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의 사랑 백남준

글 입력 2016.09.20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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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어릴 적 읽었던 위인전 속 백남준은 그저 ‘신기한’예술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냥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갖고 그렇게 텔레비전을 쌓아 놓았는지,
왜 그런 예술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그 후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이번 ‘나의 사랑 백남준’을 통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젊고 가난했던 예술가 커플이
어떻게 고군분투하며 살고 사랑하고 배워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백남준의 아내 구보타 시게코가 들려주는 백남준 이야기.
   

 

백남준과 구보타 시게코


구보타 시게코가 처음 백남준을 봤을 때는 바로 공연장.

얼핏 이상하고 멀게만 느껴질 수 도 있는 백남준의 공연을 보며 그녀는
 ‘세상을 조롱하는 듯한 그의 문화 테러는
내 마음에 깊고도 선명한 인상을 새겨놓았다'(책 p.37)
 라고 표현하였다.

백남준의 공연을 보고 첫눈에 반한 그녀는,
그에게 함께 차를 마시자고 권유하였고
그렇게 그 둘의 직접적인 만남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처음 만난 후 구보타 시게코는
백남준에 대한 애정은 더욱 깊어져만 가고,
 자신도 훌륭한 예술가가 되어 다시 만나리라 다짐하게 된다.

그녀도 또한 일본인인 예술가이다.

 대학 졸업 후 중학교 미술교사로 일하면서
신진작가로 미술계에 첫 발을 내딛고,
 첫 개인전을 연 당시에는
일본 미술계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전위적인 작품을 시도했다.

하지만 너무나도 파격적인 작품이었던 것일까,
 그녀의 첫 개인전의 평은 너무나도 차가웠다.
이런 사회적인 환경 속 작품을 하기 힘들다고 판단했던 그녀는 미국으로 가게 된다.

첫 만남을 있었지만, 아직 둘의 인연이 펼쳐지기 전,
이 부분을 읽고 둘의 모습이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으로 간 그녀는 바로 그 곳 뉴욕에서 백남준을 다시 만나게 된다.

작품으로 계속 함께 있을 일이 많은 둘은 점점 가까워지고
아파트에 같이 살면서 함께 하는 작품도 많아지고
영감을 받은 작품들도 생겨나게 된다.

하지만 백남준은 순회공연을 위해 뉴욕을 비우는 일이 많아지게 되고
시게코의 외로움도 점점 커지게 된다.

그녀는
 ‘아주 이른 나이에 고향을 떠나 세계 이곳저곳을 떠돈 유목민 백남준을
연인으로 만들어 내안에 들어앉히는 것은
어쩌면 처음부터 불가능한 바람이었는지도 모른다’(책 p.115)
라고 생각했다.

계속된 기다림으로 지친 그녀는
백남준이 아닌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게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이혼하고 다시 남준에게 돌아오게 된다.

그녀는 남준을 다시 만나기 전,
 ‘난 당신과 결혼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당신이 거부했기 때문에 못 한 거예요.
그러나 이젠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지금 당장 당신이 있는 곳으로 날아 갈 거에요’(책 p.125)
라고 말하며 바로 남준을 만나러 간다.



백남준의 작품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바로 ‘TV정원’이었다.

1974년 뉴욕 에버슨 미술관에서 이 작품을 처음 선보였는데,
그는 미술관 내에 살아있는 식물들을 풍성하게 들여놓고
사이사이에 TV를 놓아 하늘을 보도록 하였다.

한마디로 정원에 꽃 대신, TV가 피어난 것 이다.

‘바보 상자’라고 불리는 TV였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현대 기계 문명의 꽃이 분명했다.

TV도 얼마든지 자연과 어울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는 남준의 의도는 적중했다.
 


 
백남준의 금의환향

1950년 7월 27일, 전쟁 속 등 떠밀릴 듯 떠나야 했던 고국.
 바로 대한민국을 34년만인 1984년 6월 22일 드디어 돌아오게 된다.

한마디로 금의환향.

공항에 오자마자 많은 플래시 속 남준은
 ‘왜 조국을 놔두고 외국에서만 활동합니까?’라는 물음에
 ‘문화도 경제처럼 수입보다 수출이 필요해요.
나는 한국의 문화를 수출하기 위해
외국을 떠도는 문화 상인입니다.’(책 p.246)
 라고 답한다.

외국에서 많은 작품을 하고 수많은 노력 끝에 인정받으며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백남준’이라는 이름이 기억되기까지.
셀 수 없는 사건 사고들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한국인’임을 잊지 않았고, 한국을 사랑했다.

아무리 외국에서 인정받고 잘나가는 예술인 일지라도
‘이방인’에 그치지 않았을 것 이다.
 

 
구보타 시게코의 작품

한국에서 첫 방문은 남준의 부모님의 산소.

그녀는 매일 같이 각진 모양의 묘만 보다가 둥그란 한국의 산소를 보고
 ‘어쩜 이렇게 부드러우면서도 자연에 동화된 모습인가.’(책 p.254)라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그녀는 ‘한국무덤’이란 작품을 만들게 되었고,
 이 작품은 예술가로서 구보타 시게코가
한국의 무덤에 보낼 수 있는 최대의 찬사인 작품이다.
 
 
백남준은 1996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에도 작품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다.

그가 이 곳을 떠난 후에도 우리들이 기억하고
존경받는 예술인으로 남는 이유는
그가 ‘천재’였던 이유보다 자신만의 예술에 대한
‘확고함’과 ‘열정’이 아니었을까.
 
 
   

  
[나정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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