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누군가의 용기가 되어 줄, 글쓰기에 미친 여자들 - 뮤지컬 브론테 [공연]

글 입력 2024.05.10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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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을 쓰고 살아야 하는 사람이구나, 생각할 때가 종종 있다. 글 쓰는 일이 마냥 좋고 즐거워서 하는 생각은 아니다. 오히려, 글쓰기가 두렵다. 텅 빈 용지에 한 문장, 한 문장을 겨우겨우 꺼내어 보지만 이내 꼴 보기가 싫어진다. 그렇게 몇 시간이고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 보면 싫증이 난다. 내 머릿속의 생각을 끄집어내지 못하고, 계속 읽고 싶은 매력적인 글을 완성하지 못하는 나에게도 화가 난다. 글을 쓰는 매 순간 포기하고 싶다.


그러나 나는 단 한 순간도 글쓰기를 포기한 적이 없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지나, 형편없는 결과를 마주해도 계속 글을 쓴다. 글쓰기가 나에게 어떤 의미이길래 온 힘을 다해, 질기도록, 끊임없이 글을 쓰려고 하는지 궁금해진다.


생각해 보면, 나는 그 답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 글쓰기를 놓지 못하는 것 같다. 글을 쓰는 건, 내 안에 갇혀 나를 괴롭게 하는 어떤 것들로부터 해방되는 일, 곧 자유로워지는 일이다. 내 안에 갇혀 있는 생각과 감정들, 그리고 무수한 이야기들을 쏟아낸다. 나만의 언어로 세상 모든 것을 재정의하고 규정해 본다. 나를 둘러싸고 있던 실체 없고 흐릿했던 것들이 내가 인식하고 감각할 수 있는 무언가로 탈바꿈한다. 그 지난한 과정에서 괴로움을 이겨내고, 나를 발견하고, 치유해서 마침내 나를 구한다.


그래, 글쓰기는 타인과 구별되는, 어떤 것에도 휩쓸리지 않는 단단한 내 세계를 구축하는 일, 내 삶의 주인이 되는 일이었지. 그렇게 나는 다시금 글쓰기가 나에게 어떤 일이었는지 되새기며, 그저 써 내려갈 뿐이다.


여성이 인간으로 존재할 수 없었던 빅토리아 시대에, 여성에게 글쓰기가 금지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남성과 결혼해 순종적이고 헌신적인 아내와 어머니가 되는 것만이 여성에게 허락된 유일한 삶이었던 시대에,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세상 모든 것을 생각하고, 표현하며 누구의 통제와 개입도 허용하지 않는 독립적인 여성은 얼마나 위협적인 존재인가.


다행스러운 것은, 그 불합리한 시대에도 자기 삶의 주인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불온한 여자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영화로도 제작된 소설 <작은 아씨들>, 뮤지컬 <레드북> 등 나는 ‘글 쓰는 여자’라는 단어가 존재할 수 없었던 세상에서, 기꺼이 글 쓰는 여자의 삶을 살았던 불경스럽고 별난 여자들의 이야기가 좋다. 뮤지컬 <브론테>에는 그런 여자가 무려 세 명이나 등장하니, 나를 위한 작품이라 해도 무방하다. 그 주인공은 샬롯 브론테, 에밀리 브론테, 앤 브론테. 각각 세계 문학사의 굵직굵직한 작품으로 남은 <제인 에어>, <폭풍의 언덕>, <아그네스 그레이>를 쓴, 2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작가’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는 그들이다. 


뮤지컬은 글에 대한 세 자매의 열정과 집념, 서로 다른 견해를 보여주는 에피소드로 구성돼 있다. 가난과 질병으로 힘겨운 시절에도, 아내와 엄마, 혹은 가정교사의 삶을 살라고 강요하는 사회의 압박에도, 그들은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글쓰기는 언제나 그들의 ‘놀이’로, 소설은 그들의 ‘방패’가 되어주며, 소설 속에서 그들은 ‘거인’이 되기 때문이다. 셋은 언제나 글에 대해 이야기하며 스스로를 ‘글쓰기에 미친 인간들’이라 명명한다. 


세 사람 모두 글에 대한 대단한 애정과 집념을 보였지만, 글을 통해 이루고 싶은 것은 각기 달랐다. 샬롯은 글을 통해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자신을 자유롭게 해줄 경제적 안정을 얻고자 했다. 브론테 자매들에게 처음으로 책 출간을 제안한 것도 샬롯이다. 샬롯과 가장 대립하는 둘째 에밀리는 사람들의 인정이나 돈은 중요치 않다. 그녀에게 글은 자신의 거칠고 혼란스러운 내면을 분출해 낼 수 있는 유일한 창구다. 막내인 앤은 글쓰기와 글 자체보다 글을 통해 세 자매가 하나로 화합되는 일에 더 관심을 보였다. 


브론테 자매는 그들에게 자유를 가져다줄, 브론테만의 이야기를 출간하기 위해 글쓰기에 몰두한다. 이제 글은 더 이상 자신들을 마냥 즐겁고 행복하게 해주는 ‘놀이’가 아니다. 샬롯과 에밀리는 잔뜩 신경이 곤두선 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글에만 전념한다.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땐 초조함을 느끼며 짜증을 내기도 한다. 세 자매를 하나로 묶어주는 매개로서의 글을 사랑했던 앤은 ‘경쟁하듯 글을 쓴다’며 달라진 분위기에 겁을 내지만 그런 그에게 샬롯은 차갑게 대답할 뿐이다. “이제 우리도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해.” 


시간이 흘러 서로의 이야기를 낭독하는 날. 처음으로 강한 확신을 느꼈다며 미친 듯이 써 내려간 에밀리의 거칠고 음산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샬롯은 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넘겼다는 평을 들을’, 돈이 되지 않는 에밀리의 이야기에 경악하며 그를 힐난한다. 에밀리는 자신의 이야기가 ‘모든 사랑이 숭고하지 않고, 모든 사람이 천국에 갈 수 없는, 그곳에 관한 이야기일 뿐’이라 맞받아친다. 샬롯은 작품 속 세계를 통제하지 않았던 에밀리에게 작가 자격이 없다고, 에밀리는 그런 샬롯에게 자신은 그저 등장인물들의 이야기에 숨을 불어넣었을 뿐이라고, 샬롯의 이야기는 ‘죽은 것 같다’고 응수한다. 


가장 좋아하는 넘버인 ‘찢겨진 페이지처럼’의 장면이다. 갈등하는 언니들을 보며 괴로워하고 어떻게든 두 사람을 중재하려는 앤, 하지만 앤의 노력이 무색하게 샬롯과 에밀리는 정제되지 못한, 격한 감정을 미친 듯이 쏟아낸다. 에밀리와 샬롯은 자신들의 글을 너무나 사랑하기에, 결코 그 글을 포기할 수가 없다. 결국 그들은 가장 사랑하는 서로에게 상처 주며 서로 다른 이야기를 출간하기로, 각자의 글로 세상에 나아가기로 한다. 그런 그들에게 글을 처음 쓸 때 서로를 위했던 마음과 함께여서 행복했던 순간을 상기시키는 건 막내 앤이다.


지금껏 익히 듣고 보아왔던 이야기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는 대개 갈등 상황에서 늘 ‘지혜롭다’. 먼저 양보하고, 배려하고, 자신의 몫을 포기하고, 희생함으로써 갈등을 봉합해 낸다. 여성 캐릭터가 소리나 고함을 치고, 소위 감정적으로 군다면 그것은 그 여성의 어리석음과 못된 심성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격한 감정을 드러내는 이유는 남성과의 사랑, 혹은 가정의 평화든 어떤 식으로든 남성과 연관돼 있다. 


하지만 뮤지컬 <브론테> 속 브론테 자매들은 그런 현명하고 지혜로운 여자들과는 거리가 멀다. 샬롯과 에밀리는 양보하고, 타협하고, 희생하려 하지 않는다. 자기 글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 애정으로 그들의 감정은 격해지고, 그걸 감추려 하지 않은 채 마구 드러낸다. 자신의 세계가 투영된 그 글을 온전히 지켜내기 위함이다. 앤 역시 갈등을 중재하려 하지만 그것 역시 앤이 생각하는 글쓰기의 의미, 즉 자매들 간의 지지와 화합을 실현하기 위해서다. 배려하고 희생하지 않고, 부끄러운 줄도 모른 채 자기 감정을 마구 발산해 내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것은 끝까지 밀어붙여야 하는, 이 어리석고 이기적인 여자들의 격정적인 무대가 마음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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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글을 지키기 위해 끝내 갈라설 수밖에 없었지만, 브론테 자매는 누구보다 서로를 아끼고 사랑했다. 현실적이고 냉정하며, 자신도 인정할 만큼 오만한 면모를 보였던 샬롯. 하지만 샬롯은 자신의 재능을 알아채지 못하는 에밀리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브론테 자매가 용기 내 출간한 첫 책의 실패에 낙담한 동생들을 위로하는 믿음직스러운 맏언니었다. 샬롯은 극 내내 브론테 자매의 능력을 감히 의심하지 않았다. 그녀는 늘 동생들이 지닌 가능성을 믿었고, 그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뮤지컬 <브론테> 속 브론테 자매들이 시대의 제한과 자신들을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언어로 써 내려간 이야기를 세상에 당당히 드러내 보일 수 있었던 것은 샬롯의 신뢰와 지지 덕분이었다. 에밀리에게 처음으로 강한 확신을 주었던, 그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따라 글을 완성하라 말해준 ‘정체불명의 미래에서 온 편지’의 발신인도 미래의 샬롯이었다. 비현실적이고 판타지스러운, 미래의 샬롯이 과거의 동생들에게 보낸 편지는 언제나 동생들을 위하고 그들을 지지했던 샬롯의 진심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다. 


극 후반부, 세 사람은 죽은 영혼이 되어 한 자리에 모인다. 그곳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글에 대한 날 선 비판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조롱하며 유머로 화답한다. 글에 대한 열정으로 하나가 되고, 갈라서며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던 브론테 자매는 그렇게 다시 만나 웃는다. 극은 유쾌하고 따스한 상상력으로 그들의 이른 죽음을 비극적으로만 그려내지 않는다. 흩어졌던 세 자매는 언제까지나 글에 대해 실컷 떠들고, 자신만의 글을 위해 고민하고, 그저 써 내려갈 것이다. 세상에 인정받아야 한다는 생각 없이 자유롭고, 즐겁게.

 

 

때로는 모질고 때로는 슬프기만 한 삶이었으나

우리는 우리의 이름으로 내내 치열했고

존재했으므로 이미 충분했다

또 어느 곳, 나와 닮은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가 닿길 바라며 


 

아직 세상은 여성에게 더 모질다. 자기 능력과 자질을 의심하고, 자신을 무너뜨리려 하는 적의에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 내야 하는 순간이, 너무 많다. 그런 현실 속, 여성이 글을 쓰는 것이 금지됐던 시기에 기꺼이 작가의 삶을 살아낸 여자들을 본다. 시대의 금기를 깨고, 사회의 정상성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이유로 이들은 끝없이 초조해하고, 자신을 검열하고, 자기 능력을 의심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을 믿었다. 의심이 들고, 한없이 작아질 땐 서로가 서로의 위로이자, 용기가 되어주었다. 그래서일까, 뮤지컬 <브론테>에는 서로의 능력과 가능성에 대한 인정과 지지, 그리고 연대로 가득하다. 무려 200여 년 전 자신들을 지켜내고, 끝내 자신들의 뜻을 이루기 위해 외친 브론테 자매의 수많은 위로와 지지의 말들이 지금의 우리에게 큰 용기가 되어준다. 지금의 나로도 충분하다고, 움츠러들지 말고 그저 나를 믿어보자고 다짐하며, 영원히 작가로 남아 작품으로 말을 거는 세 여자의 삶을 곱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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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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