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신진 연출가전 뮤지컬 ‘해바라기’

해를 보지 못하는 여자, 모두를 햇빛 속으로 이끌다
글 입력 2015.08.22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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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21일 저녁, 성수아트홀에서 신진 연출가전의 유일한 뮤지컬인 ‘해바라기’ 뮤지컬의 초연이 있었습니다. 관객이 극장을 꽉 채우지는 못했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와서 즐겁게 웃고 갈 수 있었습니다. 
 총 4회의 공연 중 첫 회차이다보니 처음 시작할 때에는 배우들의 표정에서 긴장한 티를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연서 역의 최보영 배우의 웃음이 조금 어색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극이 진행되면서 배우들은 점점 자신의 배역에 녹아들었고 톡톡 튀는 대사와 절제되었다가 터뜨리는 조명 연출이 덧붙여지면서 재미있는 100분을 완성하였습니다. 진행될 리뷰는 줄거리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극은 뱀파이어증후군에 걸린 연서가 한 동네에 슈퍼를 차리고 이사를 오면서 시작합니다. 열심히 이사떡을 돌리고자 하지만 동네 사람들의 태도는 냉랭하지 그지 없습니다. 미리 월세 걱정하는 집주인, 정신이 이상한 할머니와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노처녀 딸, 집 안에서 도무지 나오지를 않는 작가까지, 동네는 조용할 날이 없습니다. 집주인 재만은 수복(할머니)의 슬픈 사연이 담긴 물건들을 쓰레기로 취급하고, 이 때문에 태양마저 가려버린 수복의 짐들을 전부 정리할 것을 독촉합니다. 이를 지켜본 연서는 할머니를 도울 방법을 모색하고 동네 사람들에게 한 명씩 찾아가 도움을 요청합니다. 
 솔직히 이 부분에 대해서는 ‘왜 저렇게 발벗고 돕지?’라는 삐딱한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연서는 빛을 보지 못하지만 굉장히 씩씩하게 잘 자라온, 캔디같은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지나치다보니 이 동네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고, 아예 이 세상에 발붙이고 있는 것 같지 않은 인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저 착한 사람이라서 할머니를 도우러 다닌다고 생각하기에는 이상하게 개연성이 떨어져 보였습니다. 물론 남을 도울 때 ‘그냥’ 도울 수도 있지만, 어떤 디테일을 추가했더라면 좀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서의 도움 요청과, 연서의 베풀어주는 행동(정전 시 특히 두드러집니다)에 꽤 감동받은 듯 보이는 동네 사람들은 할머니를 돕고자 하지만, 우현(작가)은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고 할머니에게 마음의 상처를 줍니다. 그리고 할머니가 실종됩니다. 
 이때 나오는 음악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초반 슬프고 애절한 분위기로 진행되다가 할머니의 생사를 확인한 이후에는 빠른 비트로 편곡된 음악이 할머니가 본인의 이름을 부르며 찾아다니고 서로 엇갈리는 등 극의 분위기를 더욱 익살스럽게 만들었습니다. 편곡은 이 뮤지컬에서 꽤 중요한 포인트인데, 극 초반 아버지를 기다리며 희망적으로 부르던 노래가 극 후반 연서 아버지의 죽음 이후 한층 애절해진 분위기로 흘러나오기 때문입니다. 같은 노래이지만 분위기와 표현법이 달라진 노래는 슬픔을 더욱 강조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할머니를 찾고 은근한 러브라인이 형성된 이후 다같이 막걸리를 마시며 부르는 취중진담에 관한 곡은 뮤지컬의 발랄하고 행복한 기운이 잔뜩 들어간 노래였습니다. 심지어 따라부르고 싶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노래를 하면서 러브라인에 맞게 배우들이 시선처리를 신경 썼다는 것이 정말 많이 느껴졌습니다. 특히 우현이 연서를 힐끗힐끗 바라보는 시선은 정말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들었습니다. 
 보름 후 돌아오기로 했던 연서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연서는 크게 슬픔에 잠겨 두문불출합니다. 하지만 우현과 동네 사람들은 계속 연서의 집 문을 두드립니다. 처음 연서가 이사떡을 돌리기 위해 마을을 돌아다녔던 것과 대비되는 장면이었습니다. 연서는 마을 사람들의 응원과 함께 집 밖으로 나오고, 아버지와 함께 햇살 비추는 날 언덕을 올라가기로 했던 약속을 우현과 지키기로 합니다. 그리고 그 전까지는 밤이 배경이었기 때문에 뒷 배경의 별빛 조명과 잔잔한 흰색 조명이 주가 되었던 것과 완전히 대조되게 연서가 햇빛을 가득 받는 그 순간 주황빛, 노랑빛 조명이 강타했습니다. 콘서트의 하이라이트를 방불케하는 강렬한 조명이었고, 연서에게 느껴지는 햇빛이 이럴 것이라고 생각되어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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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뮤지컬에서 조명의 이용과 곡의 편곡을 제외하고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남자 주인공 우현과 여자 주인공 연서의 설정입니다. 우현은 작가이고, 연서는 대사 중에서 ‘옆집에 작가님이 산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다’라는 말을 반복합니다. 뭐가 저렇게 신기한걸까, 곰곰히 생각해보았습니다. 연서는 자신이 직접 접할 수 없었던 밝음의 세상, 낮의 햇빛을 작가가 써낸 글들로 만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모순되게도 작가인 우현은 밖으로 나오지 않고, 빛을 보려 하지도 않습니다. 빛을 피했던 남자와 빛을 보지 못하는 여자의 사랑 이야기인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집주인 재만 역의 김신용 배우와 노처녀 딸 애란 역의 조연희 배우의 열연입니다. 물론 수복 역의 양말복 배우의 애처롭고 안쓰럽기도 하지만 또 너무나 순수해서 웃음을 자아내는 연기도 인상적이었지만, 김신용 배우와 조연희 배우의 열연은 단연 돋보였습니다. 집주인은 극 내내 웃음을 끌어내는 역할을 톡톡히, 200% 해냈고(물론 이는 톡톡 튀는 대사의 덕도 컸습니다) 조연희 배우의 솔로 넘버는 이 뮤지컬 솔로 넘버 중에서, 오히려 여주인공보다도, 더욱 뇌리에 남았습니다. 두 배우의 대사 전달력이 워낙 훌륭했고, 전혀 어색하지 않고 정말 그 세상 속 사람들인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애란의 솔로 넘버 중에서 어머니를 원망하며 ‘내 꽃잎을 모두 떼어갔다’라는 부분에서는 시적인 가사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청춘을, 인생을 모두 아들과 남편을 잃고 미쳐버린 어머니의 뒷바라지를 하며 살아온 애란의 처연함이 강력히 다가왔습니다. 
 이러한 뛰어난 부분이 있는가하면, 조금 부족하게 느껴진 부분도 있었습니다. 앞서 여주인공의 극 초반 캐릭터가 이 세상 발붙인 사람이 아닌 것처럼 발랄한 점이 그랬고, 몰입을 방해하는 우현의 가창력이 그랬습니다. 특이하게도 이 뮤지컬에서는 마이크를 이마 부분에 달았는데, 우현은 극 중 유일하게 앞머리를 덥수룩하게 내린 캐릭터여서 그런지 노래 부를때의 볼륨이 상대적으로 작았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 평범한 대사를 할 때는 괜찮았습니다. 노래 부를 때의 소리 크기가 다소 아쉬웠습니다. 노래 부를 때의 볼륨은 연서도 조금 아쉬웠습니다. 맨 앞자리에서 공연을 봤으므로 마이크 소리가 잘 안들린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다른 세 배우에 비해서 두드러져야할 주연배우들의 소리가 작게 들린 것은 큰 아쉬움을 낳았습니다. 
 또한 주인공이 빛을 보면 안된다는 설정이 극 초반에 슈퍼를 열지 않는 부분에서 잠깐 드러나다가, 계속 극이 밤으로 설정되다보니 이 설정이 익숙해지고 또 묻히게 되었습니다. 중간에 할머니의 실종, 재만과 애란의 러브라인 등에 ‘햇빛을 볼 수 없는 여자, 햇빛을 갈망하다!’라는 부분은 완전히 사라지고, 잊혀졌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극 후반에 가서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햇빛을 보고싶다고 하자, 저는 조금 뜬금없이 느껴졌습니다. 우리 일상이라는 것이 하나의 주제를 향해 달려가는 것은 아니고, 우리네 일상을 보여주려고 했다는 점에서 이런 전개를 이해할 수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만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순간순간 재미는 있었지만 '그래서 뭐?'라는 느낌이랄까요.

 극은 해피엔딩입니다. 전체적으로 따뜻한 분위기에서 유추할 수 있었지만 보고난 뒤에는 행복해지는 기분이 드는, 해피엔딩이었습니다. 아쉬운 부분들이 점차 줄어간다면 충분히 다시 보고싶은 뮤지컬입니다.

[김나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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