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역사해석에 대한 작가의 문제의식이 돋보이는 연극 < 달빛안갯길 >

연극 < 달빛안갯길 >을 보고 왔습니다!!
글 입력 2016.02.09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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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안갯길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되는 극단 한양레퍼토리의 달빛안갯길을 보러 다녀 왔다. 연극 달빛안갯길은 일제강점기의 부석사를 시간적, 공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당시 조선총독부가 조선사를 새로이 연구하기 위하여 ‘조선사 편수회’를 발족함에 따라 부석사 발굴 작업이 진행되던 현장에서 본격적으로 연극이 전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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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양식의 건축물이 늘어서 있는 거리를 첫 무대장면으로 키가 큰 두 명의 남자배우가 등장했다. 한 명은 내가 대학로에서 알아본 적이 있는 배우 정원조 님이었다. 두 등장인물은 쓰다 소키치와 이선규였는데, 들뜬 목소리로 새로 시작될 조선사편찬 사업에 동참하는 문제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퇴장하였다.

 바로 부석사로 다음 장면이 이어졌는데, 무대 위 자욱한 안개와 함께 드러난 부석사 조사당의 모습은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경사진 산등성 위로 절간 하나가 들어서 있었는데 바로 조사당으로 지붕은 현실의 것이 아닌 양 구불구불 기이한 형상을 하고 있었고 절간 뒤편으로 무언가를 찾는 듯 서성이는 듯한 모습을 한 검은 나무들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절간 옆에는 윗부분이 평평한 모양의 거대한 바위가 높이 솟아 있고, 그 아래로 나있는 길은 절간에서 무대 바깥쪽까지 나갈 수 있도록 이어져 있었다. 마치 내가 어느 산 속 절에 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해주는 무대장치였다. 역시 대극장이어서 무대장치 스케일이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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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어 등장한 두 인물은 바로 일제의감시를 피해 상해로 망명할 생각으로 부석사에 온 영친왕의 약혼녀 민갑완과 그녀의 외삼촌 이기현이었다. 민갑완과이기현은 낯선 사람과 마주칠 때마다 예민하게 반응하였는데, 비밀스러운 탈출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일본의 앞잡이인 송씨와 마주칠 때 마다 날을 세우며 말싸움을 벌였고, 송씨가 그런 그들의 주변을 맴돌며 사사건건 간섭하는 장면들이 이어졌다. 마침조선사편찬사업을 위하여 부석사에 들른 이선규와도 마주치게 된 민갑완은 그를 감시자로 오해하고 일본인들의 간섭에 대해 신경증적인 반응을 보인다. 한편 이선규는 학자다운 당당한 자세로 조선사편찬 사업에 대하여 자신의 논리를 내세우는데, 요는 근거없는 단군신화를 바탕으로 하는 고조선사를 한국역사로 인정하는 것은 무리라는 내용으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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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부석사에 전설로 전해져 내려온던 석룡이 실제 나타났다는 소문과 함께 인부들이 도망가면서 연극은 새로운국면을 맞이한다. 이기현으로부터 입수한 고서적을 연구하려던 이선규는 이를 반대하는 쓰다 소키치와목소리 높여 논쟁을 벌이게 된다. 바로 이 장면이 갈등이 극으로 치달으며 연극의 주제가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소키치가 주장하는 바는 역사연구의 목적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함이며, 또한 그 미래로 나아감에 있어 방향을 정하기 위하여 역사는 선택적으로 연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역사적 사건을 마음대로 선택하고 자르고 붙여 넣어 편집을 하겠다는 것인데 그런 의도를 적나라하게드러내는 그의 모습에 (너무 대놓고 말하니까 황당했다...) 근대지식인 이선규는 크게 흔들리게 된다.

 특히 연극은 고대사연구 부분에 대하여 지적하고 있었다. 당시 조선총독부는 통일신라 이전의 역사를 부정하고 한민족의 고대사를 축소시키고자 삼국유사에 포함된 단군신화를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치부하려 하였다. 하지만 이기현은 단군신화는 단순한 구전설화가 아니라 한민족의 역사를 내포하고 있으며 충분히 다른 방법으로도 해석될 수 있음을 주장하며 이선규를 설득하였다. 또한 연극은 전설과 설화를 부활시킴으로 역사를 해부하여 민족혼이 담긴 전설과 설화를 무지의 소산으로 치부하려는 당시 역사연구의 목적에 대하여 강한 비판의식을 드러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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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비판의식은 바로 역사연구가 정치흐름과 결부될 경우의 문제점에 대하여 지적하고 있는 것이기도 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특정 세력에 의해 역사의 학문적 연구가 주도될 경우, 충분히 역사는 특정방향성만을 갖도록 유도되어 그 민족의 근간조차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최근 많은 국가들이 역사를 절대적인 관점에서 객관화 할 수 있다는 관점을 견제하고 다양한 관점으로부터의 역사해석을 장려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최근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많은 논쟁이 있어왔다. 또한 많은 학자들이 이것이 세계적인 추세에 반하는 것이라며 반대해 왔다. 역사를 해석하고 대하는 방식에 대한 작가의 문제의식이 잘 드러나는 연극이었다. 또한 극의 전개가 짜임새있게 안배되었고, 대사나 장면들이 의미있게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있었다. 또한 연극은 관객들에게 시종일관 안정되고 진지한 어조로 의문을 제기하였다.

 하지만 연극을 보며 아쉬웠던 점도 있었다. 연극의 주요 모티브인 선묘이야기가 일제감점기라는 현실적 상황과 설득력 있게 이어지지 않았던 점이다. 어쩌면 선묘이야기가 등장인물의 대사만으로 배치되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선묘이야기가 극화될 때 다른 연극적 장치들이 효과를 잃을지도 모르지만, 내 생각에는 연극을 통해 관객들이 전설과 신화를 경험하고 그 안에 동화될 수 있는 방식으로 무대화되었다면 우리에게 전설이 갖는 의미가 더 설득력있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좀더 전설이 한국의 역사와 단단하게 연관지어지고 등장인물들의 삶과 섞이지 않았던 점이 아쉬웠다. 연극을 볼 때 가장 좋은 점은 내가 직접 경험에 동참하고 문제를 “아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느낄 수”있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이 연극은 잘 알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기억에 남는 연극이지만 직접 동참할 수 있는 연극은 아니었다. 하지만 두시간의 러닝타임동안 짜임새있게 드러나는 작가의 문제의식을 쉼없이 따라가며 한국역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었던 비판적 연극이라는 점에서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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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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