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세잔에 대해 한 순간이라도 의심을 품어보았다면 2 [시각예술]

세잔을 사랑했던 메를로-퐁티, 그의 관점에서 분석한 세잔의 회화
글 입력 2015.09.09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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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를로-퐁티는 회화에 대한 반성이야말로 인간-세계의 관계를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하며 회화를 꾸준히 분석하였다. 그에게 예술은 우리의 삶이 탄생한 원천에 접촉하는 방법이었고,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순수한 공간이었다. 그는 특히 세잔의 작품을 선호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세잔이 평생 ‘생 빅투아르 산’에 대한 일련의 작품들을 꾸준하게 그리며 존재의 의미를 지속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이 메를로-퐁티의 관심을 끌었다.

  세잔의 작품은 역설적이었다. 현실을 추구하는 동시에 원근법을 무시했고, 보이는 그대로만을 그리지 않았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에밀 베르나르는 ‘세잔의 자살 행위’라고 칭하였으며, “그림이 무지 속으로, 세잔의 정신이 암흑 속으로 던져졌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세잔은 감각과 지성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한다고 믿지 않았다. 즉, 형태를 취하는 순간의 사물과 자동적인 구성을 통해 탄생하는 질서를 그리고자 하였다. 이러한 결과로 세잔의 작품에서는 지성, 관념, 지식, 전통 등 모든 것이 자연에 융합된다.

  세잔은 캔버스 위에 인간과 세계의 근원적인 지각적 관계를 드러내고자 하였다. ‘지각의 장’ 내에 어떻게 대상이 존재에 이르는지 연구했던 그는 자신의 지각 세계에 드러난 모습에 충실하였다. 그는 그림 전체의 구도를 재배열하여 원근법의 왜곡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였으며, 시각 내에서 새롭게 탄생하는 질서를 보여주었다. 마찬가지로 그가 하나의 뚜렷한 윤곽선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대상이 하나의 ‘대상’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대상이 갖는 저 너머의 의미를 내포하기 위한 시도였다. 즉, 세잔은 윤곽선을 완전히 포기한다면 사과의 정체성이 사라진다는 사실과 대상의 외면을 확실하게 드러내는 윤곽선이 존재할 경우 사과의 존재적 깊이가 삭제된다는 사실 모두를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세잔은 색채의 변조를 통해 대상을 왜곡시키고 원래의 색과 다른 색으로 다수의 윤곽선을 표현하였다. 이 결과 인간의 눈은 여러 윤곽선 사이의 윤곽선을 인식하게 되고, 빈틈없는 하나의 덩어리를  느끼게 된다. 원초적 지각에서 촉각과 시각이 정확하게 구별되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한 세잔의 기법은 감상자로 하여금 공간의 깊이, 오브제의 촉감을 ‘보는 것’이 가능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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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 세잔, <정물화> - 다수의 윤곽선


  세잔은 하나의 그림을 그릴 때 세심한 붓질을 위해 노력한 화가로 알려져 있다. 한 번의 붓질을 위해 실제로 몇 시간을 고뇌했던 그는 붓질에 공기, 빛, 대상, 면, 특성, 데생, 스타일 등 모든 것을 포함시켰다. 그에게 있어 ‘존재’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은 끝없는 작업이었던 것이다. 오랜 시간의 작업을 거쳐 세잔은 자연을 회화 속으로 끌어들였고, 이는 모방이 아닌 실재의 추구였다. 메를로-퐁티의 후기 사상에서도 제기되는 가시적인 것-비가시적인 것의 대조적 관계는 세잔의 작품에서 ‘가시적인 세계’ 속에 내재되어 있는 ‘비가시적인 세계’로 드러난다. 궁극적으로, 세잔의 회화 탐구를 통해 메를로-퐁티는 존재의 실재가 인간과 자연의 원초적 접촉이며 화가가 존재의 의미를 해방시킨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마지막으로, 세잔은 시각의 우위를 주장하며 인상주의-고전주의 간의 갈등적 양상을 회화의 시각 구조에서 해결하고자 했던 화가였다. 그가 추구했던 왜곡은 단순한 왜곡으로 보이지 않고 자연 속 실제 화면을 구성하는 왜곡으로 존재한다. 즉, 그의 화법을 통해 감상자는 스스로 조직화되어가는 화면을 느낄 수 있다. 풍경의 장면, 정물의 대상, 인물의 개성을 사실주의적 재현으로부터 초월시켜 본질을 파악하는 재창조에 화가로서의 평생을 바쳤던 세잔은 작품성뿐만 아니라 화면 속에서 새로운 조형언어를 구축했다는 점에서 현상학적 가치를 갖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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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세잔, <생 빅투아르 산> - 왜곡


[전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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