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치밀하고 안정적인 미래의 리듬 - 김영후 빅밴드 단독공연

『범인류적 유산, 그리고 우리가 맞이할 미래』
글 입력 2023.12.17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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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후 빅밴드 포스터.jpg

 

 

지난 겨울부터였던가, 재즈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치즈의 'Romance'라는 곡이 유명 재즈연주곡 'Autumn leaves'를 활용했다는 것도 그즈음 알았었죠. 제 지독한 상대음감은 재즈를 위해 개발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누군가는 고약하게 느낄지도 모를 음의 조합을 고개를 까닥거리며 즐겼습니다.


저는 여러 자극을 한 번에 느끼길 힘들어해서 향수 입문 당시 노트의 수가 적은 '단순한 향'을 취향으로 내걸고 시작했는데요, 재즈에 입문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일 년 간 라이브로 즐긴 재즈는 아주 적은 수의 현대악기 구성이었습니다. 합주해본 두 곡은 드럼, 베이스, 키보드의 조합이었고, 이번 가을 다녀온 서울숲재즈페스티벌에서 만난 팀들도 대게 3-4개의 악기 조합으로 만났습니다.


고급스럽다고 유명한 향수를 시향하면서도 관자놀이를 짚던 제가 빅밴드 공연의 복합적인 소리를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호기심과는 별개로 그저 악기가 늘어나는 게 무서워서 엄두를 내지 않았다고 말하는 게 맞겠습니다.


그러던 중 아트인사이트의 초대를 받았습니다. 반 년 만에, 게다가 제일 바쁜 연말 시즌에 리뷰를 결심하게 만든 공연이었습니다. 음악을 사랑하는 데다가 군더더기 없이 네모난 의미를 전하는 단어에 홀리는 제게 '범인류적인-'이 타이틀 서두에 놓인 재즈 공연은 그야말로 불가항이었나봅니다.

 


김영후 (1).JPG

 

 

김영후 빅밴드의 리더, 김영후 씨는 작곡가이자 베이시스트입니다. 그는 콘트라베이스와 베이스를 모두 연주하며 묵직한 리듬으로 밴드를 이끕니다. 오랜 기간 밴드를 경험하며 드럼과 베이스를 향한 독특한 애정을 가지게 된 저는 이 모던 재즈 빅밴드 공연을 보면서도 그 자리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시크한 화이트 자켓 차림의 드러머 서수진 씨의 드럼 사운드는 군더더기 없었고, 마지막 곡에서 스틱 없는 연주를 선보일 때는 심장이 과하게 콩닥거리기까지 했습니다. 맥락과 무관한 은근한 고백을 남깁니다.


 

-프로그램 구성-

 

1. Dancing on the Floor

2. Cognitive Revolution

3. Network Song

4. Artificial Intelligence and Hyperconnectivity

5. Florescence

6. New Discoveries

7.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소중한 것

 

앵콜곡: Pure imagination (초콜릿 공장의 비밀 OST)

 


곡이 끝날 때마다 솔로 아티스트를 소개받을 수 있었는데, 이 진행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솔로 파트는 그 소리에 무지한 관객도 그 소리를 단번에 이해하고 감탄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특정 악기의 사운드가 톡 터지는 순간에 기대어 트럼펫과 트럼본의 차이를 문장이 아닌 소리로 이해하고, 플룻과 클라리넷에 다시금 반할 수 있었습니다.


머리가 크고는 거의 처음 보다시피한 빅밴드 공연에 그나마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던 건 리더 김영후 씨의 해설 덕이었습니다. 모든 곡에 그가 바라보는 세상이 담겨있었고, 이를 '작곡가다운 해설'이라는 말에 담기엔 다소 부족하게까지 느껴졌습니다. 그는 진중하고 심오했으며, 세상을 바라보는 또렷한 형태가 있는 듯 했습니다. 그는 이 공연이 전하는 철학적인 의미와 연주가 과도하게 묵직하게 전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지 가벼운 농담을 곁들이기도 했지만, 그 유머 덕에 저는 더욱 심란해지도 했어요. 얽히고 섥힌 생각을 내내 풀어낼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의 무거운 운명 덕에 저는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정통 재즈 오케스트라는 아직이지만, 드럼과 함께한 모던 빅밴드라 이해의 허들이 낮았던 것도 기쁘게 다가왔습니다. 그간 차근차근 음악 세계를 넓혀온 제게도 주책맞게 고마워지기도 했네요. 악기가 많아 머리가 아파오면 어쩌나, 하던 걱정이 무색하게 17개의 악기, 특히 14개의 금관악기(약간의 목관악기 요소를 곁들인)들은 하나처럼 움직여서 머리와 관련한 노력없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김영후 빅밴드 (2).JPG

 

 

열일곱의 악기는 치밀하게 얽힙니다. 일말의 어정한 충돌 없이 듣기 좋게 어울리는 음들은 그 질긴 조화 덕에 리듬감까지 잃지 않죠. 여럿이 함께 하는 재즈곡에서도 '재즈'할 수 있을까. 가장 궁금했던 지점입니다. 인트로부터 김영후 씨가 손박자와 입박자를 함께 제공하고 세션들이 모두 하나의 음악으로 몰입하는 순간과 그 이후의 소리가 맞아떨어지는 모든 지점에서 완전한 합과 재즈를 느꼈습니다. 


재즈의 즉흥성은 완전함에서 출발합니다. 어떤 돌발성에도 대응할 수 있는 준비는 음악에 확신을 불어넣습니다. 안정적인 현장 음악은 관객을 안심시킵니다. 어디서도 긴장하지 않고 몸을 맡길 수 있죠. 김영후의 빅밴드는 이 어려운 주제와 풍성한 음악 속에서도 관객을 압도하기보다는 관객과 어우러지는 쪽을 택했습니다. 우리는 묵직함에 압도당하기보다는 원하는 순간에 호응하고 박수치길 김영후 씨에게 직접 종용당하기도 했습니다.


음악평론가 서민정갑의 '범인류적 유산' 음반 리뷰를 인용합니다.

 

"재즈의 방식으로 오늘을 기록하고 묻고 답하려 했을 뿐 아니라, 내용에 준하는 언어의 깊이를 담보해낸 드문 작품이다."


그의 말처럼, 김영후 빅밴드의 음악과 공연은 그 장엄한 주제가 그저 번지르르한 것으로 느껴지지 않도록, 동등하게 묵직한 형태로 연주하고 관객에 제공했습니다. 관객이 음악 속에서 결국은 행복을 찾기를 바라는 그의 마음은, 앵콜곡에도 담겨있었습니다. 초콜릿 공장의 비밀 OST인 'Pure Imagination'은 그 상승하는 기대감에 절로 몸을 움직일 수밖에 없는 익숙한 곡이죠.


앞선 한 시간의 공연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 밴드가 내어주는 고취적인 미래의 리듬에 순순히 몸을 휘적였습니다.


 

2023.12.10 소월아트홀

김영후 빅밴드 단독공연

『범인류적 유산, 그리고 우리가 맞이할 미래』

 

 

 

아트인사이트 컬쳐리스트 김희진.jpg

 

 

[김희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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