분만 읽는다니까. 하지만 여태까지 혹시 질문을 잘못했던 건 아닐까. 외부적 요인이 아니라 사람과 책 사이의 문제였을지 모른다. 책을 읽지 않게 된 건 책과, 그 속의 글이 우리와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는 아닐까. 어차피 쓰는 사람은 정해져 있고 읽는 사람은 정해져 있는 편이니까. 그리고 책과 그 속의 글을 읽지 않는 것만 꼭 문제인걸까? 아직 우리가 글을 읽는 것보다 쓰는 것이 어색하고 불편한 것은 문제가 아닐까?갑자기 제목을 무엇으로 할까 생각하다가 글이란 건 무엇인지, 쓴다는 것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드라마 <바람의 화원>에서는 그림이 무엇이냐 묻는 단원 김홍도에게 혜원 신윤복이 이렇게 답한다."그림은 그리움이 아닐런지요.그리움은 그림이 되고, 그림은 그리움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그리운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자꾸 떠올라 그림이 되고,또한 그사람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잊고 있다가도그 사람이 다시 그리워지니 이는 그림이 '그리움'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그림이 그리움이라는 멋진 명대사를 보다가 그런 생각을 했다. 글이란 건 문장을 '빚는 것'이고 문장을 쓴다는 건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하고. 세상의 갖가지 맛과 소리를, 사람의 마음을, 현실 곳곳의 광경, 보이지 않는 꿈과 또다른 세계, 이 모든 것을 문장을 쓰면서 수면 위로 모습을 보이듯이 떠올려 놓고, 때로는 그 문장을 보면서 다시 그것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글은 이렇게 떠올려 놓은 것들을 모아 쌓고 다듬어 흩어지지 않고 하나가 되어 나오니 빚어내는 것 같다고. 거칠게 빚어내면 거친 매력이 있고, 섬세하게 빚으면 또 그만의 매력이 있고. 거창하게 말하면 떠오른 것을 빚어내는 게 글이지만, 사실은 그냥 떠오르는 대로 던져놓는 의식의 흐름 소유자인게 함정이지만. 이런 보통 사람도 이런 글을 쓰는데(!) 그냥 만년필 촉을 눌러보시면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다.- 이 리뷰는 문화의 소통을 강조하는 ART insight와 함께 합니다.[장지원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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