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연극 라면

글 입력 2016.04.24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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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기 다른 모습의 두 쌍의 사랑은 라면이라는 음식을 중심으로 이해를 향해 나아간다. 극의 제목이기도 한 라면은 은실을 향한 만수의 사랑이자 등장인물들 각각의 개성에 대한 메타포다. 은실 어머니 방여사의 가업을 이어받고싶은 만수, 하지만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라면집을 차리고 싶어하는 만수를 은실은 이해하지 못한다. 한편, 만수는 퍼진 면을 좋아하고 은실은 꼬들면을 좋아한다. 그리고 조연 부부 중 남편인 경필은 라면을 끓일 때 스프를 먼저 넣고, 아내인 희선은 면을 먼저 넣는다. 이렇게 서로 다르지만 스프를 먼저 넣으면 어떻고 면을 먼저 넣으면 또 어떠랴? 어차피 끓여 놓으면 같은 라면인데. 극의 종반 희선이 이렇게 읊조리는 얘기를 들으며 은실은 만수의 미래에 동참하기로 결정한다. 사랑의 크기에 비하면 차이는 사소하다는 것, <라면>의 주제의식을 하나로 압축하자면 이것이겠다.


극의 백미는 극 종반 만수가 은실을 향한 독백을 하며 라면을 끓이는 부분이다. 만수는 포스터에도 실려있는 문구인 '라면은 인스턴트 음식이라고 하지만 정말 맛있는 라면을 먹고 싶다면 신경써야 할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사랑도 그런 게 아닐까....' 등을 독백하며 실제로 라면을 끓인다. 포트에 끓인 물을 부르스터 위에서 예열 중인 양은 냄비에 붓고, 물이 다시 끓어라면 라면을 넣고 스프를 끓이고 집게로 잘 저어주고, 그걸 그릇에 담는다. 라면을 끓이는 동안 소극장 안에 고소한 라면 냄새가 가득 퍼진다. 연극이 관객과 배우가 소통하는 오감예술이라고 말하지만, <라면>은 관객의 후각에 각인되는 자극으로 남는다. '먹고 싶은 연극'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이걸 염두에 둔 것이라면 꽤나 성공적이다. 적어도 '소극장에서 공연되는 그런 저런 연극들 중의 하나'로 관객의 기억 어딘가에 묻혀버리지는 않을 테니까.


반대로 말하자면 극 중 실제로 라면을 끓인다는 시도를 제외하면 특출나게 빼어나거나 혁신적인 면이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배우들의 연기가 특출난 것도, 라면을 끓이는 것 이외의 연출이 특별한 것도 아니다. 각본은 인터넷에서 흔히 통용되고 소비되는 연애와 결혼 담론을 답습한다. 남자는 미래를 향해서 나아가고 여자는 남자를 기다린다. 여자에게 감동을 주고 싶은 남자의 마음을 여자는 이해하지 못한다. 좀처럼 잠자리를 허락하지 않는 여자를 남자는 안타까워한다. 친구들을 만나면 술도 한 잔 하고 외박도 하고 싶어하는 남자들의 마음에 여자들은 관대하지 않다. 여자들은 까다롭다. 남자들은 애가 탄다. 그렇게 서로 달라도 정성을 다 해서 사랑하며 꿈을 향해 나아가고 사랑은 결실을 맺는다. 줄거리를 결론까지 다 말해도 별달리 스포일러가 되는 것 같지는 않다. 극은 한 치의 빗나감 없이 예상대로 흘러가니까.


어떤 면에서는 연애와 결혼의 클리셰를 철저히 답습하는 것이 역설적으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라면>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소비하는 연애 클리셰가 얼마나 남성중심적인 시선으로 그려져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경태가 술을 마시다 새벽 늦게 들어왔을 때 희선은 거실 쇼파에 앉아 도끼눈을 뜨고 경태를 노려본다. 극은 여기까지만 이야기한다. 안방에 들어가 침대 위에서 외로움에 울고 있을 희선을 극은 그리지 않는다. 은실은 연애 초반처럼 열정적으로 자신을 대하지는 않는 만수에게 '이럴 거였으면 포장지를 벗지 말 걸 그랬어'라고 이야기한다. 은실의 관념 속에서도 여성의 순결은 여성의 상품가치를 유지시켜주는 도구의 하나로 전락한다. 이 모든 클리셰에 우리는 익숙하다. 한 발짝 떨어져서 보면 이상한 점이 많은 클리셰에 익숙하다는 점이 찝찝하기도 하다.


각본가가 비교적 안전한 이야기를 택한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한다면, 어딘지 찝찝한 클리셰를 답습했다는 점은 참작할 만 하다. 그렇게 본다면, <라면>에 딱히 눈에 띄는 하자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찾아보기 쉽고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라면 같은 연극이다. 후각적 자극은 <라면>에 그나마 개성을 부여하는 별첨스프 정도라고 해 두자.


[이단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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