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가벼우면서도 무거운 간송, 그의 세상으로 [시각예술]
글 입력 2016.12.04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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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다녀온 일이 있었다. DDP에서는 항상 감각적인 전시를 내어 놓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방문할 때마다 즐거운 곳이다. 이번에 내가 DDP에서 발견한 전시는 2014년부터 ‘시리즈’로 이어지고 있는 <간송문화전>이었다. 올해는 벌써 7부를 맞았는데, 오랜만에 찾은 그 공간에서 전시 포스터며 현수막이며 보고 있자니 작년에 내가 보고 온 <간송문화전 5부 : 화훼영모 - 자연을 품다>의 기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간송은 어떤 사람인가?한국의 교육가이자 문화재 수집가로 민족문화재를 수집하는 데 힘썼으며 한남서림(翰南書林)을 지원·경영하며 문화재가 일본인에게 넘어가는 것을 막았다. 보성(普成)고보를 인수하여 교주가 되었으며 광복 후, 보성중학교 교장과 문화재 보존위원을 역임하였다.[네이버 지식백과] 전형필 [全鎣弼] (두산백과)위에 있는 그의 일생의 요약글만으로는 정말이지 그를 다 표현할 수 없다. 내가 생각하는 그는 이런 단순한 몇 문장 외로도 지식과 교양, 재산까지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이자, 힘든 시기의 한국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문화·예술의 힘으로 펼친 몇 안되는 사람이며, 때문에 청소년기 시절 나의 모든 존경심을 받은 사람이다.그가 설립한 간송미술관은 봄, 가을마다 한 번씩, 연중 2회뿐이 개방하지 않기 때문에 DDP에서 진행되는 3개월간의 간송문화전은 그의 수집품들을 더욱 찾을 수 있고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간송 전형필은 독립선언서를 읽었던 민족대표 33인 중 1인인 위창 오세창의 후견인이었다. 그에게서 ‘간송’이라는 호를 받았다. <간송문화전 5부 : 화훼영모 - 자연을 품다>에 들어서면 간송 전형필의 독립선언서 필사본을 발견하게 되는데, 나는 이를 보고나서 떠올릴 때면 항상 마음이 먹먹해진다. 본래 감정이나 느낌이란 것이 다 그렇겠지만 정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먹먹함이 찾아온다. 이처럼 간송 전형필을 설명하기 위한 작품들을 통해 마음 속에 울림을 주는 것으로 시작해서 이 전시는 화훼영모에 담긴 다양한 자연을 보여주었다.화훼영모의 화훼란 꽃과 풀을 뜻하며 영모란 깃과 털이 달린 동물을 뜻한다. 간송문화전 5부에서는 이처럼 화훼가 전시의 중요한 테마이기 때문에 사군자화 역시 중요한 장르로 등장한다.<심사정, 오상고절>이 그림이 그려진 시기의 중국에서는 국화가 사군자에 이미 포함되어 있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아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그림이 국화가 우리나라에서 사군자에 포함되는 것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도 그럴것이 국화가 한 송이만 피어있는데도 초라해보이지 않는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현대에서 국화라 함은 뭔가 죽음과 관련되어 생각된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을 은연중에 가지고 있을 현대인인데도 어둡고 침침해 보이지 않았고 맑고 순수한 빛을 내는 꿋꿋한 느낌의 국화였다.<이정, 풍죽>이 작품은 비디오작품(차동훈, 풍죽예찬)이랑 같이 전시되었다. 차동훈의 비디오작품은 이 그림이 그려진 장소에서 찍은 것이라고 했다. 대나무잎이 바람에 나부끼는 장면, 혹은 별이 빛나는 장면이 작품을 기준으로 양쪽에 있는 흰 벽면에 프로젝터로 비추어진다. 이는 화려하지 않아도 고고하게 아름답다는 것이 무엇인지 실감하게 한다. 풍죽과 풍죽예찬을 전시하는 공간은 다른 작품들의 공간과 따로 분리되어 있는데 한참을 그 '공간'에서 떠날 수가 없었다. 물론 작품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나는 이 공간에서 공간과 전시의 디스플레이를 디자인하는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기획자의 역할이란 이런 것이라고 느꼈다. 기획자란 직업이란 참 대단하다. 상상하기 어려운 과거의 인물과 우리가 소통하게 도와주는 사람.전시장 마지막에는 ‘매난국죽(梅蘭菊竹)’을 테마로 한 짧은 영상 하나가 나왔다. 그 영상은 저 멀리 떨어진 조선시대의 작품들을 보여주면서도 현대적인 느낌이 들었고 현대인들이 좋아할 것 같은 촌스럽지 않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느낌이었다. 영상에서는 매난국죽을 소재로 한 옛 사람들의 문장을 보여주었다. 그 문장에서는 현대인들이 도무지 따라갈래야 따라갈 수 없는 당시 사람들, 그리고 그 시대만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조금은 서늘한 온도의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가벼운 깃털 같은 문장들이었으나 그럼에도 낭만적이며 그럼에도 천박하지 않다. 그 속에 담긴 나름대로의 철학과 의미들로 바위같은 무게가 느껴졌다.지금껏 비디오라던가 영상이라던가 하는 현대의 디지털 매체들로 인해 작품들의 무게와 가치가 떨어지는 듯한 전시는 수도 없이 보았다. 하지만 내 추억 속에서 <간송문화전 5부 : 화훼영모 - 자연을 품다>처럼 현대와 과거의 산물이 잘 어우러지고 또 각 시대의 인물들이 ‘잘 만났다’고 여겨진 전시는 처음이었다. 올해의 전시는 과연 어떨 것인가. 조만간 DDP를 다시 한 번 찾아야겠다.[정다빈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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