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홍상수의 영화 들여다보기 (1)감각의 표층 마주하기 [시각예술]

글 입력 2016.08.15 00:5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대중영화들이 취하는 기본적인 전략은 ‘내러티브’를 이용한 전략이다. 서사와 상징을 논리적으로 설정해놓고 의미화하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완성도’라는 단어는 주로 서사가 논리적으로 빈틈없이 구성되어 있는지, 미장센이나 편집은 인물들의 감정이나 영화의 주제에 효과적으로 봉사하고 있는지를 판단할 때 사용한다. 즉, 내러티브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미화’다. 해당 서사와 상징, 미장센과 편집 그리고 인물들의 감정들까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이것들의 인과관계들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져다주는지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홍상수는 내러티브 영화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각도로 영화를 바라본다. 따라서 우리가 홍상수 영화의 특별함을 이야기할 때, 서사나 인물들의 대사 혹은 각본에만 영역을 한정 짓는다면, 홍상수 영화에서 느껴지는 감흥을 모두 포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홍상수 사진.jpg

 
“미장센의 즉각적인 의미화가 싫다(...)의미화하려는 순간 그것에게 외면당한다.” 홍상수 감독이 인터뷰 당시에 한 말이 그의 영화를 바라보는 하나의 입구가 될 것 같다. 홍상수 카메라의 가장 큰 특징은 해당 씬에서 자리를 잡으면 변화를 최소화 한다는 점이다. 인물의 내면적 심리상태를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시점숏’이나, 어떤 지점을 강조할 수 있는 ‘줌인’과 같은 변화도 최대한 배제되어 있다. 간혹 시점숏이나 줌인을 사용하더라도 일정한 패턴도 규칙도 없다. 시점숏을 마주해도 인물이 어떠한 감정으로 그 곳을 바라보는지, 줌인을 마주해도 홍상수가 어떤 것을 강조하고 싶은 건지 쉽게 파악하기 힘들다. 정한석은 이 지점을 “줌렌즈에도 이들의 감정이 훼손/과잉 되지 않는다”라고 지적하는데, <강원도의 힘(1998)>의 마지막 장면, 상권(백종학)이 창고에 한 마리만 남아있는 금붕어를 바라보는 장면(시점숏)에서 우리는 그의 명확한 감정상태가 아닌 텅 빈 무언가 만을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움직임이 배제된 무규칙적인 카메라를 통해 우리가 인물의 내면적인 심리상태에 깊이 들어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우리가 마주할 수 있는 것은 인물들의 외면적인 행동과 외부적으로 표출되는 감정, 이들의 충돌 뿐이다. 홍상수의 영화에 나타나는 수많은 술자리를 통해 우리는 그들의 내면을 마주한 것 같지만 실상 우리가 마주한 것은 인물들의 표면적인 행위와 감정 그리고 충돌들 뿐인 것이다. 표면적인 행동과 감정만을 마주하게 되면 우리는 행동과 감정에 대한 인과관계를 바로 세우는데 실패하게 된다. 정성일은 내면을 파악할 수 없는 표면적인 행동과 감정들의 나열을 “정서가 없고 감각들만이 표면 위에 자리잡는다”라고 언급한다. 우리는 그들의 행동들이나 감정을 ‘감각’할 수는 있지만, ‘의미화’할 수는 없게 된다.


강원도의 힘.jpg

 
개인적으로 홍상수의 영화에서 가장 급작스러운 충격을 불러일으켰던 장면은 <강원도의 힘(1998)>에서 지숙(오윤홍)이 경찰관(김유석)을 만나러 내려왔을 때의 장면이다. 지숙은 경찰관에게 왜 이렇게 늦었냐며 불같이 화를 낸다. 지숙의 신경질적인 행동이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지숙이 과거에 친구들과 강원도에 놀러왔을 때, 술 마시는 장면에서 그녀의 진솔한 모습을 보았다고 생각한 것에서 온다. 그녀와 친구가 말싸움하는 장면(아래장면)에서 우리는 그녀 스스로가 생각하는 내면과 타인(친구)이 판단하는 그녀의 모습에 대한 것도 함께 듣는다. 우리는 지숙이 어떤 인물인지를 ‘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다소 예민해 보이기는 하지만 크게 감정적이거나 공격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홍상수는 우리에게 지숙이 강원도로 다시 내려오는 모습도, 그녀가 얼마나 경찰관을 기다렸는지도, 경찰관이 그녀를 그토록 화나게 할만한 행동을 했는지도 보여주지 않은 채, 바로 그녀의 분노와 맞닥뜨리도록 한다. 갑작스럽게 마주친 그녀의 분노에서 우리가 강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은 그녀의 ‘불안’이다. 그녀의 히스테리틱한 분노는 서사적으로 어떠한 중요성도 없으며, 경찰관과 지숙의 감정선에 큰 작용을 하지도 않는다. 한마디로 이 장면은 별다른 의미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 표면적으로 표출된 불안이란 감각은 술자리에서 지숙과 친구들에게 장황하게 들었던 그녀의 모습과 내면보다 강하게 우리를 또 영화전체를 휘감는다. 남다은 “이면을 드러내기 위해 표면을 희생시키지 않는다” 라고 간결하게 설명하는데, 이 지점이 이면에 다가가기 위해 표면이 봉사하는 기존 내러티브 영화들과는 다른 홍상수의 접근방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강원도의 힘 술자리.jpg

 
홍상수의 공간이 항상 비슷한 느낌을 자아내는 것도 이와 관련해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에게 공간이나 장소는 ‘의미화’되어 있다. 단적인 예로 우리에게 ‘경주’라는 곳은 역사깊은 장소이고, ‘광주’는 투쟁과 아픔이 깃들어 있는 공간이다. 홍상수가 공간을 마주하는 방식은 인물들과 대면할 때와 같다. 그에게 장소는 어떠한 의식이나 감정이 깃들어 있는 곳이 아니라 단순히 인물들이 표출하는 표면적인 감정과 행동들이 충돌하는 장이며, 인물들이 세상을 감각하는 방식이 녹아있는 공간에 지나지 않는다. <생활의 발견>에서 경수(김상경)가 헤매던 두 장소인 춘천과 경주는 별 다른 차이가 나지 않는다. 경수에게 춘천과 경주는 그에게 어떤 의식이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장소가 아니라 명숙(예지원)과 선영(추상미)와 함께한 장소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례적으로 국외에서 촬영한, 가장 자유로운 장소여야 할 <밤과 낮>의 파리가 그의 영화 중 가장 답답한 장소였던 것은 도피 생활 중이던 성남(영호)가 파리를 그렇게 감각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밤과낮.jpg


2944165650_uhG4IWZN_EAB095EC9B90EB8F84EC9D98_ED9E98.jpg
 

   # 이미지 출처 : http://movie.naver.com/movie/bi/pi/photoView.nhn?code=2040 (네이버 영화)


조선호.jpg
 

[조선호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