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존재하는 소망 '경남 창녕군 길곡면' [공연]

글 입력 2018.01.08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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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시민의 일상과 불안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 내가 <경남 창녕군 길곡면>에 대한 소개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글귀이다. 이 글귀가 기억에 남은 것은 다름 아닌 ‘섬세하게’ 그려냈다는 것이 과연 어떤 방식으로 드러날 것인가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연극이 시작된 이후 10여분이 지나자마자 나는 섬세하다는 표현에 완전히 공감하게 되었다.

  첫째로, 이 작품에 등장하는 유일한 인물인 신혼 부부는 결혼한 사람들 특유의 밀착된, 진득한, 장난스러운 삶의 조각들을 보여준다. 같이 살고 있기에 즉 같이 생활하기 때문에 서로만이 할 수 있는 대화나 교감의 모습들을. 그리고 그 연기와 상황들이 퍽 자연스럽다. 나는 결혼을 하려면 두 사람의 사랑만큼이나 ‘쿵짝이 잘 맞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왔다. 서로 저 이가 나보다 더 나 자신인 것 마냥, 또한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내가 ‘야!’하면 ‘예!’하는 관계가 중요하다고. 그리고 나는 이 부부에게서 이러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내는 노상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고 남편은 무심해 보였지만 그러면서도 아내 말을 들어주고 따라주는 모습이 믿음직스러웠다.

  둘째로, 이들이 보여주는 사소하고 큰 모든 갈등들이 모두 지극히 삶 속 깊숙이 있는 것이었다. 극이 진행되는 초반에 보여지는 것은 지겨우리만큼 똑 같은, ‘더 편안하고 여유로운 삶에 대한 동경’ 뿐이었다. 내가 가지지 못하는 것에 대한 동경과 부러움, 그리고 ‘그래도 이만하면 괜찮아’라는 자신만의 만족. 그 반복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일 테다. 이런 연속적이고 사소한 내적인 갈등은 이 작품에서 가장 중점적인 큰 갈등으로 귀결된다. 바로 아이의 존재이다. 빠듯하지만 외식도 하고 보험도 들고 청약도 들며 나름 현재와 미래에 투자하는 바가 있던 그들은 아이의 존재 그 하나의 큰 변화로 인해 자신들의 거의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부부가 함께 계산기를 놓고 ‘뺄 것’을 논의하는 장면은 재미있지만 그 속사정을 알기에 슬프다. 또한 그 속사정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 서글프다. 아이를 키우며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말 일만하고 살아도 빠듯하다. 이는 모두 생활을 유지하기 위함인데 그들 자신의 생활은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고 여겨졌다.





  아내가 임신 소식을 알렸을 때 침묵하던 남편의 첫 마디는 ‘우리가 그래 조심했는데?’였다. 공연예술이기에 더욱 그런 것이겠지만, 아내의 감정에 짙게 이입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 한 마디는 나에게 너무 아프고 커다란 감정의 덩어리로 다가왔다. ‘우리’의 아이를 환영하지 않는 배우자라니. 아이는 둘 사이에서 생기는 존재인데도 불구하고 그 존재로 인해 모든 희망을 놓아버린 것 같은 남편의 태도를 보며 나는 무책임하고 잔인하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가 이해가 안 되는 것만은 아니었다. 단지 나는 나 또한 출산과 육아 문제에 있어 매우 현실적이고 비관적임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인 상황 때문에, 그 놈의 ‘지금 우리 상황’ 때문에 아이를 포기해야 하는 마음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기가 너무 어려웠을 뿐이다. 출산과 육아에 있어 나의 경험은 간접적인 것이라도 정말이지 0에 달하고, 어디에도 견줄 것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 심정을 감히 모두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내가 느꼈던 감정의 조각이 실제의 100분의 1이라고 하더라도 힘들고 찢어지는 듯 서러웠다는 것은 분명하다.

  나에게 정말 빠르게 날아와 각인된 장면은 해학적이었던 가계부 장면이 아닌, 아이를 지우기 위해 부부가 집을 떠나려고 할 때의 장면이었다. 병원에 가기 위해 집을 나오기 전, 아이를 위해 뜨던 스웨터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난 아내는, 이내 이건 정말 말도 안된다는 듯이, 그냥 그렇게 하는게 자연스러운 것처럼 너무나 빠르게 달려와 다시 그 스웨터를 주워 들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 장면은 나로 하여금 ‘부모에게 아이란 도대체 어떤 존재일까. 어떻기에 저런 모습이 당연하게 나오는 걸까’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 움직임은 정말 사소한데도 사랑이라던지, 보호라던지 하는 추상적인 개념들이 폭포처럼 쏟아지도록 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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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을 접하기 전 우려했던 것은 저출산 문제가 오랫동안 대두되고 있는 이 시점에 비출산을 마음 먹은 이들의 다짐을 더욱 굳히는 극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 속의 한 줄기 희망을 던져준다고 하지만 그 작은 희망이 과연 희망으로 다가올까? 격려가 될까?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연극은 남편이 서투른 솜씨로 색소폰을 연주하며 막을 내린다. 이 때 남편의 손에 들린 색소폰은 뺄 것은 다 뺀 가계부에서도 빠지지 않았던 남편의 소망이었다. 부부가 결코 색소폰을 포기하지 않았듯이, 그들은 아이 또한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껏 이 작품이 보여줄 희망이란 무언가 구체적인 해결방안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보여준 희망은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존재하는 소망 그 자체였다. 소망의 가치를 있는 그대로 지키는 것이었다. 나는 이 희망이 대단하리만치는 아니더라도, 오늘날 출산과 육아에 관심이 없고 비관적인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에게 그 자체가 가지는 울림을 조금이나마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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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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