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김연수 -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문학]

글 입력 2015.08.10 15:1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이 책을 알게 된 건 정말 ‘우연’, ‘우연’이었다. 날씨가 너무 더워 찾아간 도서관 한 귀퉁이에서 내 눈을 사로잡은 책 한 권. 제목이 무엇을 말하고자하는 지 알 수 없었지만 시적인 느낌에 나도 모르게 손이 갔고, 책 표지에 그려진 양갈래 머리를 한 소녀의 뒷모습에서는 왠지 모를 아련함과 쓸쓸함이 풍겨져 나왔다. 이 책에 대한 내 첫 느낌은 그랬다.


dd49c48ba38966dfb991274f4f2904e9_WPD1sdJB.jpg
  

전체적인 내용을 간략히 얘기하자면, 어린 시절 외국으로 입양 된 주인공 카밀라이자 정희재가 한국 진남에서 자신의 진짜 ‘엄마’를 찾아나가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진짜 ‘엄마’에 대해 숨겨진 진실은 너무나 깊었고 어두웠으며 진실의 ‘검은 바다’에 이미 발을 담가버린 정희재는 이제 옛날의 정희재가 아니었다.
 

이 책은 모호하다. 정말 이 책이 ‘검은 바다’ 속에 빠져있는 것처럼 안개가 가득 껴있다. 어린 여고생 ‘엄마’가 사랑했던 사람은 누구인지, 진짜 ‘아빠’는 누구인지, ‘엄마’에게 낙태하라고 권유하러 간 독일어 선생을 찌른 사람은 누구인지. 모든 진실은 이미 사라져버린 ‘엄마’만이 알고 있는 채로, 진실과 거짓의 소용돌이 속에서 혼란스러워 하고 있는 주인공 희재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의 시점 또한 우리 독자들의 머리를 소용돌이 속에 있게 한다. 희재를 ‘너’라고 부르며 세상을 달관한 듯이 말하는 저 사람은 누구일까. 우리는 한 구절 속에서 ‘너’의 존재를 찾을 수 있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건 나의 일이었다. p.228



파도는 바다 속에서 생긴다. 바람이 만들어 낸건지 아니면 지구 저 밑의 근원적인 힘에서부터 나오는 건지 잘 알 수 없지만 저 넓은 바다 속에서만 파도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바다는 파도가 하얀 물거품으로 부서지는 순간까지 모든 것을 지켜본다. 마치 희재는 알지 못하지만 자신의 옆에는 늘 자신을 바라보는 엄마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바다가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파도를 만들어내고, 생각한다면 부서질 듯 말 듯 진실에 문 앞에 서 있는 희재를, 자신이 그렇게도 지키고자 했던 희재를 생각하는 건 어린 엄마, 정지은의 일이었다.


바다.png
 

‘엄마’는 너무나 외로웠고 쓸쓸한 사람이었다. 가족을 잃고 유일하게 자신이 위로받을 수 있었던 존재가 ‘시’였고 ‘시’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대변하고자 했다. 그렇게 고독했던 한 여고생은 하나의 생명을 책임지는 ‘엄마’가 되어버렸다. 세상의 모든 날카로운 것들이 자신을 향해있음에도 그 아이를 지키고자 했다. 아무것도 듣지 말고 아무것도 보지말기를, 가장 따뜻한 은신처를 제공하며 그 아이만을 생각했다. 이제 ‘엄마’보다 더 어른이 된 희재는 자신보다 어린 엄마에게서 그렇게 큰 사랑을 받았고, 그리고 어느 순간 희재는 그 사랑을 이해하게 된다.



나는 어린 엄마를 꽉 안았어요. p.229



고등학교 국어시간 때, 시를 읽기만 했는데도 눈앞에 그 정경이 생생하게 펼쳐지는 것 같다는 ‘시각적 심상’에 대해 배운 적이 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에게 ‘시’처럼 다가왔으며 내 눈 속에 숨어있던 스크린에 ‘영화’처럼 펼쳐졌다. 약간 먼지가 낀 듯 뿌연 색감의 영화는 여전히 나를 안개 속에 머물게 했지만, 파도는 여전히 그리고 언제까지나 바다의 일이라는 것만큼은 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사진 출처 >
책 이미지 : 네이버 책


[유다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