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춘향, 너의 이름을 생각했을 때[공연]

춘향이라는 이름 하나로
글 입력 2018.04.05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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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있던 춘향이라 하면, 단아하게 머리를 땋고 그네를 타며 한복 치마의 빛깔을 곱게 자랑하는 고운 처자일 것이다. 그리고 그녀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몽룡. 이 둘의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이야기가 연극 춘향으로 재탄생했다. 춘향이라는 연극 제목 앞에 또 다른 중요한 부제가 붙는다. 바로 멜랑꼴리 버라이어티쇼라는 것이다. 멜랑콜리는 이유 모를 구슬픈 우울감을 뜻한다. 버라이어티쇼는 말 그대로 다채로운 재미들이 담겨 있는 쇼이다. 이번 연극 춘향은 멜랑콜리는 충족시켰지만, 과연 진한 다채로움을 성공했느냐는 각자의 취향에 따라 극명하게 달릴 것이다. 지금부터 춘향을 멜랑콜리하게 재해석한 연극을 살펴보자.

떼아뜨르 봄날은 2013년 왕과 나에 이어 2016년 심청. 그리고 2018년 춘향을 내놓았다. 사극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듯 어색한 장르다. 사극은 대한민국의 사실적 역사를 바탕으로 한 극이기 때문에 커오면서 언젠가 한 번쯤은 들었을 법한 이야기들을 소재로 삼는다. 하지만 그 이야기의 깊은 속까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또한, 어려운 단어와 복잡한 구조 등으로 사극을 접하는 것을 피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떼아뜨르 봄날이 추구하는 사극의 재해석이 이러한 부분을 해소하기 위함일 것으로 생각한다. 자칫 지루하고 어색할 수 있는 사극의 단점을 유쾌하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여 신선하게 다가올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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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에서는 춘향과 몽룡은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의 부재를 안타까워하며 그리워한다. 그 둘의 시작 또한 묘하고 간지럽게 시작하지만 이번 연극에서는 다르게 시작한다. 전반적으로 춘향이 우위를 차지하고 단순히 주체성이 없는 여성이 아닌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표출해내는 여성으로 나온다. 조선 시대의 여성은 하나의 신분으로 작용하였다. 절대 주체성을 지닌 인간이 아닌 노비, 상인 등과 같이 계급의 하나라고 해도 무관하다. 왕실에서도 그저 후손을 낳는 존재에 불과하였고, 일부다처제가 허용될 정도로 여권은 타락했다. 하지만 연극 춘향에서는 그러한 신념을 시원하게 탈피하고 당당하게 자기 생각을 말하고 솔직하게 모든 것을 토해낸다.

연극을 보러 오기 전 상상한 고운 외모와 자태의 춘향을 그리며 온 내가 떠올랐다. 성적으로나 관계적으로나 춘향은 자신의 신념을 밝히며 몽룡에게 잘 보이기 위한 모습이 아닌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누군가가 날 이렇게 봐줬으면 좋겠는 이미지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춘향은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었고, 그러한 춘향을 몽룡은 마음에 들어 했다. 그때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이렇게 리뷰를 쓰면서 많은 생각이 든다. 연극에서 연출로 의도한 것으로 생각한 것 중 하나가 춘향 역할을 맡은 배역의 외면성이다. 카리스마로 무장된 이춘희 배우를 춘향으로 캐스팅한 것부터 연출자의 의도가 스리슬쩍 보인다. 이춘희 배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연출 의도를 간파하며 춘향을 체화시켰다. 한 편으론 도도하고 콧대 높아 보이면서 솔직하게 밝히고 싶은 자기 생각은 그대로 표출한다.

보이는 것에 혈안이 된 요즘 시대에서 춘향과 같이 있는 그대로의 날 것을 당당하게 표출할 수 있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이것저것으로 덮고 꾸며서 원본을 가상 본으로 바꾸며 그것을 진실이라고 치부하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하지만 그런 것이 진리를 바꿀 수 있을까? 결국, 진리는 하나이고, 영원불변한 것임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우리를 속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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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이야기는 연애와 욕망의 성취와 좌절이 주를 이룬다. 또한, 춘향이 겪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감정들을 그 주변 인물들이 주위에서 돋구며 극의 활기를 더한다. 연애와 욕망의 공통점은 절대 일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연애가 일정하게 행복하고 일정하게 불행하다면 아무도 연애를 찾지 않을 것이다. 욕망도 마찬가지다. 무언가를 갈구하는 마음이 지속된다면 어찌 사람이 편안하게 생을 누릴 수 있냐 말이다. 모두 성취와 좌절의 연속이기 때문에 생을 이어나갈 원동력을 얻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다양한 곡선 안에서 흔들리고 주저앉고 이리저리 휘둘린다. 춘향도 물론 밖으로는 표출하지 않았지만, 내면으로는 많은 혼란과 혼돈이 존재했을 것이다. 하지만 극 상에서는 춘향이 극도로 행복해하는 장면은 없었다.

앞에서 말했듯이 구슬프게 우울한 감정은 있었다. 애처롭게 객석을 쳐다보며 반짝거리는 눈물이 맺힐 때면 구슬픈 감정이 나에게 이입된 것 마냥 애처로웠다. 하지만 이 외의 큰 감정의 변화는 없는 사람이 춘향이었다. 담담하게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며 큰 슬픔이 그녀의 내면에서 터져버려 밖으로 흘러나오는 것은 슬픔의 원액뿐이었다. 그것은 너무나 애처로워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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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의 감정을 감칠맛 나게 돋군 것은 연극과 함께한 라이브연주였다. 특히나 엄태훈 기타리스트의 기타는 아빠가 같이 왔다면 좋아했을 법한 7080 라이브 클럽에서 듣는 기분을 자아내는 아날로그 감성의 연주였다. 사극과 기타라 하면 매치가 잘 안되는 것 같지만, 기타의 연주는 연극에 찰떡궁합이었다. 기타 줄을 튕기면 튕길수록 춘향의 감정은 배가 되는 듯하였고 분위기를 심화시키고 애처롭게 만들었다. 또한, 엄태훈 기타리스트의 표정과 그의 표현은 연극에 두 몫을 했다 해도 어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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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춘향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춘향을 재해석했고, 캐릭터 연출 방식은 보기 좋은 변화였다. 하지만 분위기가 분위기인 만큼 극히 일부 사람들의 취향을 저격할 만한 요소들이 많았다. 자칫 늘어지는 스토리에 탄탄하게 잡아줄 만한 요소들이 약하게 작용하여 계속해서 지루한 감이 있었으며 춘향 외에 기억에 남는 캐릭터가 없다. 월매, 향단 모두 가창력을 지닌 배우들이지만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면 춘향이 이 연극을 모두 끌고 가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분명 감초는 주인공을 더욱 효과적으로 높여주기 위함은 맞지만 그들의 역할을 상쇄시키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몽룡의 존재감은 그들보다 덜했다. 당당하고 솔직한 여성으로 나오는 춘향에 비교해 바보 같고 춘향의 말 한마디에 꼼짝 못 하는 남성으로 나오는 몽룡은 그저 의존적인 정승에 불과했다. 연출자의 캐릭터 설정 방식은 사극에 감히 대입하기 어려웠을 만한 방식이었기 때문에 볼수록 마음이 시원했다. 하지만 극 전체를 춘향이라는 강한 캐릭터가 이끌기엔 부족했다.

멜랑콜리한 유머가 나올 때마다 내 옆 사람은 배꼽을 잡고 웃었지만, 반면 나를 포함한 오른쪽 줄은 웃음 포인트는 알겠지만, 올라가지 않는 입꼬리를 야속해 할 뿐이었다. 연극 춘향은 다양한 감정선을 보여주며 과거의 시대상에 현대의 여성상을 보여줬기에 진정 멜랑콜리라 할 수 있는 연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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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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