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는 한국인일까 현지인일까 [문화 전반]

한국에 무지했던 나의 이야기
글 입력 2019.08.17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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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덥지근했던 방학, 나는 학교 한국어학당에서 진행하는 외국인 도우미 봉사 활동에 참여했었다. 대부분의 대학교 국제교류원에서 주재하고 있는 이 활동은, 한국인 학생 한명 당 한명의 외국인 학생을 맡아 한국적인 체험을 하게 해주거나 우리말을 알려주는 등 한국 문화에 적응할 수 있게 돕는 것이다.

 

우리 학교의 방식도 일대일로 짝을 만들어주는 방식이었는데, 내가 참여했던 이번 방학에는 새로운 방식으로 한국인 학생 한명 당 ‘한 반’의 외국인들을 담당하게 하였다. 한국어학당은 얼마만큼의 교육을 이수했느냐에 따라 수준별로 클래스가 나뉘어져 있다. 내가 맡은 반은 한국어를 배운지 약 3개월 정도 되는 초급반이었다.

 

그렇게 나는 매주 한 시간 외국인 학우 분들과 교류하게 되었다. 한 시간이라는 시간은 길지도 짧지도 않은 애매한 시간이었다. 초면인 한국 사람들끼리 한 방에 두고 "한 시간 동안 얘기 나눠보세요."라고 해도 영 쉬운 일이 아닐 터이다.

 

또 다른 어려움은 유동적인 학생 수였다. 한 반에는 열 명 남짓한 학생들이 있었는데, 매주 오는 학생의 수가 달랐다. 활동을 시작했던 첫 주에는 반의 학생들이 모두 참여하였고, 그 다음 주부터는 세 명에서 다섯 명 정도의 학생들이 무작위로 참여하였다. 이에 따라 활동 계획도 유동성 있게 짜야 했다.

 

외국인에게 막상 한국 문화를 알려주려니 어떤 것부터 알려줄지 고민되었다. 발표 자료를 만들어 강의 형식으로 하자니 이미 그들이 듣고 있는 수업과 다를 바가 없어 보였고, 프리 토킹만으로 한 시간을 이끌어 나가기엔 외국인 학생들이 부담스러울 것 같았다. 고민 끝에 나는 모두 함께 참여하며 배울 만한 문화로 ‘술 게임’과 몇 가지 퀴즈 게임을 떠올렸다.




나의 무지함을 깨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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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술 게임’, 즉 뒤풀이와 같은 단체 회식 자리나 엠티에서 즐겨 하는 게임을 배우는 것은 비단 외국인의 몫만은 아닐 것이다. 대학교 신입생을 거쳐 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모임에 잘 끼기 위해 유튜브로 술 게임을 검색해본다거나, 고등학교 친구들끼리 예행연습처럼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꼭 대학생이 아니더라도 낯선 사람이 여럿 모이는 장소라면 친해지기 위해 즐겨 하는 관행 같은 거나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사실 이런 말들이 내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나는 대학교 입학 전 신입생들끼리 모이는 첫 자리에 가기까지 술 게임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누구나 처음이고 미숙할 거라는 안일한 생각 때문이었다. 뭐, 다들 가르쳐주겠지. 금방 배우겠지, 라며 꽤나 배짱 두둑한 태도로 뒤풀이에 참석했다.

 

결과는 정직했다. 순발력이 좋지도 넉살이 좋지도 않은 탓에 나는 자리의 불편함을 이기지 못하고 새내기에게 금기로 여겨지는 ‘탈주’를 범하고 말았다. 한 번 빠지기 시작하니 두 번 빠지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결국, 그 뒤로는 특별히 술 게임을 할 기회가 없었다.

 

자발적으로 피했던 술 게임을 내가, 그것도 외국인들에게 심지어 ‘알려줘야 하는’ 입장이 된다는 게 상당히 아이러니컬했다. 필요 없다고 등한시하다가 그나마 알려줄만 하다고 다시 찾은 내 자신에게 소위 말하는 ‘현타’ 같은 것이 오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외국인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한국적이라고 여기는 문화’를 ‘한국인’인 내가 다시 배워야 된다는 상황이 가장 모순적이라고 느껴졌다. 마지 재사회화 과정에 놓여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다시 학습이 필요한 것은 술 게임뿐만이 아니었다. 그 다음 활동으로 계획했던 퀴즈 게임을 위해 나는 한국의 ‘유행어’들을 수집했는데, 아는 말보다 모르는 말들이 많았다. 이 밖에도 외국인 학생이 교내 시설 이용 방법에 대한 궁금증을 물어보거나,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의 이름을 말하거나, 한국의 가볼 만한 관광지 등을 물어봤을 때, 나는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몇 번이나 내 말의 신빙성에 대해 의심해야 했다.




때로는 여행자가 정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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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를 읽었다. 여행에 관련 된 작가의 여러 경험들과 그것에서 얻은 깨달음이 총망라된 글이었다. 책은 아홉 개의 파트로 나뉘어 있었는데, 그 중에서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여행> 부분에 인상 깊은 내용이 있었다. 때로는 여행자가 현지인보다 장소에 대한 정확한 통찰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여행자와 마찬가지로 운전자는 일인칭이다. 자동차는 그렇게 설계돼 있다. 운전을 하는 자기 모습을 보는 것보다 차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을 주시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여행도 마찬가지. 멋진 곳에 가서 놀라운 것을 경험 하지만 본질적으로 그것은 일인칭의 경험이다."


- 김영하, 『여행의 이유』 中



피사의 사탑이 몇 도로 기울어져있는지는 직접 보아서, 1인칭 시점으로 보아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책을 읽거나 검색을 해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이 밖에도 한 나라의 정치 상황이라든가 기후라든가 하는 객관적 사실들은 뉴스를 보면 알 일이다. 요즘은 해외 뉴스에 대한 접근성도 좋아졌으니, 결국 정보는 자국의 것이라고 반드시 월등하게 해박한 것이 아니라 여행자든 현지인이든 ‘관심도’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다.

 

내가 만난 외국인들은 일반적인 여행자들과는 다른 집단에 속한다. 장기간 이곳에 머무르며 이곳에 ‘적응’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목적이 ‘적응’이든 ‘호기심’이든 간에 ‘보편적인 한국상’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은 여행자의 것이나 진배없다.

 

그들의 한국을 향한 탐구심 덕분에 나는 도리어 나의 무지함에 대해 깨닫게 되었다. 술 게임이나 요즘 유행어를 모르는 것이 잘못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것들을 몰라도 될 만큼 다른 한국의 문화에 대해 빠삭하게 아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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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이유』에서는 여행자에게 베푸는 환대의 소중함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가 여행자에게 베푼 환대는 훗날 우리가 여행자의 입장이 되었을 때 그것이 돌고 돌아 다시 우리에게 베풀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어떤 문화가 다분히 뻔하고 보편적일지라도 누군가에게 알려줄 만큼은 배워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이러한 ‘환대’와 관련된 것이기도 하다. 여행자를 비롯한 외지인에게 베풀 수 있는 환대가 얼마나 다양하겠는가. 잠깐 머무르다 갈 사람이라면 누구나 문화의 정수를 알려주고 싶을 것이고, 길게 머무를 사람이어도 권하고 싶은 체험의 순서가 정해져있을 것이다. 맛있는 ‘코리안 바비큐’부터 대접하고 싶지, 삭힌 홍어나 산낙지 같은 도전적인 음식부터 권하고 싶진 않듯이 말이다.

    

 


지금의 한국문화는


    

다시 외국인 학생들과 보냈던 시간으로 기억을 되돌려본다. 나는 그들에게 한국어를 공부하게 된 이유가 뭔지, 어떤 문화에 관심이 있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대답은 대체로 비슷하였다. 아마 예의상 적절한 대답을 고른 것이겠지만, ‘음식이 맛있어서’, ‘어떤 가수를 좋아해서’, ‘드라마가 재미있어서’ 등의 말이 주된 내용이었다.

 

음식, 아이돌, 영화·드라마 등 대중적인 문화는 그 위상과 인기가 항상 가변적이다. 그렇기에 그것들에 대해 무지하지 않기 위해선 꾸준히 귀를 열고 있을 필요가 있다. 변화하는 소식을 지속적으로 접하기 위해 내가 선택한 방법은, 조금 뻔하지만 ‘유튜브’였다.





<영국남자>채널은 여러모로 유익한 채널이다. 처음에는 생소한 한국 문화를 접한 영국인들의 ‘반응’을 보기 위해 채널의 영상들을 보기 시작했지만, 갈수록 이 영국남자들이 한국의 다양한 문화를 전파하기 시작하자 이제는 ‘반응’을 보는 것과 동시에 나도 몰랐던 한국문화를 알기 위해서 보게 된 것이다.

 

특히 외국인을 상대할 일이 있다면 이것만큼 좋은 채널이 있을까 싶다. 거의 영국인에 한정된 것이긴 해도 한국 문화를 접해본 적이 없는 외국인이 어떤 문화를 선호하고 어떤 것을 불호하는지 솔직하게 밝혀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외국인이 ‘쌈장’을 좋아하는 것은 예상하기가 힘든 부분인데, 이 채널을 통해서 적어도 영국인은 쌈장을 선호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영국남자에 이어서 이 채널 또한 많은 구독자를 보유한 인기 채널이다. 지오디의 멤버였던 박준형이 한국의 이곳저곳을 방문하며 굉장히 생생한 후기를 들려준다. 다른 채널에 비해 부정적인 피드백도 서슴지 않기에 후기에 대한 신뢰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후기를 보고 직접 같은 코스로 찾아간 곳이 있다. 바로 문래동이다. 식당에서 맛있다고 한 메뉴를 따라 시켜보고, 방문했던 카페의 사장님과 유튜브 영상에 대해 얘기를 나눠보기도 했다. 영상의 그대로를 따라 체험해보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한번이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기도 했거니와, <와썹맨>이 방문한 장소는 전국적으로 분포해있으며 특히 '요즘 떠오르는' 곳을 빠르게 소개해주기 때문에, 요즘 추세를 읽는 데에 크게 도움이 된다. 진행자의 유머러스한 멘트와 유쾌한 분위기도 강점으로 내세울 만하다.




과한 반성인가 싶으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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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채널 외에도 재작년 상반기에 나왔던 <윤식당>이라거나 올해 방영된 <현지에서 먹힐까?> 등 한국 문화, 특히 음식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은 다수 존재했다. 2015년부터 2016년까지 방영했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서는 외국인 친구들을 한국으로 불러 다방면으로 문화를 소개해주기도 하였다. 이렇듯 우리나라의 홍보는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티비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외국인 유튜버’라는 신기한 경로를 통해서도 말이다.

 

사실, 여러 경로를 통해 전파되는 문화의 온갖 파편들을 내가 통달하고 있어야 할 의무는 없을 것이다. 문화는 끊임없이 생산되고, 주류와 비주류가 뒤섞이는 변화무쌍한 것이기 때문에.

 

그러나 무질서해보이는 변화 속에서도, 하나씩 형체를 갖추어 가는 주축들이 있다. 몇 년 째 진리처럼 통하고 있는 ‘치맥’처럼, 어느새 하나의 고유명사로 자리 잡은 ‘먹방(Mukbang)’처럼, 꾸준히 국제적인 호응을 얻고 있는 아이돌 ‘방탄소년단(BTS)’처럼 말이다. 내가 할 일은 여기에 놓여있다. 미세한 변화의 물결들에 귀 기울일 수 없다면, 큰 파도와 같이 전국을 넘실대는 큰 물결만큼은 놓치지 않으리라는 다짐이다.

 

아마도, 내 삶에 큰 변화가 없는 한 나는 앞으로도 계속 이곳에서 살 것이다. 적어도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은, 전처럼 무지하게 살지는 않으려 한다. 현지인에서 나아가 '한국인'으로서의 삶을 지향해 보리라, 그런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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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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