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페스티벌 오브 피아니스트: 김태형 Piano

글 입력 2016.04.16 18:45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0414_김태형_포스터.jpg
 





아트인사이트(www.artinsight.co.kr)의 초대로 금호아트홀 아름다운 목요일 시리즈인 피아니스트 김태형의 공연을 감상하고 왔다. 부조니와 슈만 그리고 리스트로 구성된 흥미로운 선곡에 특히 슈만 소나타는 특별히 좋아하는 곡이기 때문에 14일을 정말 손꼽아 기다렸는데 그만큼 굉장히 풍성한 무대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Programs

페루치오 부조니, 10개의 오르간 코랄 전주곡 중, KiV B27(J.S Bach, 피아노를 위한 편곡)
Wachet auf, ruft uns die Stimme, BWV645(눈뜨라고 부르는 소리 있어)
 Ich ruf' zu dir, BWV639(소리쳐 부르나이다)
Nun komm' der Heiden Heiland, BWV659(자 오라, 이교도의 구세주여)

로베르트 슈만, 피아노 소나타 제2번 g단조, Op.22
So rasch wie möglich
Andantino.
Scherzo. Sehr rasch und markiert
Rondo. Presto


I N T E R M I S S I O N

프란츠 리스트, 오르간을 위한 프렐류드와 푸가 a단조, S.462/1(J.S. Bach, 피아노를 위한 편곡, BWV543)
‘순례의 해’ 제2년: 페트라르카의 소네트 104번, S.161/5
‘순례의 해’ 제2년: 단테를 읽고: 소나타풍 판타지 S.161/7
 







1부의 시작은 부조니가 편곡한 바흐의 작품이었다. 바흐의 아름다운 코랄 전주곡들을 연주하기 시작하는데, 아주 조용하고 담담한 무대의 시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빠져들었던 것 같다. 눈 뜨라고 부르는 소리 있어로 시작하여 소리쳐 부르나이다, 뒤이어 오라 이교도의 구세주여 연주가 마무리되는 그 순간까지 아주 잠잠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의 연주를 보고 듣는 동안 보름도 더 지난 부활절이 다시금 생각났기 때문이다. 잠잠히 연주하면서 이따금 시선을 들어 잠시금 올려다보는 피아니스트 김태형의 모습에서 그가 얼마나 깊게 이 작품과 마주했는지를 조금 엿본 것 같은 기분이었다. 찬송을 곡조 붙은 기도라 표현하듯, 김태형은 연주로 말 없는 기도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두 번째로 이어진 곡은 이번 무대에서 내가 가장 기대했던 슈만의 소나타 2번. 단조를 좋아하지 않았던 내 어린 시절에도 처음 듣자마자 사로잡혀버린 작품이었다. 1악장에서 아예 대놓고 가능한 한 빠르게 치라고 명시하는 이 곡을 김태형은 어떻게 연주할 지 정말 궁금했다. 그의 연주는 내가 익숙하게 듣던 템포보다도 더 빨랐다. 그리고 빠르게 쏟아지는 음표 하나하나 사이로 섬세한 페달링이 이어졌다. 그 격정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선율을 통해 뿜어져나오는 에너지는 정말 가슴을 벅차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바로 직전에 (부조니가 편곡하긴 했지만) 바흐의 작품을 접해서 그랬을까, 새삼 슈만 소나타를 들으면서 인생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목가적인 아름다움과 휘몰아치는 격랑이 공존하는 것이 인생인데, 인간은 모든 것이 풍족하여 행복할 때보다는 고통과 분노 나아가 절망과 같은 순간에 더욱 신을 구하고 대면하기에 이르기 때문이다. 피아니스트 김태형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확언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김태형의 1부 연주는 나에게 그렇게 와 닿았다.





2부는 리스트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2부의 첫 곡 역시 리스트의 편곡이기는 하지만 바흐의 전주곡과 푸가였다. 이미 내가 가장 기대했던 작품의 연주가 끝났기 때문에, 사실 2부는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김태형의 연주는 그런 내 마음을 완전히 뒤흔들었다. 이번 공연에서 가장 좋았던 무대를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2부 첫 곡이었던 전주곡과 푸가를 주저없이 꼽을 것이다.


원곡보다 탄력있고 매끄러운 느낌이 드는 리스트의 편곡. 그렇다고 해서 바흐가 담아냈던 그 무게가 줄어드는 것은 전혀 아니었다. 날카로운 긴장감 속에 정열적인 표현들이 이어지는데, 김태형의 연주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납득할 수밖에 없는 연주라고 해야 하나. 왜 피아니스트 김태형을 두고 균형 감각과 논리 정연한 해석을 꼽는지 몸소 느낄 수 있는 무대였다. 조용하면서도 압도적이었다. 김태형이 연주하는 진짜 바흐가, 너무나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이어서 리스트의 순례의 해 페트라르카 소네트 104번이 이어졌다. 아주 아름다운 소품. 언제 들어도 그 평화로움과 감정적인 안정이 물씬 느껴지는 곡이다. 김태형의 이번 공연에서는 전반적으로 인간사의 고락과 이를 관통하는 신의 역사에 대한 고민을 본 것 같았는데, 그 중에서도 리스트의 페트라르카 소네트 104번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즐거움과 행복, 아름다움을 집약적으로 명료하게 보여준 무대였다.



마지막 곡은 리스트의 순례의 해 중 단테를 읽고(단테소나타)였다. 엄청난 에너지가 느껴지는 이 곡은 아주 파격적이다. 듣자마자 지옥편을 연상시키는 불협화음과 연옥의 고통을 보여주는 것처럼 울림이 크고 휘몰아치는 대목들이 이어진다. 그 와중에 천국의 일면을 그려내는 듯한 평화도 존재하지만 기본적으로 이 곡은 피아노곡이면서도 마치 오케스트라를 앞에 두고 있는 것 같이 강렬한 곡이다. 김태형의 연주 역시 그랬다. 이 작품이 뿜어내는 그 에너지와 테크닉을 여실히 보여주면서도 오직 그것만으로 객석을 압도한 것이 아니라 곡의 내용을 상세하게 전달함으로써, 김태형은 그의 연주가 보여주는 설득력에 객석이 몰입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앵콜로는 두 곡이 이어졌다. 두 곡 모두 슈만의 곡이었는데 첫번째 앵콜곡은 피아노를 위한 숲의 정경 중 3번 외로운 꽃이었다. 두번째 앵콜곡은 어린이 정경 중 12번 어린이는 잠잔다였다. 잔잔하면서도 아름다운 두 작품. 김태형은 사색적이면서도 굉장히 묵직한 메시지들을 한껏 담은 프로그램들에 이어 객석이 부담없이 향유할 수 있는 앵콜곡을 준비한 것 같았다.





피아니스트 김태형의 무대를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다. 이번 금호아트홀 공연에서는 김태형의 프로그램 구성, 연주, 해석 그 모든 것에서 사색적이고 진중한 매력이 가득했다. 김태형의 무대가 끝나고 금호아트홀을 나올 때, 내 마음에 달궈진 양은 냄비 속 같은 펄펄 끓는 뜨거운 감동이 가득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그의 무대를 통해 마치 뚝배기 속에서 은은하게 그 열기를 유지해나가는, 그런 감정을 나눠받은 것 같았다. 그의 손끝을 타고 나에게 와 닿은 그 선율들은 삶과 신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들었고 요즘 지쳐 있었던 나에게 아주 신선한 자극으로 다가왔다.



피아니스트 김태형은 "진실한 음악을 전하는 연주자가 되겠다"고 소신을 밝힌 바 있다. 단순히 연주되는 곡을 통해서 청중에게 어필하기 보다는, 곡이 표현하고 싶은 메세지를 같이 공유해서 공감을 이끌어냄으로써 연주가 끝나고 그 곡에 관객이 동화되고 함께 나누는 연주를 하고 싶다는 자신의 포부를 밝힌 것이었다. 나에게 김태형의 연주는 정말 그랬다. 작곡가가 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지를, 그리고 연주자인 김태형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선율과 기교 감정 그 모든 것으로 나에게 나눠주었다. 무대는 끝났고, 이제 내가 피아니스트 김태형에게 나눠받은 이 감정, 생각, 에너지 그 모든 것들로 내 삶의 자리에서 외연을 확대해 나갈 차례다.



이 다음에 피아니스트 김태형을 언제 어디서 다시금 만나게 될 지 알 수 없지만, 나는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이 다음 번에 김태형의 연주를 접하게 된다면, 그는 지금으로부터 얼마나 더 사색과 고민으로 쌓아올린 귀한 연주를 들려줄까. 언젠가 꼭, 피아니스트 김태형이 연주하는 바흐를 들을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석미화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