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서울이 아닌 곳에서 '기꺼이 유영하기' - 방경지 기획자

글 입력 2023.11.26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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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의 기본값이 서울로 여겨질 때가 많다. 실제로 공연, 전시는 물론이고 각종 문화행사와 축제, 예술 관련 소모임과 교육의 기회도 서울에 몰려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문화예술업계에 종사하려는 청년에게는 별 선택지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거주지를 서울로 옮기거나 최소한 활동 지역을 서울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광명시 청년동의 ‘비서울 프로젝트’는 서울과 서울 아닌 지역을 오가는 예술가들의 좀 더 다양한 목소리를 탐구하고자 한다. ‘비서울 온라인 설문’, ‘비서울 메이킹’, ‘비서울 인터뷰’, ‘비서울 포럼’으로 이루어진 이 프로젝트가 드러내는 것은 하나로 수렴되지 않는 이야기들이다. 서울행을 꿈꾸는 예술가(BE서울)만이 아니라 서울이 아닌 곳에서 활동을 이어가는 예술가(非서울), 서울행에 성공했지만 다시 지역으로 돌아온 예술가 등 여러 입장에 놓인 이들의 생생한 말이 프로젝트에 담겼다.


지난 17일부터 19일까지 청년동에서는 ‘비서울 프로젝트’ 중 ‘비서울 메이킹’에 참여한 작가 5명의 작품을 볼 수 있었다. 그중 한 명인 방경지 기획자를 만났다. 그는 서울과 서울이 아닌 지역을 오가며 활동하는 예술가 4명의 이야기를 ‘기꺼이 유영하기’라는 제목으로 엮었다. 미술사학을 전공한 그도 한때는 서울에서만 자신의 적성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서울만이 아니라 자신이 사는 도시 의정부에서도 '기꺼이 유영' 중인 방경지 기획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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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프로젝트가 ‘비서울 프로젝트’ 전체의 부록 같은 느낌의

작업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반갑습니다.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시각예술과 로컬에 관심을 가지고 전시기획과 문화기획을 하는 기획자 방경지입니다. 미술사학과 석사 과정 수료 후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프리랜서로 지내다 올해부터 뮤지엄한미연구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물론 남는 시간을 이용해 예술가들과 하는 프로젝트도 계속하고 있어요. 대학원 논문 마감일이 얼마 남지 않아 요즘은 석사 논문도 쓰는 중입니다.

 

 

무척 바쁘게 지내시는 듯한데, 이번 ‘비서울 프로젝트’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되셨나요?


‘비서울 프로젝트’ 기획자님께서 제 포트폴리오를 보고 먼저 연락을 주셨어요. 제가 그동안 기획해 온 지역 기반 프로젝트를 살펴보시고, 제가 가진 문제의식이 비서울 프로젝트와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주신 것 같아요.

 

 

프로젝트 참가자는 경지님을 제외하고는 모두 창작자예요. 기획이 아니라 직접 전시에 참여해달라는 제안은 뜻밖이었겠어요.


맞아요. 감사한 한편으로 자신이 없기도 했어요. 제가 지금껏 해온 일은 기획이었으니까요. 그 기획을 현실에서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였거든요. 그래도 프로젝트 주제가 흥미로워서 일단 해보기로 결정했죠. 제 프로젝트가 ‘비서울 프로젝트’ 전체의 부록 같은 느낌의 작업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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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생각해보니 지역에서 활동하는 것을

나만의 독특한 정체성으로 삼을 수도 있겠더라고요."

 

 

이번 프로젝트 '기꺼이 유영하기'에서 예술가 4명의 이야기를 짧은 메모와 음성 등 여러 형태로 모았는데요, 이분들은 어떻게 모인 건지도 궁금해요.


의정부에서 다양한 문화예술 행사와 교육,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연을 맺게 된 예술가분이 많아요. 이번 프로젝트도 그렇게 알고 있던 예술가 중에서 한 분야에 국한되지 않도록 네 분을 모았습니다. 장윤지 작가님은 회화, 안중필 작가님은 사진 분야에서 활동해요. 강현욱 작가님은 연극 연출을 하시고, 김은비 연주자님은 가야금을 연주하지요.


각자의 입장도 다양하길 바랐어요. 지역에 거주하면서 활동도 지역에서 하는 분이 계신가 하면, 지역에 거주하며 활동은 서울에서 하는 분도 있고, 서울에 거주하면서 활동은 서울과 서울 아닌 곳 상관없이 하시는 분도 계시죠.

 

 

원래 알고 계시던 분들이지만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또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을 것 같아요.


‘비서울’이라는 키워드로 네 가지 질문을 드렸는데 새로운 이야기가 많이 나왔어요. 서로의 분야가 다르니 입장도 많이 다르더라고요. 예를 들어, 가야금을 연주하는 김은비 님은 장소 자체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하셨어요. 사업이 진행되면 어차피 전국을 돌아다니게 되니까요. 물론 활동 초반에는 서울에 더 기회가 많은 것 같아 아쉽기도 했는데, 활동을 이어갈수록 나중에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졌다고 해요.


반면 연극 연출을 하시는 강형욱 님의 경우 지역에서 연극을 만들며 겪는 어려움이 많다고 해요. 장르 특성상 소극장이 몰려 있는 혜화에서 주로 공연이 이루어지고, 이 외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는 공연이 잘 없잖아요. 그러다 보니 지역에서 공연을 한번 하려면 조명도 음향 시스템도 처음부터 다시 손봐야 해서 품이 많이 든다고 해요. 지역의 행정 담당자가 연극 전용 무대의 필요성을 이해하지 못해서 그냥 강당에서 하라고 권할 때도 있고요.

 

 

그럼 서울이 아닌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할 때의 장점으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서울에서 거주하며 활동도 서울에서 하시는 분은 오히려 지역의 특수성이 부럽다는 말씀을 하시기도 했어요. 인프라도 좋고 편리한 만큼 모두가 서울로 몰리기에 경쟁도 심하다는 거죠. 그 얘기를 들으며 지역 기반으로 활동하는 우리는 ‘배부른 소리’라며 웃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지역에서 활동하는 것을 나만의 독특한 정체성으로 삼을 수도 있겠더라고요.

 

 

문화예술 기획자는 예술가와는 또 다른 입장일 것 같아요. 경지님도 지난 몇 년간 의정부에서 활동을 이어 왔는데, 어떤 장단점이 있었나요?


일단 문화예술 쪽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절 많이 환영해 주세요. 특히 전시 기획 쪽은 거의 못 본 것 같아요. 선례가 없기에 제가 선구자가 될 수 있어요. 바로 실무에 투입되어 좀 더 과감하게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볼 수도 있고요.


단점은, 제가 관심을 두고 있는 시각예술 분야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의논할 사람이 부족하다는 거예요. 물론 의정부에 거주하는 전시 기획자도 분명히 있을 거라 생각해요. 하지만 의정부 안에서 전시를 기획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기에 눈에 띄지 않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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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기획자로 활동을 하면서부터

의정부라는 도시의 레이어가 굉장히 많다는 걸 알게 되었죠. 

지역성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하게 되었고요."

 

 

인터뷰를 시작할 때 로컬에 관심을 갖게 된 지 3, 4년 되었다고 하셨는데, 지역에서 활동하시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원래는 학부 졸업 후 서울과 고양에서 근무했어요. 의정부는 제가 자란 곳이고 지금도 살고 있는 도시이지만, 제 전공인 미술사학을 살릴 수 있는 일자리를 찾기는 어려웠거든요. 다른 지역에서 일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죠. 그러다가 우연찮게 의정부에 미술도서관이 생겼어요. 거기서 학예 인턴으로 근무를 했고, 자연스럽게 의정부문화재단에서 하는 다양한 사업과 기획에도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로컬에 관심이 생겼어요.

 

 

실제로 거주 중인 도시에서 문화예술 기획을 하며 느낀 점은 무엇인가요?


오래 살았다고 그 지역에 애착이 생기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저 역시 이전까지는 의정부에 큰 관심이 없었거든요. 문화기획자로 활동을 하면서부터 의정부라는 도시의 레이어가 굉장히 많다는 걸 알게 되었죠. 지역성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하게 되었고요. 의정부를 여러 각도에서 살펴보며 흥미와 애정이 생겼어요.

 

 

결국 예술가가 지역에 애정을 갖고 관련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지역에서 만드는 자리나 기회가 많아져야 할 것 같아요.


맞아요. 미술도서관 일을 하며 알게 된 분들과도 그때 우리가 미술도서관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만났을까 이야기 나눠요. 같은 지역에 살아도 계기가 없다면 예술인들이 모이기가 어려워요. 굳이 모일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경우도 많고요. 

 

예컨대 의정부에 살며 연극을 하시는 분들은 혜화가 의정부와 가까우니까 다 혜화로 가세요. 굳이 의정부라는 공통분모가 중요하지 않은 것이죠. 그래서 지역 기반 예술가와 문화예술 기획자들이 서로를 인지하는 그 ‘처음’을 위해서는 기관이나 지자체의 도움이 필요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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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고민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가/기획자 개인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당장 짧은 시일 내에 서울과의 격차를 좁히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요. 서울을 따라가는 대신, 지역에 있으면서 느린 호흡으로 활동을 계속해보는 것도 방법이에요. 그렇다고 현실에 안주하고 포기하자는 건 아니에요. 지치더라도 더 많이 발언하고 새로운 시도를 해봐야 해요. 그래야 예술가 개개인의 경험치도 늘어나고 지역 행정가의 경험치도 쌓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역에서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분이 많아요. 찾아보면 지역 예술인들의 네트워킹이 계속 이루어지고 있지요. 그러다 ‘비서울 프로젝트’처럼 함께 작업을 하는 경우도 있고요. 지역 격차를 개인이 해소하는 건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고민하는 게 중요합니다.


물론 제가 살고 활동하는 의정부가 수도권인 것도 무시할 수 없어요. 서울 외의 지역을 ‘비서울’로 묶긴 해요. 하지만 수도권, 광역시와 그렇지 않은 타 지역 간에는 또 차이가 있을 거예요. 그런 부분도 더 이야기되어야 할 것 같아요.

 

 

지역에서 예술 활동을 시작하려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포트폴리오에서 문화예술 업계 스타터를 위해 쓰신 글을 봤어요. 스타터의 역량 강화에 관심이 많다고 하셨죠.


그 글들은 과거의 저를 생각하며 쓴 것이기도 해요. 제가 20대 초반까지는 치위생사로 일하다가 업을 바꿔야겠다고 마음먹고 전공을 바꿔 학교를 다시 간 케이스인데요, 그때 정보가 없어서 많이 헤맸거든요. 다른 분들은 저보다 시행착오가 적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죠.


또 미술사학과에서 정확히 뭘 배우는지 모르고 와서 방황하는 친구들을 종종 봤어요. 어떤 작가가 좋아서, 또는 전시가 좋아서 미술사학과에 온 경우가 많은데, 사실 여기는 ‘연구하는 법’을 배우는 곳에 가깝거든요. 그런 친구들도 사전에 알 수 있는 정보가 더 많다면 덜 헤맬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언급하신 것 외에도 스타터의 역량 강화를 위해 하셨던 활동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저 혼자 한 건 아니고 학교 관계자분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최근에는 학교에서 서양화과와 미술사학과와 교류 모임을 만들었어요. 미술사학과가 현장에서 조금 뒤처지는 부분이 있거든요. 연구하랴 논문 쓰랴 바쁘니까 실제 현장에서의 감을 따라잡기는 어려운 거예요. 미술사학과 학생은 실제 기획 경험이 필요하고 이제 막 시작하는 작가들에게는 전시 기회가 필요하니 서로 만나면 경험을 쌓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그렇게 일을 벌이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제가 오지랖이 좀 넓어요. (웃음) 하지만 생각해보면 결국엔 애정과 관심인 것 같아요. 고등학생 때도 그림과 전시 보는 걸 좋아했고, 치위생사로 일하면서도 쉬는 날이면 늘 미술관에 갔죠. 그러다 이걸로 먹고살아야겠다는 결심까지 했어요. 이렇게 먹고살기가 어려울 줄 모르고… (웃음) 그래도 계속하고 싶어요.

 

 

지금까지 말씀 잘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제 곧 12월인데, 내년에 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호흡이 긴 프로젝트, 하나의 주제로 오랫동안 고민해볼 수 있는 지역 기반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어요. 지금 의정부에서 예전에 미군이 살던 외기노조 아파트를 중심으로 ‘산장’이라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데, 이런 주제를 더 깊게 탐구해보고 싶기도 합니다.

 

 

*사진제공: 광명시 청년동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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