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김연수 -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문학]
글 입력 2015.08.10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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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이 책을 알게 된 건 정말 ‘우연’, ‘우연’이었다. 날씨가 너무 더워 찾아간 도서관 한 귀퉁이에서 내 눈을 사로잡은 책 한 권. 제목이 무엇을 말하고자하는 지 알 수 없었지만 시적인 느낌에 나도 모르게 손이 갔고, 책 표지에 그려진 양갈래 머리를 한 소녀의 뒷모습에서는 왠지 모를 아련함과 쓸쓸함이 풍겨져 나왔다. 이 책에 대한 내 첫 느낌은 그랬다.전체적인 내용을 간략히 얘기하자면, 어린 시절 외국으로 입양 된 주인공 카밀라이자 정희재가 한국 진남에서 자신의 진짜 ‘엄마’를 찾아나가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진짜 ‘엄마’에 대해 숨겨진 진실은 너무나 깊었고 어두웠으며 진실의 ‘검은 바다’에 이미 발을 담가버린 정희재는 이제 옛날의 정희재가 아니었다.이 책은 모호하다. 정말 이 책이 ‘검은 바다’ 속에 빠져있는 것처럼 안개가 가득 껴있다. 어린 여고생 ‘엄마’가 사랑했던 사람은 누구인지, 진짜 ‘아빠’는 누구인지, ‘엄마’에게 낙태하라고 권유하러 간 독일어 선생을 찌른 사람은 누구인지. 모든 진실은 이미 사라져버린 ‘엄마’만이 알고 있는 채로, 진실과 거짓의 소용돌이 속에서 혼란스러워 하고 있는 주인공 희재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이 책의 시점 또한 우리 독자들의 머리를 소용돌이 속에 있게 한다. 희재를 ‘너’라고 부르며 세상을 달관한 듯이 말하는 저 사람은 누구일까. 우리는 한 구절 속에서 ‘너’의 존재를 찾을 수 있다.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건 나의 일이었다. p.228파도는 바다 속에서 생긴다. 바람이 만들어 낸건지 아니면 지구 저 밑의 근원적인 힘에서부터 나오는 건지 잘 알 수 없지만 저 넓은 바다 속에서만 파도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바다는 파도가 하얀 물거품으로 부서지는 순간까지 모든 것을 지켜본다. 마치 희재는 알지 못하지만 자신의 옆에는 늘 자신을 바라보는 엄마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바다가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파도를 만들어내고, 생각한다면 부서질 듯 말 듯 진실에 문 앞에 서 있는 희재를, 자신이 그렇게도 지키고자 했던 희재를 생각하는 건 어린 엄마, 정지은의 일이었다.‘엄마’는 너무나 외로웠고 쓸쓸한 사람이었다. 가족을 잃고 유일하게 자신이 위로받을 수 있었던 존재가 ‘시’였고 ‘시’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대변하고자 했다. 그렇게 고독했던 한 여고생은 하나의 생명을 책임지는 ‘엄마’가 되어버렸다. 세상의 모든 날카로운 것들이 자신을 향해있음에도 그 아이를 지키고자 했다. 아무것도 듣지 말고 아무것도 보지말기를, 가장 따뜻한 은신처를 제공하며 그 아이만을 생각했다. 이제 ‘엄마’보다 더 어른이 된 희재는 자신보다 어린 엄마에게서 그렇게 큰 사랑을 받았고, 그리고 어느 순간 희재는 그 사랑을 이해하게 된다.나는 어린 엄마를 꽉 안았어요. p.229고등학교 국어시간 때, 시를 읽기만 했는데도 눈앞에 그 정경이 생생하게 펼쳐지는 것 같다는 ‘시각적 심상’에 대해 배운 적이 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에게 ‘시’처럼 다가왔으며 내 눈 속에 숨어있던 스크린에 ‘영화’처럼 펼쳐졌다. 약간 먼지가 낀 듯 뿌연 색감의 영화는 여전히 나를 안개 속에 머물게 했지만, 파도는 여전히 그리고 언제까지나 바다의 일이라는 것만큼은 잊을 수 없게 만들었다.<사진 출처 >파도 이미지 : http://cafe.naver.com/emsibt/96602책 이미지 : 네이버 책[유다현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