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는 일탈! 누구에게는 일상! 이었던 무대

글 입력 2014.10.24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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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는 일탈! 누구에게는 일상! 이었던 무대



글 - 김승열 (음악칼럼니스트)



    처음 보는 무대였다. 그래서 생소했다. 데뷔 후 25년 간 정통 클래식만을 고집해온 사라 장의 크로스오버라.. 사라 장의 전속음반사였던 EMI가 워너뮤직으로 흡수된 시기와 궤를 같이 하는 무대의 의미는 무엇인가. EMI 로고의 소멸과 더불어 클래식음악가로서의 사라 장 또한 역사 속으로 사라짐을 알리는 신호인가. 최근 몇 년 사이 클래식신보가 없었던 사라 장이기에 이 날의 무대는 더욱 그 같은 의혹을 증폭시켰다.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과 비제 카르멘 환상곡의 믹스에도 성이 차지 않은 모양인지 힙합의 덧칠이라.. 고전을 정체불명의 퓨전으로 재탄생시킨 앱솔루트 앙상블의 노림수는 무엇인가. 사라사테의 찌고이네르바이젠과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종횡으로 얽히고 설키는 장면은 가관인가. 아니면 장관인가. 판단은 10월 23일 저녁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을 찾은 관객들의 몫이다.


upload20140916_184250_0841884.jpg▲ 이미지 출처 - 세종문화회관


    괴짜 지휘자로 정평있는 크리스티안 예르비가 이끈 15인조 밴드, 앱솔루트 앙상블은 전자음향의 노골적인 서포트 속에서 모든 곡들을 능란하게 요리했다. 개중에는 선뜻 공감하기 어려운 레퍼토리도 있었으며 즉물적으로 어필해 오는 접착력 높은 곡들도 있었다. 전자파의 작위적인 아우라 속에서 빚어진 비탈리의 ‘샤콘느’가 후자의 대표격이었다. 그러나 한국의 국악을 모티브로 삼았다는 ‘장구 고고’로부터 ‘마음아, 너는 어찌’, ‘비원에서의 사색’, ‘사물놀이 서곡’까지의 메들리는 직감적으로 저것이 우리의 전통음악에 기반한 작품인지를 알아챌 수 없게 만드는 종류의 것이었다. 소스는 한국이었으되 댄 쿠퍼와 진 프리츠커, 찰스 콜맨, 데이브 솔저라는 서양인들의 레시피에 의해 형상화된 완전한 서구음악이었다. 퓨전의 꼬리표랄 수 있는 이 같은 정체불명의 무국적성은 작품의 오리지낼러티를 희석시키는 주요인임에 틀림없다. 어느 한 개인의 소산인 작품이 사람처럼 반드시 국적을 취득해야 하는 건 아니겠으나 연원을 가늠케 하는 실마리 정도는 던져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들의 연주 속에는 작품이 연유한 근원은 자취를 감추고 연주자들의 현란한 비르투오시티만이 무대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멘델스존+비제+힙합과 비탈리, 사라사테+싸이의 세 곡에서 사라 장의 경이로운 기교의 현시는 끝간데 모를 클라이막스를 구가하고 있었다. 거기에 질펀한 전자음향의 아우라까지 가세하자 객석의 눈과 귀는 온통 무대로 쏠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같은 퓨전음악의 현전이 시류야 어떻든, 보편성에 목말라하는 일관되고 진중한 관객을 생산해낼 수 있는 걸까. 반복청취를 통해 두고 두고 곱씹어도 물리지 않는 영구적인 작품성을 이들 크로스오버음악은 담지할 수 있는 걸까.


upload20140916_184220_0480251.jpg▲ 이미지 출처 - 세종문화회관

upload20140916_184322_0854717.jpg▲ 이미지 출처 - 세종문화회관


    차라리 크리스티안 예르비는 그간 홀대받아온 비서구지역의 묻혀 있는 걸작들을 발굴해 무대화하는데 주력하는게 어떨는지. 2009년 10월말 파리 샤틀레극장에서 그가 파리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무대가 모범답안이 아닐까 한다. 당시의 예르비는 히나스테라의 발레무곡 ‘에스탄치아’와 피아졸라의 반도네온 협주곡(리샤르 갈리아노 협연), 레부엘타스의 ‘마야의 밤’ 등을 지휘하며 유럽과 미국의 클래식음악에 편향되어온 일방적 시선을 깨부수고 있었다. 예르비가 유럽과 미국으로 대변되는 주류클래식음악과 남미와 아시아로 대표되는 비주류클래식음악을 아우르는 것도 모자라 크로스오버/퓨전음악까지 포용하려 한다면 끝끝내 장인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될까. 음악을 한다는 행위란 결국 어느 하나에 매진해 마스터, 매트르, 마에스트로 같은 장인/거장 소리를 듣고자 함이 아니던가. 예르비가 음악인생의 끝자락에서 진정한 장인 대접을 받을 수 있을지 긴 안목으로 지켜볼 일이다.


upload20140916_184048_0205120.jpg▲ 이미지 출처 - 세종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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