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여자도 모르는 모순을 파헤치다, '체홉, 여자를 읽다'[공연예술]

글 입력 2015.03.29 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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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도 모르는  모순을 파헤치다

체홉, 여자를 읽다




김지현(ART Insight 서포터즈 3기 김지현)



[체홉2차-연장]포스터700.jpg


공 연 명 : 체홉, 여자를 읽다.(파우치 속의 욕망)
공연기간 : 2015년 3월 7일 ~ 2015년 6월 7일
공연시간 : 화,목,금_20시, 수요일_17시, 주말,공휴일_18시 
           (월요일 공연없음)
공연장소 : 세실극장
관람시간 : 약 90분(인터미션 없음)
관람등급 : 만 15세 이상
티켓가격 : 전석 30,000원
공연예매 : 인터파크, 대학로티켓닷컴, 예스24, 메세나티켓, 미소나눔티켓
문    의 : 세실극장 02-742-7601







언니: 이거 연극 내용이 뭐야?
나: 불륜얘기래. 야한거임(뻥)
언니: 올ㅋ


이렇게 자그마한 기대를 품고 보러간 연극, '체홉, 여자를 읽다' 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여러 의미로 말이다. 
옴니버스식 구성으로 된 연극은 처음이어서 살짝 걱정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오히려 각 에피소드의 개성이 톡톡 튀면서도 하나의 주제로 연결되어 마치 드라마를 보는 듯 했다. 





먼저 첫번째 에피소드인 '약사의 아내' 는 불륜과 썸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보여줬다. 희곡처럼 배우들이 직접 지시문과 의성어를 읊는 형식이 특색있었다. 덕분에 관객들은 전지적 시점으로 인물들의 속마음까지 알 수 있었다.


약사의 아내.gif


Episode 1. 약사의 아내 - 모두 잠든 시간. 약사의 아내는 오늘도 잠을 청하지 못하고 있다. 젊은 그녀에게 이 약국에서의 생활이 지겹기 때문이다. 약국 이층에 위치한 집에 창문을 열고 기대선 그녀. 우연히 지나가던 장교들의 말을 엿듣게 된다. 약사의 부인이 미인이니 늦었더라도 약을 사면서 얼굴이라도 보자고 떠드는 말이다. 그녀 이상하게 이 상황이 흥분이 된다.
 

약사의 아내가 잠을 못 이루는 이유는 남편에 대한 지루함과 회의감 때문이다. 그런 그녀에게 장교들의 방문은 자극제가 되어 '불륜'이라는 스릴감을 준다. 자신을 높게 평가해준다는 것에 대한 설렘, 자신감, 약간의 흥분이 더해져 한껏 부풀어오르는 그녀의 모습은 미팅에서 내숭떠는 여대생을 방불케 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이 에피소드가 여성들의 모순과 여우본성을 가장 잘 폭로했다고 생각한다. 애인이 있음에도 다른 남자로부터의 추파를 거절하지 않고 즐기는 모습, 여자로서의 자존감 회복에 대한 도취 등. 의도치 않게 '어장관리'를 하는 여자들의 심리가 보인다.

그녀의 모습은 대부분 사람들의 불륜 이유를 보여준다. 부부 간의 소통의 단절이다. 집안에서의 무시와 단절로 사람을 외롭게 만드는 것이 곧 불륜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여자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하고, 사랑 받고 싶어한다. 도덕적 의무를 저버릴 정도로 말이다. 같은 여자로서 나도 그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남자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나였어도 저랬을 것이다. 약사의 아내가 결국 남편을 져버리고 도망 간 이유는 적어도 자신에게 솔직하고 싶었기 때문임을 알기 때문이다. 파우치 속에 고이 넣어두었던 여자의 욕망과 본심, 그 첫 번째였다.





두번째 에피소드, 푸른수염에 대한 에피소드는 불륜보다는 남자들이 꺼려하는 여러 여자의 유형들을 ‘그로테스크 코미디’로 보여줬다. 


푸른수염 와이프들.gif


Episode 2. 나의 아내들 - 라울 시냐 보로다, 즉 푸른수염은 자신을 7명의 아내를 살해한 기괴한 연쇄 살인마의 모습으로 묘사한 오페라를 인정할 수 없다. 그래서 그 관계자들에게 자신의 의중을 전달하고자 편지를 쓰는데...


라울이 자신의 7명 부인들을 죽인 이유를 들어보면 쓸데없이 논리적이다. 나도 모르게 아, 그렇구나. 하고 살인에 납득을 하는 기이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그의 부인들 중 끊임없이 수다를 떠는 부인의 살인 이유는 시끄러워서였다. 그는 아내를 파리에 비유하며, 파리가 시끄럽게 군다면 파리에 대한 연민보다 자기에 대한 연민이 더 크므로 파리를 죽일 수밖에 없지 않냐고 설명한다. 할 말을 잃게 만드는 궤변이다. 수다스러워서, 나에게만 집착해서, 너무 똑똑해서, 사치스러워서, 노래만 시작하면 시끄러워서, 시인과 바람나서, 이렇게 총 7가지 이유가 살인 이유였다. 이 어이없는 이유들로, ‘죽음’과 ‘살인’을 아무렇지도 않게 코미디로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그로테스크 코미디라는 장르의 파워를 처음으로 실감한 순간이었다. 

극을 보며 나는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왜 이 에피소드가 ‘불륜’의 범위에 들어가냐는 것이었다. 불륜=내연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고 보니, ‘불륜’의 사전적 정의는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에서 벗어난 데가 있음’ 이었다. 라울에게 ‘불륜’이란, 인간의 도리를 벗어나 자신의 7명의 아내를 죽인, 사랑을 수용할 줄 몰랐다는 점에서 불륜이 아니었을까. 





세 번째 에피소드는 시골 처녀 아가피아의 이야기로, 불륜의 대상 ‘사프카’를 통해 헤어나올 수 없는 나쁜 남자의 면모를 볼 수 있었다.  


아가피아.gif


Episode 3. 아가피아 - 나, 사프카, 아가피아는 지금 낚시터에 있다. 나와 아가피아는 아는 사이이며, 아가피아와 사프카는 불륜관계이다. 아가피아는 기차소리가 들리면 남편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이 에피소드가 시작되자마자 모든 관객들은 당황스러워했다. 남자 두 명이 우리에게 낚싯대를 겨누고 빤히 쳐다보고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극의 전체적인 분위기도 너무 조용했다. 알고 보니, 이 에피소드가 ‘목가극’ 형식이기 때문이었다. 목가극이란, 목동(牧童)이나 전원(田園)의 생활을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 보고 묘사한 로맨틱한 극이다. 

그 때문인지 극의 배경은 낚시터 주변 숲 속이었고, 중간의 기차소리와 사람들 소리를 빼고는 새소리만 들리는 전원적인 분위기였다. 극중 배우들이 사투리를 사용했다는 것이 가장 인상 깊었는데, 러시아의 시골 분위기를 한국의 사투리로 표현해 전통적 분위기를 살린 각색이 돋보였기 때문이다. 

이야기 속에서 사프카의 행동을 보며, 나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는 무심한 척 하면서 툭툭 챙겨주는, 이른 바 ‘츤데레’ 같은 남자이자 여자들이 다가오면 쳐내는 ‘철벽남’이기 때문이었다. 아가피아의 무릎을 아무렇지도 않게 베고 자고, 꽃도 주지만 정작 아가피아가 잡아주길 원할 때에는 집에 돌아가라며 자꾸 내친다. 완벽한 ‘나쁜남자’다. 

여자들의 심리를 꿰뚫으며, ‘왜 여자들은 조금만 잘 해주면 저렇게 쉽게 넘어올까’라는 건방진 생각을 갖고 있는 남자라니, 짜증난다. 여자의 입장에서는 갖고 노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왜 여자들은 그런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것인지. 거부당할수록 더욱 욕심내고, 갖고싶어하고, 관심받고 싶어하는 가련한 아가피아의 모습에서 불륜에 대한 비난보다는 안쓰러움이 더욱 컸다. 좀 더 나은 사랑을 하고 싶다면 적어도 동등한 위치에서 하던가, 서로 사랑이라도 하던가. 나중에는 불륜을 할 거면 좀 제대로 하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렇게까지 분노하게 하다니, 안톤 체홉이 여자들을 제대로 알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랑’ 이란 얼마나 애처로운 것인지를 보여줬다. 





마지막 에피소드는 우리에게 친숙한, 전형적인 ‘불륜 멜로 드라마’ 였다. 저녁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다.


불행.gif


Episode 4. 불행 - 변호사 일리인은 친구인 안드레이의 부인 소피아에게 긴 시간 구애를 해왔다. 미친 짓인 것을 잘 알지만 제어하지 못하게 된 지도 오래다. 소피아는 그런 일리인의 구애를 항상 거절해 왔다. 그러나 그 거절이란 게 말뿐인 모습이다. 다시 말해서, 거절은 거절이지만 확실하지 않고 모호한, 그래서 듣는 사람은 오히려 더 오기가 발동하게 된다.


에피소드에서 짐작하듯, ‘소피아’는 “안돼요돼요돼요돼요” 로 사람을 헷갈리게 하는 인물이다. 소피아를 보면서 ‘와, 저러는 여자들 진짜 많은데. 어떻게 알았지.’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뭐지 이 작가. 뭔데 이렇게 여자를 잘 알지. ‘러시아의 대문호’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소피아라는 여자에게서, 여자들의 비겁한 면모를 볼 수 있었다. 바로 애매하게 말하고 책임전가하기. 그녀는 일리인이 ‘당신은 늘 애매하게 말해요’ 라고 하자, ‘지금 내가 잘못했다는 건가요?’ 라며 뒤로 빠진다. 불리할 때, 변명거리로 뒤에 숨는 여자들의 비겁함이 잘 드러난다. 하지만 무조건 비난을 해서는 안 된다. 사회적 배경을 살펴봐야 한다. 이 비겁함은 사회적 위치와 주위의 비난 어린 시선이 두렵기 때문에 만들어낸 여자들의 무기이기 때문이다. 만약 욕망에 솔직해져 ‘나랑 도망가줘요’ 라던가, ‘나도 당신을 사랑해요’ 라고 말했더라면, 같이 불륜을 저지른 일리인보다 상대적으로 소피아가 더 비난받는 것이 당시 상황이었다. 사회적 약자였던 여성들은 그래서 애매한 말로 요리조리 에둘러 말한 것이다. 물론 남자들에겐 좀 짜증나지만 말이다. 

이렇게 네 개의 에피소드는 주인공들이 마지막에 기차역에서 만나며 마무리된다. 안톤 체홉이 얼마나 여자들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관찰을 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내게는 무의식적으로 여자들이 행하는 행동들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여전히, 불륜도 사랑인가에 대한 질문에는 깊은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다. 불륜인가 사랑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참고자료 및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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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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