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단편집 : 농담 [문학]

글 입력 2017.12.24 14:29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본문 사진.jpg


*
2017년 마지막 단편집 입니다.
단편집은 짝수달에만 연재 됩니다.



**********

 최초의 인간은 배꼽이 없다.
 내 배꼽이 사라졌다는 것을 처음 안 것은 열세 살 때였다. 흔적 없이 완만한 배를 만지며 제일 먼저 아버지에게 배꼽이 실종 됐다고 말했다.
 -농담하지 마라.
 아버지는 신문을 넘기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제야 난 내 배꼽의 실종이 농담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배꼽이 사라진 뒤로 내가 제일 먼저 한 것은 아버지의 와이셔츠를 다리는 일이었다. 매일 아침 세수를 하기도 전에 아버지의 셔츠를 꺼내 다렸고 셔츠에 어울리는 넥타이를 골랐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차츰 익숙해져갔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된장찌개를 끓이는 일이었다. 된장을 얼마나 넣고 얼마나 끓여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에 내가 만든 된장찌개가 음식물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일은 흔하다 못해 일상이 되었다. 언젠가 나는 아버지에게 맛있는 된장찌개를 위해서는 배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한참이나 나를 바라봤다. 아버지의 눈은 내 배꼽이 있을 자리를 보며 계속해서 눈썹을 찡그렸다.
 
 태석은 내가 차린 식탁을 보고 내게 반했다고 했다.
 -너는 요리를 정말 잘 해!
 태석은 내가 만들어준 음식을 먹으면 습관처럼 그렇게 말했다.
 -나는 배꼽이 없으니까.
 태석은 아버지와 같은 눈으로 나를 보았지만, 내 말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수영장에 갔을 때, 태석은 내 배꼽에 대해서 아는 유일한 사람이 됐다. 나는 부러 비키니를 입었다. 태석은 천천히 내 몸을 훑다가 배에서 시선을 멈췄다. 부끄러웠지만 태석에게는 말해주고 싶었다.
 -난 정말 배꼽이 없어.
 태석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날 태석과 나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 같은 것이 생긴 것 같다고 생각했다.

 세 번쯤 잤을 때 태석은 내 배꼽이 있어야 할 자리를 만지며 물었다.
 -쓸쓸하지 않아?
 태석이 물었다. 배꼽이 돋아나는 기분이었다.
 -처음이야, 배꼽에 대해서 물어본 사람은.
 그 후로 종종 태석은 내게 같을 질문을 했고, 나는 그럴 때마다 태석을 안았다. 어쩌면 배꼽이 없어서 다행인지도 모른다.
 
 태석의 작은 골방에서 함께 시험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태석은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그보다 짙은 얼굴빛으로 전공 책을 들여다봤고, 나는 맞은편에 앉아 태석의 졸음을 쫓아주기 위해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내가 아무도 내게 배꼽이 없다는 것을 모르는 이유가 무엇일지에 대해 물어보자 태석은 이렇게 대답했다.
 -사람을 만날 때 배꼽은 중요한 게 아니니까.
 된장찌개를 끓인 뒤에 태석을 식탁으로 불렀다. 찌개에 넣은 두부가 둥둥 떠 있었다.
 -내 배꼽이야.
 수저로 두부를 들어 태석의 밥 위에 올려놨다.
 -농담하지 마.
 태석이 두부와 밥을 입에 넣으며 말했다. 나는 대답대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배꼽은 어디 있을까? 언젠가의 아버지와 같은 얼굴로 된장찌개를 보았다. 정말로 배꼽이 들어 있는 된장찌개를 먹고 싶었다.
   

[김나영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