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염쟁이 유씨 - 삶과 죽음 중 어느 것이 더 무거울까

글 입력 2015.03.01 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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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 중 어느 것이 더 무거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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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작가가 말했다. 죽음을 생각하면 모든 게 우스꽝스럽다고. 그렇다. 아무래도 죽음이 더 무거운 것 같다. 죽음은 어둡고, 아득하고, 조금은 무섭기까지 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음을 희석하는 것 같다. 연극의 대사처럼. "뇌물 처먹다가 뻥 배 터져 죽어, 그거 보면서 복장 터져 죽어.", "쓰레기차 피하려다 똥차에 치여 죽고.", "시체가 뭐가 무서워. 죽은 사람이 사기 치는 거 봤어?" 극 초반, 죽음을 말하는 염쟁이의 대사는 모두 재미있었다. 죽는다고 죽는다고 죽는다고 말하는데 무겁지 않았다. 대개 죽음을 말하는 것들이 그렇듯 연극 '염쟁이 유씨'도 죽음을 파고드는 짙은 이야기가 아니었다.


염쟁이 유씨 할아버지

전통극의 형태가 가미되었다는 걸 단순한 이벤트성 관객참여가 있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염쟁이 유씨가 전화가 터지지 않는다고 객석에 대고 전화 있는 사람을 찾는다. 연극이 시작되기 전에 전화를 끄라는 안내방송 대신이었다. 공연 도중 울리는 전화벨은 죄다 유달리 시끄러운 것들이라고, 끄는 척 진동으로 돌리지 말고 정말로 끄라고 했다. 극의 시작부터 무대와 객석이 구분되지 않았다. 염쟁이 유씨를 찾아온 기자 선생은 심지어 맨 앞줄에 앉은 관객이었다. 무대 위의 배우가 아니라 정말 염쟁이가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의도적인 관객참여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형태였다. 곡소리를 하게 하는 것도, 관객을 무대로 불러서 연기를 시키는 것도 노련했다. 이 연극이 이토록 오랫동안 공연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관록과 내공

배우 혼자서 염쟁이와 장사치와 아버지와 아들과 조직폭력배 두목과 부하와 4남매를 연기한다. 특히 염쟁이-장사치의 실시간 1인 2역 연기가 굉장했다. 장사치 등장을 위해 소품을 두고 나왔다고 말하는 게 염쟁이 유씨인지, 배우 본인의 애드립인지 관객은 혼란스러워했다. 예상하지 못한 연출이 아니었는데, 배우의 연기가 장면을 재미있게 만들어서 뻔하단 생각이 들지 않았다.

무대가 낯선 기자 선생을 연기하는 관객을 다루는 솜씨도 굉장했다. 하루 이틀하는 게 아니라지만 관객의 멋쩍은 반응을 능숙하게 받아쳤다. 관객의 어설픈 것들이 모두 재미있는 것이 되었다. 


웃음과 눈물

죽음이란 주제로 가벼움과 무거움을 넘나든다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그래서 웃음과 눈물의 코드가 얼마나 적절하게 연출되었는가에서 흔한 연극1이 되기도 하고 퀄리티 있는 작품이 된다. '염쟁이 유씨'는 후자였다. 

극이 전개되는 동안, 염하는 과정을 소개하는 유씨를 보고 있으면 시신에 대해 추측을 하게 된다. 극 후반부에 시신의 정체가 밝혀지면 객석에선 훌쩍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온다. 눈물 한두방울 또르르 흘러내리는 게 아니라, 손수건이든 휴지든 꺼내서 눈물진 얼굴을 닦아내야 할 정도의 슬픔이었다. 


죽은 사람 썩은내보다 산 사람 썩은 냄새가 더 고약하다고 했다. 몸뚱아리 어디 하나가 썩어가는 줄도 모르고 산다고도 했다. 살아있는 것들이 더 무섭다. 죽음이나 시체보다 내 뒤통수를 때릴지 모르는 살아있는 인간이 더 무섭고, 내가 나를 파먹으면서도 모르는 게 더 무섭다. 살아있는 염쟁이가 살아있는 관객에서 삶과 죽음을 이야기한다. 아주 노련하게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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