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무균실에서 찾아내는 인간적인 타락 - 책 '과학 잔혹사'

글 입력 2024.05.10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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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 <과학 잔혹사>의 저자 샘킨의 글은 아주 매력적이다.

 

그는 과학과 관련된 폭넓은 지식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교양있지만 때로는 익살적인 태도로 분절되어있는 이야기들을 하나로 흥미진진하게 엮어낸다. 저자의 가장 뛰어난 부분은 특정 주제의 전달이었는데,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의 추측과 해석을 엮어 인물에 대한 복합적인 해석이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과학 잔혹사'라는 이름은 이 책을 단순한 과학적 타락과 관련된 일화집으로 생각하게 할 수 있다. 혹은 미친 과학자처럼 천재성과 광기를 가진 사람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나열로 생각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렇게 떠오른 막연한 환상 자체를 부수는데 일조할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에는 천재적인 미친 과학자도, 냉혹한 태도로 약자를 희생시키는 흰색의 가운을 입은 사람들의 환상은 없다. 선의나 이타심으로 시작했지만 끔찍한 잘못을 저지른 사람, 명성이나 안락함에 눈멀어 서서히 범죄에 가담하는 사람, 고의적으로 악의적인 사람까지, 하나의 인간이 지식을 몽둥이 마냥 휘두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저자는 세밀한 묘사를 통해, 우리가 교양과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있던 과학적 진보 아래에 놓칠 수 있는 수많은 인간적인 타락에 대해 세밀하게 묘사한다.

 

저자가 설명하는 '인간적인 타락'의 방점이 '인간적인'에 있다는 것도 이 책의 매력 포인트 중 하나다. 모든 사건에는 원인이 있고, 의도를 가지고 행하는 사람 안에는 또 수많은 이유가 있다. 저자는 역사적 지식과 추측을 섞어 독자들에게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책의 제목이 가져다줄 수 있는 오해에 아쉬움을 표현하는 바이다. 이 책은 과학이 행한 잔혹사가 아니라, 과학자가 행한 잔혹사고, 이 책 자체도 과학자의 윤리적 책임과 관련된 내용을 주로 기술하지 과학적 지식과 정교하게 연결하지는 않는다. 학문적 관점에서 이 책의 등장인물은 뚜렷한 가설을 세우지 않거나 객관적인 연구절차를 무시하는 등 비과학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 책의 원서 이름에도 이러한 비판이 적용될 수 있다.

 

 

 

2.


 

책에는 다양한 범죄가 나열되어있다. 희귀종을 수집하기 위해 노예를 판매하거나, 시신을 만들어 의학과에 팔거나, 의도적으로 병을 내버려두거나, 의료사고로 성기를 잃은 소년을 강제로 여성으로 키우거나, 부작용을 고려하지 않고 뇌 일부분을 제거하거나, 오랜 시간 동안 스트레스를 주어 재능있는 대학생을 유나바머로 만드는데 이바지하거나, 자신의 책무를 다하지 않아 수많은 사람을 유죄판결에 이르게 한다.

 

책의 목차에 있는 모든 내용을 이 리뷰에 녹아내지는 않겠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아이스 픽 처치와 심리적 고문과 의료과실이었다. 심리학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이 챕터를 인상 깊게 만들었지만, 인간이라는 생물의 정신적 복잡성을 당대의 패러다임이 -말 그대로-제거하고, 변형하고, 조작했다는 점이 비극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영역을 달리할 수 있어도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문제다. 우리는 비전문가로서 전문가를 믿고, 과학과 의학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다. 책이 묘사하는 시대보다 우리의 과학은 좀 더 정교한 방법론을 택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나 기꺼이 지식을 진보시키는 행위에 깊은 존경심을 보내왔다.

 

하지만 이 책이 증언하는 역사는, 지식이라는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언제나 인간임 잊지 않게 한다. 명성에 눈멀고, 자신의 확신에 의심하지 않는 전문가들은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고, 희생자의 입을 막아왔다. 과학적 지식이 언제나 변할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할 때, 맹목적인 존경이 얼마나 위험한지 깨닫게 한다.

 

불행하게도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막대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사람들이었고, 전문가 그 스스로와 희생자가 그에 대한 반성이나 회고를 할 수 없을 때 큰 비극이 일어났다. 결과적으로 이 책이 강조하는 것은 연구의 윤리를 위해서는 우리가 끊임없이 발전하고, 면밀히 조사하고, 의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스템과 지식이 정교화되는 것뿐만 아니라, 자기확신, 물질적 욕구와 같이 인간의 성격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늘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그 어떤 영역, 그 어떤 전문가, 그 어떤 천재조차도 인간적인 결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인간적인 결점은 언제나 행동적 결점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배우는 것이 진정한 발전이라고 믿는다. 인간의 실수와 비극은 언제나 미래를 위한 양분이 된다. 과학자의 실패를 과학의 실패로 두지 않는 힘이 그것이다. 나는 생각하게 할 기술한 아래의 문장을 매우 좋아한다.

 

 

나는 존재한다. 고로 나는 묻는다. 우리를 죽이는 것은 바로 "그래, 나는 안다"라는 대답이다. 우리를 죽이는 것은 지식의 나무이다. 반대로 바벨탑을 짓는 데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바로 그 실패가 생명을 주었으며, 살아가고, 자라고, 번성할 힘을 만들어 주었다.

 

 

 

3.


 

저자는 훌륭한 이야기꾼으로서, 지루한 역사적 지식이나 지식인으로 남겨질 수 있는 이야기에 생생한 디테일을 덧붙여 인간의 이야기로 만든다. 경쟁심, 실수, 명성에 대한 욕망, 이타심, 불안에 초점을 맞춘 이 글은 하얀 가운을 입고 윤리적으로 비판을 받지 않을 것 같은 실험실을 삶의 현장으로 이끈다. 그들은 특별한 성별도, 특별한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 아니라 보통 사람과 같은 이들로서, 그저 더 많은 기회를 줬거나 지식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며, 그 지식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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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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