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연극 < 나는 꽃이 싫다 >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리뷰, 그래도 엄마는 엄마고 딸은 딸이다.

글 입력 2015.12.2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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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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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한 시간 정도 걸려 도착한 서초 씨어터 송, 도착한 곳은 상당히 작은 소극장이었고,
약 30명 정도의 관객이 앉을 수 있는 좌석이 있었다. 연극 무대는 호텔방으로 꾸며져 있었고,
단은 매우 낮았다. 그렇게 좁은 공간의 연극배우들과 관객들은 바로 옆에서 그 상황을 느낄 수 있었다.
배우가 무대 위에 등장하고 숨소리가 곧바로 들려왔다. 그리고 무대 단 밑으로 조명이 비춰지고 딸 역을
맡은 배우가 등장했다. 딸 앞에는 보이지 않는 호텔 문이 있었고 그렇게 연극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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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의 첫 대사, '너구나', '알아보겠니?'라는 말은 정상적인 모녀라면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다.
이 연극 속 엄마와 딸은 서툴다. 한 번도 제대로 엄마였던 적도, 제대로 딸이었던 적도 없었던 그 둘은
어떻게 엄마로서 해야 하는지, 어떻게 딸로서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이다. 모든 게 다 처음이니까,
엄마가 되는 것도, 딸이 되는 것도 처음 겪는 일있었으니까. 그래서 서툰 엄마는 마음만 앞섰고 표현은 어렸다,
딸은 자격지심이 있어 엄마의 잔소리도 곧이 곧대로 들리지 않는 서툰 딸이다.

이 연극에서 가장 집중해야 할 요소는 역할이다.
가정에서 엄마의 역할은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요즘에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 분리된 역할이 나누어지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아직까지 엄마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 극 속의 딸도 말하지 않는가, 원망했다고 그렇게 답도 없는 원룸에 자신만을
버리고 가서 자신의 삶이 고등학교 졸업도 못하고 자리도 잡지 못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딸의 말이
말해준다. 자신이 힘들었다고 자신의 편인 엄마가 있었길 바랐다고 엄마의 빈 자리가 너무도 그리웠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극 속의 엄마에게 딸들은 전혀 그녀를 엄마라고 믿어주지 않는다. 그런 엄마에게 딸의 역할 역시 빈 자리였을 것이다. 딸들이 엄마의 딸 역할을 거부한 것이다. 그래서 딸들은 역할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극 속 엄마에게는 두 딸이 있으면서도 딸들의 빈 자리를 느끼는 것이다.
그렇게 역할들의 결핍은 여자로서 처음은 딸로 시작했고 끝에는 엄마로 끝나는 대부분의 여자들의 인생에서
다른 인생을 살게 했다. 그들은 여자로서는 살았으나 딸이나 엄마로서는 살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삷을 살게 된 이유는 '선택'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요소는 선택이다.
극 속 엄마는 딸에게 최후의 만찬을 그린 두 화가의 그림을 보여주며 무엇을 집중할지 선택을 했다고
이야기한다. 어떠한 것을 선택했느냐에 따라 달라졌다고 한다. 극 속의 두 모녀가 30년 만에야 만나게 된 것은 30년 전 '선택'에 있었다. 여기서 집중되는 감정이라면 극 속 엄마의 감정일 것이다. 여자, 나 자신으로서 살고 싶었던 30년 전의 나, 그리고 엄마로서의 나 사이에서 갈등을 했고 끝내 나 자신을 먼저 선택했던 엄마의 감정말이다.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는 엄마의 선택, 실제 나였다면 어땠을 것인가, 생활은 나아지지 않고 나 자신은 간호사로서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면, 끝까지 엄마로서의 역할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 나는 아직 딸의 입장임에도 그렇게 입술을 떨며 말하는 엄마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떠한 선택은 인생을 좌우하고 관계 역시 정해버린다. 그러한 선택이 이 둘 사이에 존재했고, 그리고 문제는 이 선택을 돌이킬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그래도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것이다.
화장실에 들어가 울음소리를 물줄기 소리에 가리려는 엄마의 모습, 그를 위로하기 위해 화장실 문을 두들기는 딸의 모습. 그 모습에 눈물이 났다. 결국 역할과 선택에 있어서 정상적인 모녀가 아니었다고 해도 그들이 서로에게 모진 말을 하는 것도, 상처를 받은 것도 다 모녀이기에 서로에 대한 애정이 있기에 그랬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딸이 표현에 서툰 엄마에게 다가가기 위해서 화장실 문을 먼저 두드리는, 그리고 화장실 문이 열리는 장면이 드디어 용서라는 것을 통해 이 묘한 관계가 모녀임을 알려주고 있는 것 같았다.

끝나고 나니 같이 연극을 보러 갔던 어머니의 손을 꽉 쥐게 되었던 것 같다. 앞으로 나 역시 여자이고, 딸이고, 엄마가 될 것이기에, 그리고 엄마 역시 그랬을 것이기에, 더욱 마음에 잔잔한 울림을 주었던 것 같다. 어떤 연극보다 극적인 장면이 연출되지도 않았고, 배우들 역시 2인극이었고, 배경 역시 좁은 호텔방이었지만 그 80분 동안 이 연극은 충분히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딸에 대해서, 엄마에 대해서, 아주 친절하게 말이다.


[고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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