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었다 - 미당 서정주 [문학]

글 입력 2015.05.0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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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키운건 팔할이 바람이었다"  서정주 선생은 말합니다.




자화상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부리 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틔어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서정주 선생의 대표적 시라 할 수 있는 '자화상'입니다. 시련을 겪으며 고통스럽게 살아온 삶에 대한 그의 회고가 엿보입니다. 또한 그러한 회고에 그치지 않고 그런 쓰라린 삶의 회고에 좌절하지 않는 강렬한 생명적 욕구를 대담한 어조로 승화시키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상깊고 애착이 가는 부분은 2연 입니다.
시인의 성장기 시련과 고통을 회고하는 부분이지만 이 쓰라림과 스러짐은 '나'를 키웠다는 것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부분이 아닐까 생각하기 때문이며, 자연의 바람이 나를 키웠다는 낭만적 표현이 더욱 마음을 울립니다.
팔할은 종 노릇하는 아버지, 늙은 할머니, 빈곤에 시달리는 어머니가 이할을 키운 것이라면 나머지 팔할은 젊음의 방황과 시련이 키운 것이라는 뜻입니다.
참고적으로 '팔할'의 'ㅍ'파열음은 '바람'의 음상과 호응을 이루며 절묘한 음악적 효과를 내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 모두의 이마에 기분 좋은 시원한 바람을 느끼게 합니다. ^.^






#1. 미당 서정주, 그를 만나는 공간 "미당시문학관"

서정주 선생의 호인 "미당"이라는 말은 한자 아닐 미, 집 당을 써서 '아직 집이 아니다'. '아직 미완성이다'는 뜻을 나타낸다. 
그래서 가만히 세워두면 넘어져서 끊임없이 폐달을 밟아야 하는 자전거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영원한 노력이라니. 정말 멋진 말입니다. 
마을의 폐교를 미당시문학관으로 멋지게 환골탈태한 이 곳을 소개합니다! 

영원한 노력의 결과물로 그의 문학관에는 이렇게 거대한 자전거 조형물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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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굴로 덮힌 거대한 정문도 운치있게 버티고 섰습니다.
제 눈길을 사로잡았던 특이한 점은 이 곳에 "느린 우체통"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도시에서 떠나 갑자기 Slow 모드가 되버린 듯한 이 곳, 한 번즘 방문을 꼭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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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시문학관 위치 : 
전북 고창군 부안면 질마재로 2-8(부안면 선운리 231번지)
-관람시간:
하절기 9:00 ~ 18:00
동절기 9:00 ~ 17:00
-휴관일: 1월 1일, 매주 월요일


#2. 삶의 전시실

미당 서정주(1915~2000)

그는 20세기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창작 활동 기간만 70년에 이르는 장수 시인이며 천여 편의 시를 발표했다.
우리말을 가장 능수능란하고 아름답게 구사해 한국어가 도달 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를 보여 주었다.
후배 시인들로부터 시의 '정부' 또는 '신화'로 불리운 그는 우리나라 시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시인인 동시에 대표작이 가장 많은 시인이다.
그의 호 미당에는 '아직 덜 된 사람'이라는 겸손한 마음과 '영원히 소년이고자 하는 마음'이 모두 담겨있어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한 그의 삶과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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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대표적 활동은 이렇게 추린다. 
1936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벽'으로 등단 
1941 '화사집'발간
1948 '귀촉도'발간
1975 '국화옆에서', '질마재신화' 발간
1982 '학이 울고 간 날들의 시'
1988 '자화상'
1997 '80소년 떠돌이의 시'
2000 12월 24일 영면. 금관문화훈장 추서


'자화상'을 다시 떠올려 그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었다고 합니다만,
이제 우리로 돌아와서 생각해봅니다. 


'나를 키운 건 무엇이었을까?'


다시 전시실로 돌아가보면 미당의 끊임없는 노력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 나옵니다.
미당이 노년에 암기한 세계 유수의 산 이미지와 친필을 옥상까지 연결된 목재 띠장에 전시하여 옥상에 다다르면 미당과 함게하는 상상의 등산과 인생의 여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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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을 한 눈에 느낄 수 있는 갤러리도 있습니다. 

가족의 공간, 서재 재현실과 미당의 교우관계와 저서들, 미당이 사용하던 유품과 인터뷰 등을 확인하며 미당이 나고 자란 마을과 질마재, 그리고 그의 영혼이 잠들어 있는 곳을 볼 수 있습니다. 정말 미당의 시 같은 마을에서 아름다운 꽃 과 푸르름 속에 잠들어 계신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곳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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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 서정주, 그의 아내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는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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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그의 로맨티스트적인 면모였습니다. (하하하>o<)

친구가 농담조로 넌지시 이렇게 물어봤습니다.


"넌 남편이 죽으면 곡기 끊고 따라 죽을 수 있니?"

뭐???? ㅎㅎㅎ
슬프지만 죽은 건 죽은거고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야지. 
제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우리는 미당의 가족에 대한 설명을 읽고는 이런 남자 어디 없을까. 정말 좋은 분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미당 서정주 선생은 가족을 특별히 사랑했다. 슬하에 두 아들을 두었고 그 아래 손자 셋을 두었다. 그는 자상하고 헌신적인 아버지였으며 인자한 할아버지이기도 했다. 또한 다정한 지아비인 동시에 효심 깊은 아들이었다. 
63년을 함께한 방옥숙 여사는 특히 종종 그의 시에 등장했다. 2000년 10월 10일 부인이 먼저 세상을 뜨자 그도 곡기를 끊고 두 달 반 만에 하늘로 돌아갔다.
자녀와 손자들은 미국에 있고, 아우 서정태 시인이 생가 옆에 초당을 짓고 그의 곁을 홀로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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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 문학이야말로 이 나라 정신문화의 핵이요, 
가장 정채있는 예술이요,
가장 절정을 이룬 보배로운 문화유산이다."
-시인 송하선


나를 키운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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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연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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