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국가의 탄생, 영화와 이데올로기 [시각예술]

글 입력 2016.10.14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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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라는 개념을 우리의 삶 중심으로 끌고 온 것은 마르크스였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이데올로기는 사회의 불평등한 관계들을 재생산하게 해주는 요소이다. 지배 계급들은 이데올로기의 생산자로서 종속적인 계급들이 스스로를 인식하는 방식과 그들이 국가를 인식하는 방식을 통제한다. 이 과정에서 종속적인 계급들은 자신들의 위치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는데, 이 ‘허위 의식’을 가지게 한다는 것에서 마르크스는 이데올로기의 중요성을 말한다.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의 개념을 지배-피지배 관계에만 한정시키지 않고, 조금 더 큰 범위로 논지를 끌고 온다.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는 개인들을 주체들로 호명한다”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개인들이 자신을 이데올로기의 주체로서 인식하고 그것과 동일시하는 것을 일컫는다. 마르크스와는 다르게 알튀세르는 계급에 관계없이, 개인이 이데올로기를 인지하는 순간 개인과 이데올로기는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린다는 것을 강조한다.


쿨레쇼프효과.jpg 


관객이 영화와 마주하는 과정은 개인이 이데올로기를 마주하는 과정과 흡사하다. 관객 또한 스크린 앞에 앉는 순간 스크린과 관계 맺게 되는데, 영화의 서사와 이미지들은 관객을 안전한(간접적인 관계맺음이기에) 주체로 호명하게 된다. 이런 기본적인 속성은 여타의 예술장르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지만, 영화를 보다 이데올로기적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은, 필수적으로 ‘편집’을 동반하게 되는 영화의 특성 때문이다. 영화 산업의 지배층이라고 할 수 있는 헐리우드 영화들은 기본적으로 ‘이음매 없는 편집’을 추구한다. 쉽게 말해 관객들이 영화의 서사를 현실감 있게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 편집이 되지 않는 것처럼 편집을 해나가는 것이 헐리우드 영화의 지향점인 것이다. 편집점이 없는 편집들은 관객이 서사 속으로 쉽게 들어가도록 만들어주고, 관객들은 불편함 없이 서사 속 인물들과 동일시하는 과정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 동일시는 개인이 이데올로기를 자연스럽게 여기는 것과 같은 형태로 관객이 영화의 서사를 자연스럽게 여기게 만든다. 영화가 탁월한 이데올로기적 장치라는 것을 단편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쿨레쇼프 실험’이다. 쿨레쇼프 실험은 남성의 얼굴 장면 + 음식 장면, 남성의 얼굴 장면 + 죽은 소녀가 누워있는 장면을 보여주었을 때, 남성의 얼굴 장면이 같은 장면임에도 음식 장면을 뒤이어 보았을 때는 배고픔을, 죽은 소녀의 장면을 뒤이어 봤을 때는 슬픔을 느낀다고 증명한 실험이다. 이 쿨레쇼프 실험은 영화의 편집이 얼마나 관객을 효과적으로 동일시하고, 이데올로기화 시키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국가의탄생 포스터.jpg
 

<국가의 탄생>이 지금까지 명작으로 칭송받고 있는 이유는 현재에도 사용하고 있는 혁신적인 기법들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리피스는 이 영화를 통해 다른 공간의 서사를 번갈아가며 보여주는 ‘교차편집’, 한 화면에 두 가지 장면을 함께 삽입하는 ‘오버랩’ 과 ‘이중인화’ 기법들을 장편영화에 효과적으로 안착시켰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국가의 탄생>을 불후의 명작으로만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는 혁신적인 기법들이 결과적으로 백인우월주의라는 이데올로기에 효과적으로 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후반부 웅장하고 질서정연한 KKK단의 기마대 움직임은 흑인들의 무자비하고 무질서한 모습과 교차편집 되는데, 둘의 대비되는 모습은 지속되는 교차편집으로 인해 강화된다. 정의로운 KKK단과 야만적인 흑인들이라는 이분법적인 이데올로기는 영화의 후반부이자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강화되는 것이다.

많은 관객들을 울린 <워낭소리(2008)>의 이충렬 감독 인터뷰도 영화와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야기로 좋은 예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충렬 감독은 ‘소가 빨리 죽어야 촬영이 끝나는데 그러지 않아서 후반부에 힘들었다.’ 라고 인터뷰를 했는데, 현실을 담아내는 것이라 믿는 ‘다큐멘터리’조차 얼마나 조작된 영상이고 의도적인 동일시를 유도하는지 알 수 있는 지점이다. 소와 노인의 우정을 그린 이 다큐멘터리의 클라이막스를 장식하기 위해 소가 죽는 장면을 ‘의도적’으로 기다린 후 삽입한 것이다. <워낭소리>의 예시를 통해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지점은 영화의 이데올로기적인 성격이 ‘무엇을 담아내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담아내지 않느냐’에 의해 더욱 강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워낭소리>의 슬픔 혹은 우정은 소의 죽음에 의해서도 강화되지만, 그 이전에 지리한 소와 노인의 일상을 배제했기에 강화되기도 한 것이다. 반대로 소의 죽음 이전에 ‘선택된’ 일상들이 마지막 소의 죽음이라는 클라이막스에 효과적으로 봉사하고 있다고도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이처럼 효과적인 이데올로기적인 작동을 위해 ‘구조화 된 부재’를 일으킨다. 이데올로기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기에 틀림없이 모순이 존재하게 되는데, 영화에서 이 모순들은 구조화 된 부재로 인해 효과적으로 가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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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탄생>에서 ‘구조화 된 부재’를 전면에서 일으키고 있는 것은 스톤맨가와 카메론가의 로맨스와 가족애다. 영화의 역사적 배경은 흑백인종의 문제와 백인들끼리의 세력다툼이 뒤엉킨 ‘남북전쟁’이며, 수많은 갈등들(흑백인종, 세력다툼, 전쟁의 이면 등등)이 집약되어 있는 배경이다. 하지만 영화가 지니고 있는 정치적 함의성은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스톤맨가와 카메론가의 로맨스에 의해 뒤로 물러난다. 초반부에 등장하는 극적 장치는 카메론의 벤과 스톤맨의 엘시가 병원에서 만나는 순간이다. 벤과 엘시는 전쟁이후 국군병원에서 만나게 되는데, 이 시기는 전쟁 직후 정치적인 긴장감이 가장 팽배했을 시기다. 하지만 벤과 엘시의 극적인 만남은 정치적인 긴장감과 다른 가족 구성원의 죽음을 단순히 사랑의 장애물로 전락시키며, 영화 서사의 뒷전으로 물러나게 하는데 효과적으로 봉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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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K단은 지금까지도 정치적인 논쟁을 일으키고 있지만, <국가의 탄생>에서는 KKK단의 활약이 ‘가족애’로 정당화 된다. KKK단이 영웅적으로 등장하게 되는 계기는 벤의 여동생의 죽음이다. 흑인 거스가 여동생에게 접근하자 여동생은 절벽에서 뛰어내려 자살하게 되는데 벤은 이에 분노해 KKK단과 함께 거스를 처형한다. 스톤맨, 카메론가와 동일시되어 온 관객들에게 있어 KKK단의 등장과 거스의 처형은 정치적인 함의를 지니고 있는 사건이라기 보다 ‘가족애’에 의한 영웅적인 모습으로 비춰지게 된다. 앞서 언급한 마지막 교차편집 장면들 또한 KKK단원의 활동은 가족을 지키기 위한 영웅적인 활동의 일환으로 비춰지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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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K단의 활동들이 가족애와 로맨스로 영웅화 되어가고 있을 때, 구조화 된 부재 속에서 흑인들의 고통과 백인들의 비윤리성, 전쟁의 이면과 같은 지점들은 점차 사라진다. 그리피스는 이 함의점들을 다시 전면으로 끌고 올 수 있는 흑인들을 효과적으로 배제시킨다. 대신 그리피스는 흑인이 흑인을 제압하는 장면(거구의 흑인 가정부가 흑인 병사를 제압하는)과 거스와 린치와 같은 파렴치한 흑인들로 영화의 빈 서사들을 채워나간다. <워낭소리>의 지리한 일상들 중 ‘선택된’ 일상들이 마지막 소의 죽음에 효과적으로 봉사하듯이, 그리피스에 의해 ‘선택된’ 흑인들의 모습은 <국가의 탄생>이 지닐 수 있는 또 다른 함의점들을 무마시킨 채, 영웅적인 백인우월주의 서사에 효과적으로 봉사하게 된다.





# 이미지 출처 : http://movie.naver.com/movie/bi/mi/photoView.nhn?code=17003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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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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