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바로크 빠르게 훑어보기 [시각예술]

글 입력 2015.03.15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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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Baroque)


1. 바로크의 등장 배경


 바로크는 '찌그러진 진라는 뜻으로, 완벽한 구형의 진주라 할 수 있는 르네상스 시대 고전주의 미술과 달리 뒤틀린 형태로서, 그 가치가 낮다. , 이는 조롱과 폄하의 표현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이러한 바로크는 16세기 말에 이탈리아 로마 바티칸에서 종교미술의 형태로 처음 등장했다. 루터가 카톨릭 교회의 부패를 비판하는 95개조 반박 성명서를 내고, -종교개혁을 펼침으로 프로테스탄트가 확산되었는데 로마 교회는 이를 매우 두려워했다. 따라서 그들은 카톨릭의 권위를 재건하기 위해 카톨릭 부흥 정책을 펼쳤고, 결과적으로 미술 분야에서 바로크가 등장하게 되었다. 또한 바로크 양식은 이후 스페인으로 퍼졌는데, 당시 스페인은 강력한 중앙집권적 절대왕정 국가였기 때문에 바로크는 종교미술에서 궁정미술, 즉 세속미술로 변모한다. 절대왕정 군주 역시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한 문화예술 정책의 일환으로 바로크를 이용했다.  



2. 바로크의 특징


      바로크의 특징은 총 다섯 가지가 있다. 첫 번째, 극심한 명암대비가 나타난다. 고전주의의 균질한 명암과는 달리 바로크 미술의 밝고 어두움의 대비는 아주 극명했다. 르네상스의 라파엘로는 후기작 <그리스도의 변용>에서 이러한 바로크를 예고했다. 두 번째는 운동감이다. 고전주의의 안정적인 삼각형 구도와, 정적이고 부동성을 띈 인체상에 비해 바로크 미술의 조각상은 굉장히 역동적이다. 그들은 달려가거나, 비상하거나 공중에 떠 있으며 모든 포즈에 동감을 지닌다. 다음은, 빛과 색이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관념적으로만 색을 칠했으나, 바로크 시대의 화가들은 찬란한 빛을 색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베니스 화파의 화려한 원색에 영향을 받았으며, 중세의 스테인드글라스에도 관심을 가졌다. 네 번째는, 풍부한 질감이다. 바로크 미술가들은 관념보다 현실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물성에 대한 접근으로 마티에르 효과를 냈다. 자유롭고 표현적인 붓질을 통해 시각적이면서도 촉각적인 그림을 그렸고, 그 결과 그림에 생동감을 담았다. 마지막은 다양한 장르의 발달이다. 이전 종교화, 역사화 등은 거의 사라지고 풍속화, 정물화, 풍경화 등이 발전했다. 본 글은 이탈리아 바로크와 스페인 바로크를 구분해 논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변용.jpg


[그림 1] 라파엘로의 <그리스도의 변용>, 명암 대비와 역동성으로 바로크를 예견했다.





3. 이탈리아 바로크 미술


      먼저, 이탈리아 바로크 미술의 선구자는 카라바조이다. 그는 1571년에 태어나 1610년에 몰했다. 카라바조는 앞서 말한 바로크 미술의 특징을 만들어냈다. 그의 그림에는 극심한 명암대비가 등장한다. 또한, 그는 자연주의적 사실주의에 바탕을 두어 철저한 리얼리즘으로 그림을 그림으로써 새로운 미학으로의 전환을 이루어 냈다. 그리고 그의 그림 속 회화 공간 깊이는 얕았는데, 감상자에겐 그림 속의 벽면까지 2~3m 정도의 근경으로 느껴진다. 이는 시각적, 심리적 충격을 야기했다.

      카라바조의 대표작 몇 개를 설명하겠다. <병든 바쿠스>1593년 작으로, 자기 자신을 바쿠스에 대응시켰다. 그림에 나타난 정물들은 독립된 정물화가 아직 나오지 않은 시기에 극사실주의 적으로 생생하게 표현되었다. 또한 그는 1595년 작 <젊은 바쿠스>에서, 역시 주변의 알코올 중독자의 얼굴을 바쿠스에 대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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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3] 왼: <병든 바쿠스>, 황달에 걸린 작가 자신의 얼굴을 대입했다. 오: <젊은 바쿠스>, 알코올 중독자의 얼굴



       다음 <성 마태의 소명>1600년 유화 완성작으로, 로마 콘타렐리 예배당에 위치한다. 콘타렐리 가문은 자신들의 예배당에 마태의 일대기를 그려달라고 부탁하였고, 따라서 <성 마태의 소명> 이외에 <성 마태와 천사>, <성 마태의 순교>가 있어 총 3점이다. 그 중 <성 마태의 소명>은 세속적이고 돈에 집착하던 청년이었던 마태가 예수로부터 나를 따르라하고 부르심을 받는 모습을 담았다. 그림에는 왼쪽의 5명과 오른쪽의 2, 7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왼쪽의 인물들은 로마의 세리(세금 징수원)들이며 16세기의 르네상스 복장을 하는데 비해 오른쪽의 예수와 베드로는 기원 원년의 복장을 한다. 또한, 정신적, 영적인 측면에서 두 집단은 대비된다. 예수와 베드로는 남루하고 초췌한 비참해 보이는 서민의 모습이고, 왼쪽의 세리들은 화려하고 물질적으로 안락하다. 하지만 이들은 정신적으로 안정된 예수, 베드로와 달리 굉장히 불안한 상태이다.  이 팔레스타인 세리들은 유대인들로부터 걷은 세금의 일부를 착복한 뒤 골방에 문을 잠그고 모여앉아 돈을 세고 있었다. 창문도 잠긴 밀폐된 공간에 예수와 베드로가 들어와 있으니 혼비백산해 정신적으로 매우 불안정하다. 이러한 이분법적 구성은 미켈란젤로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카라바조는 바티칸에서 미켈란젤로의 그림을 보고 많은 것을 도입했다. 그림 속 예수의 손은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에서 창조주의 손을 옮겨 놓은 것이며, 인물들은 강하고 뚜렷한 형태감을 지닌다. 또한 형식적으로는 극심한 명암대비가 보인다. 예수 위로 내려오는 성령의 빛과 방 안의 어둠이 대비된다. 그리고 철저한 자연주의적 사실주의에 의해 예수와 베드로의 모습이 서민으로 묘사된다. 그림 속 뒤의 벽이 막혀 회화 공간의 깊이가 얕으며 감상자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효과를 준다.



성 마태의 소명.JPG

 [그림 4] <성 마태의 소명>, 세리 집단과 예수 일행을 비교하면 그림을 더 잘 알 수 있다.



마태 손.JPG        천지창조.JPG

[그림 5,6] 왼쪽의 <성 마태의 소명>의 예수의 손은 오른쪽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에서 영향을 받았다.



        1606년 작 <성모의 죽음>은 더욱 철저하게 현실에 집중한 그림이다. 당시 일반적으로 성모가 죽으면, 몸과 영혼이 함께 천상으로 승천한다고 여겼다. 또한 이후 하늘로 올라가 하늘의 여왕이 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카라바조는 성모의 죽음을 범속하게 평범한 여인의 죽음으로 그려냈다. 따라서 본 주문자였던 카멜 수도에서 신성 모독으로 여겨 그림을 거부하였고 결국 그림을 보고 감명 받은 루벤스가 후원자였던 만토바 공작에게 이를 사라고 부탁하여 만토바 공작의 소유가 되었다. 그림 속 성모의 얼굴은 동거하던 매춘부의 얼굴이고, 몸은 익사체를 보고 그렸으며 맨 발을 내미는 행위는 매춘의 제안이었다. 드리워진 검붉은 커튼은 관객의 상상을 차단시키며 두꺼운 벽은 회화 공간의 깊이를 얕게 한다.


성모의 죽음.jpg

[그림 7] 성모가 범속적으로 묘사된 <성모의 죽음>.




          이 외에도 서양미술사 처음으로 독립 장르로서의 정물화를 탄생시켰는데, 1596년 유화로 그린 <과일바구니>이다. 이제 정물 자체가 그림의 소재가 되며 하나의 독립된 내용으로서 존재하게 되었다. 그는 극 사실주의로 풍요롭고 탐스러운 과일들을 그려냈으며 철학적 메시지도 담았다. 과일 잎의 끝은 시들어 말라있는데 이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즉 아름다운 것들 또한 결국 죽는다는 뜻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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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8] 카라바조는 <과일 바구니>에서, 잎사귀의 시든 부분과 포도의 농익음을 극사실주의로 표현했다.





4. 스페인 바로크




      이탈리아 바로크의 종교미술은 곧 스페인으로 옮겨가 세속미술(궁정미술)로 바뀌었다. 그 중심에는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있었다. 그의 작품 시기는 총 4단계로 나뉜다. 첫 번째는 세비야 시대이다. 다음은 마드리드 시대로, 그는 왕궁의 초상화가로 일했다.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베니스 화풍을 배운 후 마드리드에서 전성기를 맞았다. 두 번째 이탈리아 여행 때에는 바티칸에서 교황 이노센트 10세의 초상을 그렸다. 이후 돌아와 죽을 때까지 마드리드에 살았다.

      세비야 시대의 작품은 1618년 작 <달걀 굽는 노파>이다. 당시 스페인은 찬란한 황금기였고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문화 예술이 최고로 발달했다. 따라서 화가들은 서민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보았고, 이 작품 역시 시장에서 달걀을 구워 파는 노파, 즉 일상생활을 담았다. 카라바조의 영향으로 배경이 짙어 명암 대비가 느껴지고, 노파의 손의 주름과 허름한 옷차림에서 자연주의적 사실주의를 볼 수 있다. 또한 벨라스케스 특유의 장점인 풍부한 질감묘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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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9] 카라바조의 스타일을 이어 받은 <달걀 굽는 노파>



         벨라스케스의 걸작품 <시녀들>은 1657년 작으로, 궁정풍속화이고 아주 큰 사이즈로 제작됐다. 그림에는 총 11명의 사람이 등장한다. 거울 속에 왕과 왕비를 그려 그림 속에 또 다른 그림의 형태를 띤다. 따라서 이 그림은 화가의 자화상이며, 시녀와 공주를 그린 풍속화, 그리고 왕과 왕비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다. 역시 카라바조 스타일로 보이지 않는 창으로부터 빛이 들어와 강한 명암 대비가 느껴지며 화면의 공간 깊이가 얕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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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1] <시녀들 > 속 숨은 요소(거울에 비친 왕 부부 등)를 찾아 보면 재미있다.
















        이상으로, 바로크 미술의 탄생 배경과 특징, 그리고 지역적으로 본 대표작들에 대해 설명했다. 이 글을 읽은 후, 독자들이 바로크라는 큰 주제 아래의 세부적인 요소들을 찾으면서 바로크 미술의 다채로움을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최한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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