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도슈사이샤라쿠 [시각예술]
정체불명의 수수께께화가_ 그는 김홍도인가?
글 입력 2016.04.08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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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슈사이샤라쿠 (1779-1825)-그는 김홍도인가?-에도 시대 중기의 우키요에 화가다. 간세이 6년 (1794년) 5월부터 이듬해 간세이 7년 3월까지 약 10개월의 기간 동안 약 145여점의 우키요에 작품을 출판하고 홀연히 우키요에 분야에서 사라진 정체불명의 수수께끼 우키요에 화가로 알려져 있다. 본명, 생몰, 출생지 등은 긴 세월에 걸쳐 불명이며, 그 정체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 왔지만, 정확히 밝혀진 바는 없다고 한다.그중 초기에 그렸던 오쿠비에(얼굴에 테포르메를 가해 그린그림_28점)은 높이 평가되고 있다.배우 오타이오니지/ 1974/ 도슈사이샤라쿠우키요에: 일반적으로는 목판화(木版畵)를 뜻하며 그림내용은 대부분 풍속화이다. 전국시대를 지나 평화가 정착되면서 신흥세력인 무사, 벼락부자, 상인, 일반 대중 등을 배경으로 한 왕성한 사회풍속·인간묘사 등을 주제로 삼았으며, 18세기 중엽부터 말기에 성행하여 스즈키 하루노부[鈴木春信]·가쓰가와 슌쇼[勝川春章]·도리이 기요나가[鳥井淸長]·기타가와 우타마로[喜多川歌磨]·우타가와 도요하루[歌川豊春] 등 많은 천재화가를 배출시켰다. 메이지[明治]시대(1868~1912)에 들어서면서 사진·제판·기계인쇄 등의 유입으로 쇠퇴하였으나, 당시 유럽인들에게 애호되어 프랑스 화단에 영향을 준 것이 우키요에 이다.나카무라코노조와나카무라와다에몬미키노이오마수시다역의 마수수케오노세1세그가 그린 것은 대부분 당시 카부키의 인기배우를 그린 우키오에 판화는 지금으로 말하자면 인기 연예인의 브로마이드로서 당시 모델들의 모습은 사람들의 취향이 반영되어 아름답거나 혹은 늠름하게 그려지는 것이 보통이다.그러나 샤라쿠의 오쿠비에는 인기 배우에서 단역에 이르기까지 모델의 내면을 파헤치는 듯한 리얼리즘으로 일관되어 있으면 예리한 시선이 담겨있다.배우의 속내를 포착한 리얼리즘으로 그려내고 있는 샤라쿠의 그림에 나타나는 얼굴은 결코 아름답다고 할 수 없지만 그 얼굴을 통해 인간의 감정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말하자면 그는 배우라는 인간의 얼굴을 통하여 이면에 숨어 있는 진실을 그리려고 애썼던 것이다.그의 그림이 당대에 널리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고 보기는 힘들 것이다.그러나 대담하게 테포르메 (자연의 형상을 예술적으로 변형 하는것)를 구현한 개성이 강한 오쿠비에는, 율리우스 크르트의 저서 가 1910년에 간행된 이후 국내외에서 높이 평가되어 지금은 일본의 전통적인 이미지를 전달하는 광고탑과도 같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마주치게 되는 그런 ‘야쿠샤에‘가 되었고, 도슈샤이 샤라쿠가 해외에서 가장저명한 일본의 초상화가중 한사람이 되었다.도슈사이 사라쿠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당시 일본인들의 피부색을 대부분 하얀색으로 칠하지만 단조로음을 깨뜨리는 인물의 표정, 그리고 인물과 어울리는 옷감의 색을 선택하고 동작에서 굉장히 단순한 필선을 나타내지만 그 단순함에서도 모든 동작의 필요함을 충족해 내는 데 까지 감탄을 자아내는 그림이다.강인함, 필선에 대한 당당함과 절제를 알고 인물의 개성을 포착해 내는것과 그것을 그림으로 그려서 개성이 보이게 했다는 점, 그 점이 샤라쿠가 과연 10개월간만 그림을 그려서 이정도의 경지로 올랐을까하는 의문에서 시작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도슈사이 샤라쿠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도슈사이 샤라쿠의 그림을 많이 봤음에도 불구하고 관련지식을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워하던 찰나, 의문을 남기는 설을 보았다. 일본에서 10개월만 그리고 홀연히 사라졌던 그는 바로 ‘김홍도’라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이영희교수(한일비교문화연구소장) - 정조 연간 정조는 한동안 통신사 관계가 두절되어 일본내 사정에 상당히 부담을 느껴 당시 연풍현감을 지내고 있던 김홍도를 일사로 일본에 파견하여 일본 내 사정을 그림으로 그려오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김홍도는 중인 신분이었지만 정조는 김홍도를 너무 아껴 당시 지방하급 목민관으로 삼았고 그렇게 일본으로 간 김홍도는 샤라쿠 한자로는 그럴 사 낙낙할 낙, 그림을 그림으로서 행복하다는 뜻의 이름으로 활동했고 부족한 활용자금을 그림을 그려 팜으로서 보충했다는 것이다.이는 그가 국내에서 활동했던 시기 1794년과 1975년의 작품이 전혀 없고 그 기간에 대한 기록도 전혀 없다는데서 연유했다고 한다. 그리고 샤라쿠가 그린그림의 필치가 김홍도의 인물화 필치와 상당히 닮았다는 것 도 상당히 수긍할 점이라고 말한다.*그림 속에서 샤라쿠(寫樂)와 김홍도가 동일 인물로 추측하는 몇 가지 특징(1) 샤라쿠(寫樂)의 그림 중에는 일본어로 해석하기 한시(漢詩)가 있는데, 이것을 이두(吏讀) 식으로 해석해야 뜻이 통하는 경우가 있고, 또 글 속에 자신의 호인 '단원(檀園)'을 가르키는 의미가 숨겨져 있다 점(2) 김홍도의 그림 중에는 발가락 6개의 부처가 많은데, 샤라쿠(寫樂)의 부처 그림에도 발가락 6개의 부처가 있다는 점(3) 샤라쿠(寫樂)와 김홍도의 필선(筆線)의 특징으로 붓 끝이 꺾여 올라간다는 점 등등<그러나 몇 해 전에 샤라쿠와 김홍도의 동일인물 여부에 대해서 KBS TV, 일본의 아사히 TV(1996. 9. 16)에서 다룬 적도 있지만, 아직까지 사실로 확인된 바는 없고, 이영희씨의 추리소설 같은 추측과 가설만 있다고 말한다.>샤랴쿠에 대한 김홍도 설과 같이 샤라쿠에 대한 관심은 일본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눈여겨 보는 바이고 샤라쿠의 그림이 대단히 주목할 만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이미지출처 : google[이경민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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