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순수한 사람 말고 용감한 사람

<아임 낫 스케어드>(I’m Not Scared, 2003)
글 입력 2024.06.20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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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innocence the difference between a boy and a man?

순수함이 아이와 어른의 차이인가?

 

 

미국 록 밴드 본조비(Bon Jovi)가 부른 Have a Nice Day의 가사 일부다. 순수함이 아이와 어른의 차이점인가? 아이들은 모두 순수하며, 어른은 순수함을 가질 수 없는가? 이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쉬웠다면 본조비가 이런 질문을 던질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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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임 낫 스케어드>(I’m Not Scared, 2003)의 주인공은 순수해 보이는 이탈리아 소년 미카엘이다. 엄한 면도 있지만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님, 그리고 어린 여동생과 함께 사는 미카엘은 여동생이 잃어버린 안경을 찾다가 수상한 구덩이를 발견하고, 그 안에서 거지 같은 몰골을 한 채 갇힌 또래 소년 필리포를 만난다.

 

 


어른들 속의 아이, 사회 속의 개인


 

영화는 전적으로 미카엘의 시선을 통해서만 전개되며 관객 또한 미카엘의 어깨에 앉아 이야기를 따라간다.

 

어른들끼리 하는 ‘애들은 몰라도 되는 이야기’를 문틈으로 훔쳐 듣고, 마을 어른들 모두가 한데 모여 숙덕거릴 때는 그마저도 듣지 못한다. 어린 주인공은 시야에서도 행동반경에서도 큰 제한을 가지는 것 같지만, 바로 이 제한이 작품 안에서 유용하게 쓰인다.

 

어른들 사이에 끼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누구도 내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는 아이들의 상황. 이 어려움을 토로하면 어른들은 그냥 귀여워하거나 아예 성가셔하지만, 실제로 이때 아이들이 느끼는 감정은 무력감에 가깝다. 그리고 이 감정은 사회적 문제에 끼인 개인의 무력감과도 닮았다. 사회의 문제로 인해 고통받는 어른은 어린아이만큼이나 무력하다.


<아임 낫 스케어드>의 어른들 또한 사회적 문제 속 무력한 개인이다. ‘어른들의 사정’이 영화에서 모두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필리포의 머리카락 색만으로도 암시는 충분하다. 미카엘을 포함한 영화 속 등장인물이 모두 흑발인 가운데, 필리포만이 금발이다. 이는 영화가 1970년대 이탈리아 남부를 배경으로 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일찍이 산업화가 이루어진 이탈리아 북부, 그리고 산업화에 소외되어 여전히 전통적 농업 사회에 머무르고 있는 남부 사이의 경제적 차이는 큰 남북 갈등을 낳았고 이 문제는 현재까지도 이어진다.


마을 어른들은 사회적 구조 탓에 벗어날 수 없는 빈곤에 불만을 품고 그 해결책으로서 필리포를 납치한다. 이들이 사회 속의 무력한 개인일 뿐, 오로지 악인이기만 한 것이 아님은 영화 안에서 꾸준히 드러난다. 아이들을 아끼는 아버지의 행동, 죄책감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어머니의 말, 심지어 이 일을 주도하는 아버지의 친구마저도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어쩔 수 없이’ 이런 짓을 저지르고 있다는 듯이 나타난다. 이들은 대단한 악인이 아니며, 그저 무작위로 뽑히는 성냥처럼 그런 상황에 부닥쳤을 뿐이다.

 

 

 

순수라는 색안경이 벗겨진 후


 

동시에, 영화는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지도 않는다. 주인공 미카엘의 존재가 그것을 막는다.

 

이 영화는 얼핏 보면 아이들이 순수함의 힘으로 나쁜 어른들을 무찌르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단순히 순수한 아이들과 때 묻은 어른들의 대치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아이들의 장난에는 이미 잔인함이 도사리고, 이불 속에서 읽는 동화도 마냥 아름답지 않다.

 

필리포를 처음 발견했을 때도 미카엘은 무언가 석연치 않음을 직감하고 어른들에게 곧이곧대로 알리지 않는다. 미카엘이 아직 각박한 세상을 제대로 맛보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 때가 묻지 않았기 때문에 어른들과 맞서 싸우며 필리포를 구할 수 있었다고 하기에, 미카엘은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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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엘이 ‘어른들의 세상’을 은연중에 알고 있음은 그가 필리포를 처음 봤을 때 잃어버린 안경을 찾으러 가던 길이라는 걸로 이미 드러난다. 흔히들 색안경이라는 단어는 편견으로 세상을 왜곡해 볼 때 쓰는 부정적 표현이지만, 세상을 걸러보게 해주는 순수함도 일종의 색안경일 것이다. 미카엘은 필리포를 발견한 순간 다시는 색안경을 쓸 수 없게 된다. 순수라는 색안경을 강탈당한 것은 필리포도 마찬가지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납치당한 필리포는 얼떨결에 진짜 세상을 마주해야 한다. 그러나 그는 눈을 뜨지 못하고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하길 선택한다. 그런 필리포가 다시 눈을 뜨게 도와주는 것 역시 미카엘이다. 그렇게 필리포는 순수함 없이도 세상을 볼 수 있게 된다.

 

필리포를 빛 아래로 이끄는 미카엘의 힘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의 순진무구함이 아니다. 미카엘은 대신 벌칙을 받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친구를 도와주고, 떨어져서 다칠지도 모른다는 걸 알면서도 높은 대들보를 건너가는 아이이다. 필리포와 미카엘을 지킨 것은, 위험한 것을 알지만 무서움을 꾹 참고선 해야 할 일을 해내는 미카엘의 용기다. 미카엘과 필리포가 승리한 이유는 순수해서가 아니라 두려움을 이겨내는 용기를 가졌기 때문이다. 마을 어른들이 패배한 이유는 그들이 세월의 풍파를 겪으며 불가피하게 순수함을 잃어서가 아니라 세상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서이다. 아직도 눈을 뜨지 못한 것은 필리포가 아닌 그 어른들이다.

 

 

 

용기를 지닌 사람과 잃은 사람


 

다시 글을 연 노래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순수함이 아이와 어른의 차이점인가? 적어도 이 영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답은 ‘아니’다. 미카엘과 마을 어른들의 차이점은 순수의 유무도 아니고, 나이의 많고 적음에도 아니다. 다만, 용기를 지닌 사람과 잃은 사람의 차이다. 마땅한 일을 하는 데 순수함은 중요하지 않다. 세상의 쓴맛을 알아버렸다는 것은 핑계일 뿐, 용감한 이는 마땅한 일을 해낸다.

 

아마 노래의 화자가 아이와 어른의 차이가 순수함이냐는 질문을 던진 이유는, 자신은 어른이지만 여전히 소년의 순수를 품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기 때문일 테다. 하지만 그 순수함을 잃고 싶지 않은 마음 기저에는 사실, 순수함을 잃고도 마땅한 일을 해내는 용기를 향한 욕구가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Is innocence the difference between a boy and a man?

My daddy lived a lie, it's just the price that he paid

순수함이 아이와 어른의 차이인가?

내 아버지는 진실되지 못한 삶을 살길 선택했어
(...)

We're living in the broken home of hopes and dreams

우린 부서진 희망과 꿈의 안식에 살고 있어

 

 

위에서 소개한 가사의 바로 다음 줄, 그리고 그 뒤에 나오는 내용이다. 미카엘의 아버지처럼 불법적이거나 비윤리적인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화자의 아버지도 자신이 원하던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이고, 그런 아버지를 보며 자란 화자는 세상의 녹록치 않음을 깨닫는다. 화자 또한 이미 색안경을 잃은 채이며, 얼마든지 잔인할 수 있고 실제로도 잔혹한 현실을 인식한다.

 

그럼에도 화자는 아버지와 달리, 자신의 삶을 살겠다고 선언한다.

 

 

Shining like a diamond, rolling with the dice

Standing on the ledge, I show the wind how to fly

When the world gets in my face

I say, have a nice day

Have a nice day

다이아몬드처럼 빛나고, 주사위를 굴리듯 운명에 날 맡길래

벼랑 끝에 서서는 바람에게 나는 법을 보여주지

그러다 세상이 내게 달려들면

난 이렇게 말해, 좋은 하루 되라고

나도 알아서 좋은 하루 보낼게

 

 

순수함은 항상 강제로 부여되고 강제로 박탈당한다. <아임 낫 스케어드>의 미카엘은 어른들의 세상에서 강제로 배제당하면서도, 강제로 세상의 잔인함을 배워야 했다. 필리포도 그랬고, 노래의 화자도 그렇다. 이처럼 순수함의 유지 여부는 우리의 선택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용기다. 용감함을 유지하는 것은 우리의 선택으로 남는다. 어쩌면 이것이 어른들의 세상 속 아이가, 사회적 문제 속 개인이, ‘부서진 희망과 꿈의 안식’에 사는 우리가 살아남는 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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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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