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ROTEA] PROLOGUE :​ 무의식의 장막을 걷고 나온 배우들에게 박수를

글 입력 2018.04.01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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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ROTEA] PROLOGUE :
​무의식의 장막을 걷고 나온 배우들에게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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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am and Eve expelled from Paradise
Marc Chagall


1. 잘려진 손목, 불안과 공포의 표상

필자가 작년에 꿨던 꿈 하나를 소개하려고 한다. 꿈에서 필자는 안방의 작업대에서 불을 키고 뭔가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잘 갈린 톱과 풀과 니스가 가지런하게 탁자에 자리잡고 있었다. 필자는 열심히 작업하다가, 문득 손목이 짜증난다는 생각을 했다. 오랜 시간 집중하고 혹사시킨 탓에 손이 부어오르고 손목이 저릿저릿 했다. 처음에는 손 덕분에 계속 일해왔지만, 슬슬 상태가 안좋아지자 일하기가 점점 짜증스러워졌다. 저릿저릿한게 심해지니까, 이 놈의 손이 참 쓸모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필자는 톱으로 별 주저없이 손목을 잘라버렸다. 잘 갈린 톱날로 잘려진 손목은 하얀 작업복 위로 툭 떨어졌다. 피가 막 솟구치지는 않았지만, 잘려진 손목이 하얗고 파랗게 변색되는걸 보고 잠깐 엄청난 짓을 저질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조금 따끔하긴 했지만 저릿한게 없어서 작업하기가 더 편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시 작업을 하려고 하는데, 손이 다시 자라 있었다. 뼈대는 없지만 빨갛고 부드러운 것이 새살이 돋은 것 같았다. 하지만 뼈가 없어서 움직여지지 않았다. 문득 겁이 나기 시작했다. 뼈가 없어 잘 움직이지 않는 이 손으로 내가 일을 잘 할 수 있을까, 내가 순간적인 마음으로 큰 사고를 저지르진 않았을까, 그런 고민을 한창하다가 꿈에서 깼다.

필자는 이 그로테스크한 꿈 이야기를 정신분석 상담 선생님과 나눴다. 선생님이 직접 지시해주진 않았지만, 이야기를 통해 필자가 왜 그런 꿈을 꾸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필자는 지금까지 유능함에 집착해온 사람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필자는 당시 사회에 갖고 있는 열정이나 이상, 붕붕 뜨는 행복감으로 무장했지만 그 안쪽, 특히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누구도 범접하지 못하는 황무지가 펼쳐져 있었다. 물론 필자는 나름대로 그 곳에 씨앗을 심고, 물을 뿌렸다. 하지만 그건 바라보기만 해도 힘든 땅을 계속해서 마주하고 돌볼 자신은 없었다. 필자는 약한 부분을 마음의 지하창고에 모두 쳐박아두고 문을 잠궈 두었다. 그 안에 들어간 것들은 여러가지가 있었다. 왕따 때의 기억, 연인으로서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 사람들에게 약한 나를 지지받고 싶은 비밀, 타인의 증오와 분노에 대한 큰 두려움. 짧다면 짧은 초기 청년기 동안 필자는 늘 똑똑한 척, 독립적인 척, 쿨한 척을 해왔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 지하창고를 뒤지지 않으면서도 필자를 사랑해줬다. 뭔가를 해내는 과정에는 늘 필자의 손이 있었다. 글을 쓰고, 일을 해내고, 그림을 그리는 영광스러운 두 손은 '보잘 것없는 나'를 사랑받게 해주었다. 그러니까 필자가 꿈에서 잘랐던 손은, 뭐랄까, 필자의 노력과 유능함의 상징이었다.
 
정신분석을 받으면서 필자는 조금씩 유능성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지하창고를 열어보기 시작했다. 누군가를 좋아하기도 해봤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조금씩 약한 부분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마음에 덕지덕지 붙어있었던 보호필름을 한장 두장 떼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건... 정말 두려운 일이었다. 지금까지 필자는 늘 뒤로 가는 대신 앞으로 갈줄 아는 당당한 사람이었는데, 사랑과 타인이 끼어들면서 노력으로 되지 않는 것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사랑은 주는만큼 돌아오지 않았다. 마음을 연다해서 사람들이 특별히 바뀌는 것도 아니었다. 꿈에서 필자가 손목을 자르고, 그렇게 두려웠던 것은 그런 탓이다. 당시 이런 필자의 심리적 기제를 꿈으로 발현시킨 것으로 보인다.



​2. 자라난 손목, 무한한 세계

역겹다면 역겨운 꿈 이야기를 하게된 것은, 당시 필자의 꿈이 '잘린 것'에서 끝나지 않고, 자라나는데서 끝이 났기 때문이다. 꽉 막혀있었던 마음이 타인을 받아들이는 것이 두려운 것이 꿈으로 나타났다면, 꿈은 잘린 상태로 끝이 났어야 했다. 하지만 필자의 손목은 자랐다. 예수가 죽고 다시 태어나고, 성냥팔이 소녀가 추위에 떨다 할머니의 영혼을 따라 천국에 간 것처럼, 필자의 손은 죽음-부활이라는 레퍼토리를 맞게된 것이다. '잘려도 다시 자라나는 손목'은 분명 당시 필자가 의식하고 있는 상황보다 더 낙관적이다. 필자는 이것이 무의식의 놀라운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분석심리학자 구스타프 칼 융은 꿈에대해서 그의 학문적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프로이트와 반대되는 의견을 제시했다. 꿈은 무의식의 결과되, 단순히 심리적 억압의 표현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꿈과 무의식은 억눌린 욕망 표출 이상의 기능을 수행한다. 그들은 의식에 여러가지 상징을 보냄으로서, 더 나은 삶(정확히는 통합된 삶)의 방향을 제시한다. 필자는 필자의 꿈에서 손목이 다시 자라난 사건을 이렇게 해석한다. '잘려나갔다고 해서 겁먹지마렴, 지금까지와 같은 방법으로 살아가지 않아도 다시 자라날거야. 그러니까 노력하지 않아도, 유능하지 않아도, 조금 달라질 지언정 너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사랑받을 수 있을거야'. 그리고 그 메시지를 받은 지금까지, 필자는 손을 바라볼 때마다 그 메시지를 떠올린다.

손은 이제 필자에게 재기의 상징이다. 필자가 손을 떠올리는 모든 순간, 실패한 것들은 다시 재건될 수 있는 것들로 변화한다. 그건 필자의 무의식이 가르킨 새로운 방향과 상징이다. 그리고 필자가 새롭게 내면화한 상징은 필자에게는 정말 큰 원동력이다. 수많은 지면을 통해 필자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것 뿐이었다. 무의식은 우리에게 여러가지 상징을 통해 보다 '나다운 삶'을 향해 방향성을 제시하고, 그가 제시한 상징은 우리의 삶에 큰 영향력을 끼친다. 필자는 손이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다른 것일 수 있다. 눈이 맑은 현자, 감자에서 돋아오른 푸른 싹, 물가를 뛰노는 개구리.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그 어떤 상징도 받아들일 수 있다. 무의식은 창조성으로 가득차 무한히 이어져있기 때문에 비어보인다. 그 빈 캔퍼스에서 우리는 어떤 그림도 그릴 수 있다. 우리의 삶이 끝없이 풍요로울 수 있는 것은 그 세계가 무한하면서 비어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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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TAROTEA

필자는 TAROTEA의 글을 읽는 당신이 그 무한한 세계에 다양한 상징을 대입하고 개조하길 바란다. 나아가 그 상징들이 독자들의 삶에서 하나의 경험이 되길 바란다. 그 개인적인 세계에 속속들히 박히길 바라기보다는, 언젠가는 거대한 파문을 일으킬 성찰의 방아쇠가 되길 바란다. '꿈'이라는 개인적인 소재가 아닌 '타로카드'를 가지고 온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다. 사실 그것은 글을 쓰는 필자에게도 적용되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연재는 필자 자신을 위해서기도 하다.
타로카드에는 개인의 내적세계를 자극할만한 다양한 소재가 존재한다. 타로카드에는 다양한 인간들이 존재한다. 바보같은 광대, 열정에 찬 젊은이, 불안에 떠는 왕과 세상의 풍파를 견디는 늙은이, 모든 것을 통달한 댄서가 그렇다. 이러한 인물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우리 안에 존재하는 이미지들이다. 그런 것들을 확인하고 싶다면 수염 긴 할아버지를 떠올려보면 된다. '지혜로운 늙은이'라는 이미지는 동양에서는 무림고수로, 서양에서는 멀린과 같은 지혜로운 마법사로 표현된다. 그리고 그것들은 우리의 삶에도 잘 녹아들어있다. 인간의 내면에는 누구나 지혜로운 늙은이가 존재하는 법이다. 물론 우리 안에서만 존재할 필요도 없다. 우리가 조언이 필요한 시기에, 나에게 조언을 주는 것이 내면의 울림이건, 주변 사람의 우연한 도움이건, 그 모든 경험들은 '지혜로운 늙은이'가 된다. 그런 것들을 인식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그 조언을 더 열심히 들으려 할 것이다. 필자가 타로카드를 주제로 글을 쓴 것도 인간의 이런 특성에 시작점을 둔다.
이야기와 상징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인지라, 마음 같아선 모든 카드를 돌아보고 싶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지면이 너무나 짧고, 필자에게는 연구시간이 부족하기에, TAROTEA는 타로카드의 카드 중 0번부터 21번까지의 메이저 아르카나를 대상으로 한다. 메이저 아르카나는 큰 흐름이라는 의미를 가진 카드들이다. 이 카드들만을 사용해서 점을 볼 수도 있고, 각 카드마다 독특한 컨셉이 존재한다. 0번 바보카드를 어디에 둘 것인지에 대해서 전문가들간의 의견이 분분하지만, 필자는 0번에 두려고 한다. 22개의 카드는 0번,즉 바보의 거대한 여정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열정적이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가 마지막에는 22번,세계가 되는 것이다. 각 카드를 설명하면서, 필자는 장르에 구애되지 않고 관련된 콘텐츠를 관련지어 글을 써내려갈 것이다. 그리고 독자와 필자는 어색하게 만나 적극적으로 손을 잡게되는 이 거대한 여정을 함께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가끔 바보를 만나기도, 지혜로운 여사제를 만나기도 할 것이다. 마지막 카드를 들췄을 때 우리가 무엇을 더 발견하게 될지는 지금으로서는 잘 예상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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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무의식의 장막을 걷고 나온 배우들에게 박수를!

TAROTEA는 카드의 의미와 번호와 순서에 따라 구분해 3부로 구성될 예정이다. 0부는 지금 읽고 있는 프롤로그와 0번 바보(THE FOOL)카드고, 1부는 의식 세계를 표현하는 카드로, The Magician (마술사, 마법사, 기술사),The High Priestess (교황, 사제장, 법황, 고위 사제)(여),The Empress (여제, 여황제),The Emperor (황제),The Hierophant (교황, 법황, 사제장),The Lovers (연인, 연애),The Chariot (전차, 정복자)가 구성되어 있다. 2부는 무의식 세계를 표현하는 카드로,​ Strength (힘, 기백, 강의, 역량), The Hermit (은둔자), Wheel of Fortune (운명의 수레바퀴, 운명), Justice (정의, 재판의 여신),The Hanged Man (매달린 사람, 매달린 남자, 사형수, 형사자),Death(죽음) ,Temperance (절제)로 구성되어 있다. 마지막 3부는 초의식을 표현하는 카드로,The Devil (악마)The Tower (탑, 신의 집),The Star (별),The Moon (달),The Sun (태양),Judgement (심판, 영겁),The World (세계, 우주)로 구성되어 있다.

연재는 격주로 진행되고 각 부가 끝날 때마다 연구를 위해 짧은 휴식기를 가질 것이다. 연재에 들어가기 앞서 먼저 일러두고 싶은 것은, 이 연재는 단순히 '타로 상징 사전'이 아니라는 점이다. TAROTEA는 필자가 흥미롭다고 생각된 다양한 상징들과 그와 연상되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글이다. 필자는 이 글이 독자들에게 방아쇠가 되길 바라지, 지식이 되길 바라지 않는다. TAROTEA는 다양한 상징들을 조잡한 무대에 올린 연극과 같다. 필자는 최선을 다해 캐스팅을 했지만, 배우의 역량과는 상관없이 그 표현이 어색할 수 있다. 사실 필자도 독자와 함께 막 찾아다니는 입장이 아니던가. 필자는 사실 감독이라기보다 관객석에 섞여 앉은 사람 중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분명 좀 더 애정과 책임감을 조금 더 가졌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럼 필자는 이제 극의 막을 올리려고 한다. 장막을 들추고 나온 다양한 상징들에게 따뜻한 박수를 보내주길 바란다. 무의식의 장막을 걷고 나온 배우들에게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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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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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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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earing_heart
    • 손진주 에디터님! 이 시리즈가 시작되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유능함에 대한 집착과 지하창고에 숨겨놓은 마음들이 정말 공감이 갑니다. 특히 1번 3문단은 한 문장 한 문장이 마음에 너무나 와닿았어요ㅠㅠ 앞으로 들려주실 이야기가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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