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거리 위 예술, 그래피티 [시각예술]

글 입력 2016.12.24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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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전당에서는 2017년 2월까지 그래피티를 주제로 한 “위대한 낙서전”을 기획해, 우리도 세계적인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거리의 ‘낙서’라 불리며 경계대상이 되곤 했었던 그래피티가 이제 한국 전시회에서 당당히 예술의 한 종류로 많은 사람들을 맞고 있다니, 격세지감인 것 같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겠지만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펼치며 벽에 낙서를 새기기 시작했을 때, 그래피티는 경찰들의 골칫거리에 불과했다. 아마 같은 맥락으로 허가되지 않은 지역에서 불법으로 그리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그래피티가 예술이라기보다는 거리를 더럽히고, 혼잡하게 하는 낙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그래피티가 고대 동굴이나 이집트의 벽화 등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그림들에서 기원했다고 보는 만큼, 엄밀히 우리에게도 그리 낯설고 먼 창작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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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서 그래피티는 60년대 말, 70년대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처음에는 반항적인 청소년이나 흑인, 소수 민족 등이 주도했다고 한다. 조금 더 발전되기 시작하면서 그래피티는 여러 종류도 구분되었는데, 대표적으로는 유명한 인물이나 캐릭터를 확대해서 그린듯한 모방화와 사회적인 문제나 불만, 인종차별이나 소수의 불이익 등을 단어나 그림 등으로 표출한 사회적 용도의 그래피티 등이 있다. 자신의 생각을 그림과 짧은 단어 등으로 표현해 말로 다 하지 못할 대화를 가능케 했던 대표적인 그래피티는 베를린 장벽 전체에서도 볼 수 있다. 당시 소련의 압력과 분열에 대해 독일인들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낼 수 있는 수단이었던 것이다. 현재에도 남아있는 베를린 장벽의 잔재에 그려진 알록달록한 그래피티들은 관광객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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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피티가 현대 예술로 처음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미셸 바스키아, 로빈 뱅크시, 키스 해링의 출연 덕분이었다. 특히 키스해링(Keith Harring)의 그래피티는 이 분야를 잘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한번쯤 접해보았을 지 모른다. 그는 더러운 뉴욕의 지하철에서, 더 나아가 세계의 도시에서, 곳곳의 벽에 활력 있는 선으로 상징적인 형상들을 그렸다. 낯설고 어려운 예술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낙서들을 여기 저기 그려대기 시작한 것이다. 삶과 죽음, 에이즈, 인종차별, 핵 전쟁과 같은 무거운 주제를 담아내면서도 간단한 선과 이미지를 이용해 사람들에게 말을 걸곤 했던 그의 그래피티는 이제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현대 예술의 한 가닥으로 자리잡았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어떨까?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그래피티를 많이 볼 수 없다. 그나마 녹사평 역에 가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을 표현해낸 이 그래피티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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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도시철도공사가 그래피티를 양지화하자는 의도로 그래피티 전용관을 마련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래피티가 허가되어 있는 공간은 적고, 한정되어 있다. 한국에는 능숙하고 유능한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이 없다기 보다는, 한국 정서상 대부분의 그래피티를 불법적인 낙서로 인식하고, 그에 따라 거부감을 가지고 있기에 그렇기도 할 것이다. 따라서 그래피티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한국에서의 좁은 입지 때문에 해외로 떠나기도 한다. 그 예로, 심찬양 씨는 미국에서 흑인이 한복을 입은 신선한 그래피티를 그려 인정받기도 했다. 한 때 SNS에서도 유명했던 소식이기에 익숙한 사람도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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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인 것이 백인에게, 흑인에게도 기막히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던 그는 LA의 컨테이너 야드에서 그래피티를 그리고서 더 좋은 벽을 지원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한국에서 그래피티를 그리는 것에 대한 여러 제한과 낮은 인지도에 힘들었기에 미국으로 떠났던 것이었는데, 오히려 미국인들에게 한국적인 매력으로 어필에 성공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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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전당에서는 세계적인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의 위대한 낙서가 전시되고 있는데, 정작 한국에서는 유능한 자국 아티스트들의 그래피티를 알아볼 수 없다는 것이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그래피티가 항상 아름답거나, 거창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점차 진정한 문화융성도시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넓은 의미의 예술을 인정하고, 관심을 기울이는 노력이 필요할 지도 모르겠다.


[최서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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