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역이 없는 지방에서 20년을 살았다.
사람 많고 복잡한 기차역이 아직 어색한 나는, 그곳에 발을 내딛는 순간 정신을 못 차린다. 각자 다른 방향을 향하는 사람들의 발소리, 기차를 기다리며 지인과 수다 떠는 사람들의 속삭임,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기계음 소리 등등.
단 한 순간도 통일되지 않는 온갖 소음들은 기차역이 낯선 나를 더욱 혼란스럽게 한다.
오랜 백수 생활 청산 후 새로운 일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2개월이 흘렀다. 그리고 그 짧은 2개월 동안 나는 벌써 네 차례 기차역에 방문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낯설고 버거운 그곳이 지금보다 익숙해지기 전에, 아직까지 내 몸에 남아있는 이 서툴고 낯선 감각을 기록해두고자 한다.
다정한 인디곡 같은 열차 안
출발 15분 전, 기차에 오른다. 불협화음이 넘실대는 역 내부와는 달리, 열차 안은 지독하리만큼 고요하다. 먼지 날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정적 속에, 좌석을 찾아가는 내 발소리만 유독 울려 퍼진다.
내 옆자리엔 어떤 사람이 앉게 될까. 아무도 안 앉았으면 싶다가도, 가끔은 왠지 모를 허전함에 옆자리 승객을 기다리게 된다. 버스의 경우에는 같은 사람과 종점을 향해 쭉 달리지만, 먼 길 가는 기차는 옆자리 승객이 수시로 바뀐다.
한 자리에 앉아 목적지로 향할 뿐인데도, 옆사람이 바뀔 때마다 매번 새로운 여정이 시작되는 듯한 기분이 든다.
한번은 곤란한 상황에 처하신 옆자리 어르신을 도와드린 적이 있다. 상황이 정리된 후 어르신께서는 내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셨고, 내가 먼저 열차에서 내릴 때는 조심히 가라는 작별 인사를 건네셨다.
조심히 가라는 그 흔하고도 다정한 한마디가 이상하게도 집에 도착할 때까지 내내 귓가에 맴돌았다. 열차 안에서 시작된 짧디 짧은 인연이 건넨 온기가 기차 밖 세상까지 나를 지탱해주는 것 같았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지만 모든 장면을 눈에 담고 싶은 창밖 풍경처럼, 열차라는 공간 안에서 겪는 사소한 일들은 일상으로 돌아온 뒤에도 내 안에 깊은 잔상을 남긴다.
최근에는 연휴의 여파로 매진된 기차 덕에 난생처음 입석 칸에 몸을 실었다. 개인화된 사회에서 타인과 옹기종기 어깨를 맞대본 게 언제였더라. 좁혀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익숙하면서도 어색했다.
불편한 자세로 대충 끼니를 해결하는 사람, 이어폰 너머의 세상에 빠진 사람, 고단함을 빌려 잠시 눈을 붙이는 사람까지. 저마다 다른 목적지를 향해 가는 이들은 하나의 프레임 안에서 마치 독립된 섬처럼 존재했다. 그리고 그 기묘한 정적 속에서 나는, 오로지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오늘 하루 서툴렀던 실수와 잘해내고 싶었던 마음들을 하나씩 되짚어보았다. 흔들리는 열차 안, 그토록 불규칙한 공간 안에서 나는 뜻밖의 안정을 찾았다.
열차 안은 참 묘한 공간이다. 타인의 다정한 한마디에 살아갈 용기를 얻기도 하고, 좁혀진 타인과의 거리 사이에서 오히려 가장 깊은 내면의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열차 밖 세상은 여전히 빠르게 흘러가고, 예상치 못한 불편함이 나를 기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고요하면서도 소란한 공간 안에서 얻은 찰나의 온기와 안정이, 오늘과 내일의 나를 묵묵히 응원해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