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불편하고 아름답다. '채식주의자' [문학]

글 입력 2016.07.05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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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는 사람들을 잡고 요즘 가장 유명한 책이 뭐냐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채식주의자'를 꼽을 것이다.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후 우리나라의 소설 판매량이 엄청나게 늘어날 정도로 이 책은 우리나라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의 명성을 듣고 산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도 설레는 마음을 가득 안고 책을 읽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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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식주의자'는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 이렇게 세 개의 중편이 모여서 하나의 장편 소설을 만든다.
우선 '채식주의자'에는 아주 지극히 평범한 여자인 영혜가 어느 날 꿈을 꾼 후 육식을 거부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그리고 몽고반점에는 처제인 영혜의 엉덩이에 몽고반점이 있음을 알게 되고 영혜의 몸에 호기심을 느끼는 그(형부)가 나온다.
그는 영혜와 자신의 몸에 꽃을 그리고 마치 식물적인 교접을 한다.
마지막으로 나무 불꽃에는 자신의 남편과 자신의 동생의 관계 영상을 본 후 사라진 남편을 대신해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고 영혜의 병수발까지 들어야 하는 인혜의 이야기가 나온다.
인혜는 억지로 의식의 퓨즈를 이어가려고 하고 영혜는 나무가 되어간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 '소년이 온다'도 읽었다.
그 책도 한 개의 눈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지 않고 6개의 눈으로 같은 사건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래서 소년이 온다를 읽을 때 갑자기 인물이 바뀌어서 처음에는 좀 당황스러웠지만 이때 한 번 겪어봐서 '채식주의자'는 좀 더 수월하게 읽었다.

하지만 관점의 이해를 수월하게 했을 뿐이지 책은 굉장히 힘들게 읽었다.
'채식주의자'는 정말 충격적이고 잔인하기까지 한 작품이었다.
굳이 피하려고 했던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냄으로써 읽는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책을 넘기는 페이지가 많아질수록 세상에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어? 하면서 이해하지 못하고 책을 읽었다.
너무 사실적인데 너무 엽기적이어서 현실과 구별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건 소설이었다.
작가는 이 엽기적인 내용을 통해서 우리에게 인간에 대해 알려주려고 했던 것이라고 보니 그제서야 한 발 떨어져서 책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꿈을 꿨어."
그렇게 생생할 수 없어, 이빨에 씹히던 날고기의 감촉이. 내 얼굴이, 눈빛이. 처음보는 얼굴 같은데, 분명 내 얼굴이었어. 아니야, 거꾸로, 수없이 봤던 얼굴 같은데, 내 얼굴이 아니었어.
-채식주의자



처음에는 영혜의 가족들이 보는 것처럼 나도 영혜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이상한 꿈을 꿨다고 육식을 모두 거부하고 죽어가는 게 딱 미친 것 같았다.
그런데 영혜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무자비하게 개를 죽이는 걸 보고도 그 개를 먹으면서 아무렇지도 않았다는 사실이 그녀의 가슴에 지금까지 얹혀있다는 걸 보고 영혜가 이해가 됐다.
나도 이런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어릴 때, 친척들과 함께 닭백숙을 먹으러 시골에 간 적이 있었다.
나는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밖에서 닭을 잡는 소리와 닭이 살고 싶어서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났다.
지금까지도 이 기억을 자주 곱씹을 정도로 아주 끔찍했다.
그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내가 이 닭을 먹어야하나, 너무 잔인하다며 먹지 말아야하나 똑똑히 생각했다.결국 나는 닭을 죽이는 소리를 들었다고 먹지 않는 것은 너무 비겁하다고 생각해서 닭을 먹었고,
먹으면서 언젠가 꼭 채식을 해야지. 반드시 채식을 해야지.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신기한건 닭을 먹으면서 내가 아무렇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마치 내가 그 소리를 들은 적이 없는 것처럼 잘 먹었다.

내가 이 기억을 지금까지 가지고 있고, 그 날이 어제 일같이 생생한 것처럼
영혜도 역시 그날의 충격이 지금껏 이어져 와서 그녀의 가슴을 숨 막히게 한다고 보였다.
그 전까지 애매하게 읽은 책은 이 부분에서 확실한 이해를 주었다.
나는 아직도 인간의 잔인함을 억지로 피하고 있고 영혜는 피하지 않고 받아들여서 나무가 되고 있다는 것.
영혜가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은 잘못이었다.
정상이 아닌 건 나일지도 모른다.
수많은 생명들을 칼로 썰고 우아하게 먹는 게 이상한 거 아닐까.



그것은 분명히 충격적인 영상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시간이 흐를수록 성적인 것으로 기억되지 않았다. 꽃과 잎사귀, 푸른 줄기 들로 뒤덮인 그들의 몸은 마치 더이상 사람이 아닌 듯 낯설었다.
-나무 불꽃



영혜는 채식을 한 후에도 숨막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사실 궁극적인 문제는 '육식'이 아닌 '인간의 본성'이었다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영혜가 몸에 꽃을 그린 후부터 꿈을 꾸지 않는다고 하는 것에서 자신이 인간인걸 마음 깊숙이 증오했다는 걸 느꼈다.

영혜는 몸에 꽃을 그린 후에 인간이라면 하지 못할 형부와의 성관계를 하는데,
성관계를 한 테이프를 언니가 본 것을 알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것을 보면 영혜는 이미 인간이 아니고 꽃이고 나무였나 보다.
모든 인간관계에서 초월해서 자연이 된 것이다.



 그녀는 이따금 혼란 속에서 생각해왔다. 지우가 아니라면-그애가 지워준 책임이 아니라면- 자신 역시 그 끈을 놓쳐버릴지도 모른다고.
-나무 불꽃



책을 읽을수록 인혜가 너무 안쓰러웠다.
영혜는 자신이 되고 싶은 대로 나무가 되고 있었지만 인혜는 아직 다 자라지 못한 아들이 있고, 자신이 돌봐야 할 동생이 있어서 억지로 의식을 잡고 있는 모습이 힘들어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인혜를 보면서 우리 모두를 보았다.
이런 저런 인간관계에 얽매여서 마음대로 미치지도 못하는 모든 사람들.
인혜를 안쓰러워했는데 인혜가 나였다.

인혜가 말한 것처럼 자연은 우리를 보듬어주는 게 아니라 날카롭고 무서운 것이어서 영혜는 아마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이 보는 곳에서 죽은 것이고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영혜는 나무가 되지 않았을까.

지금까지 불편하지만 아름답게 충격적이었던 채식주의자 리뷰였다.


(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홍다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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