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아이돌 그룹 '이달의 소녀'가 소속사와의 분쟁을 겪게 되었다. 데뷔 당시부터 관심 있게 지켜보던 그룹이었기에 완전체 활동이 불투명해진 것이 굉장히 안타까웠다. 몇몇은 다른 소속사에서 그룹으로 재데뷔하고, 또 몇몇은 솔로 아티스트나 배우로서의 행보를 보이는 와중 개인적으로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이브(Yves)라는 멤버였다.
이브는 특유의 저음이 돋보이는 보컬을 소유하고 있으며, 솔로 아티스트로 데뷔한 이후 전자음악 계열의 음악을 다수 발매하고 있다. 처음 데뷔곡을 들었을 때 어떻게 보면 그리 대중적이지 않은 길을 택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만큼 본인이 가고자 하는 길이 확실하다는 것이 여실히 느껴졌다. 더불어 마냥 익숙한 곡들이 아니기에 이브의 곡에서만 느낄 수 있는 사운드적인 매력이 있다.
본 오피니언에서는 선악과처럼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담긴 이브의 노래를 몇 곡 소개하고자 한다.
디오라마처럼 정교하게 쌓아 올린 사운드: DIORAMA
< DIORAMA >는 이브의 데뷔 앨범에 실려 있는 수록곡이다. 데뷔곡 < LOOP >는 박자감이 돋보이는 경쾌한 곡이었다면, < DIORAMA >는 상대적으로 느슨한 분위기의 곡이다.
노래의 시작을 여는 기계음 위로 기타 사운드와 부드러운 선율이 쌓이고, 그 위로는 또 이브의 보컬이 내려앉는다. 곡의 길이가 짧음에도 노래의 특정 구간마다 피아노와 기타 사운드가 변주를 주어 지루할 틈이 전혀 없다.
오밀조밀하고 정교한 디오라마처럼, 단단한 기반이 되는 사운드 위 하나둘 쌓이는 악기와 보컬의 조화가 귀를 사로잡는다.
역동적이고 유려한, 새로운 매력의 힙합: Hashtag
< Hashtag >는 이브의 두 번째 미니 앨범 [I did]의 수록곡으로, 전주부터 흘러나오는 리듬감 있는 힙합 비트가 매력적인 곡이다.
그냥 힙합이 아닌 올드스쿨 감성이 돋보이는 힙합이라는 점이 이 곡에 빠지게 된 요소 중 하나였다. 여유로운 분위기로 시작했다가 빠르게 가사를 읊조리는 파트가 등장해 듣는 재미를 더한다.
이러한 전환이 굉장히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부드럽게 휘몰아쳤다가 마무리되는 곡이라고 할 수 있다 . 2분이 조금 넘어가는 짧은 길이에도 다양한 구성과 보컬의 변화 덕분에 노래 전체가 완연하게 채워진 듯한 느낌이다.
이브의 손톱이 심장을 할퀴는 순간: NAIL
< NAIL >은 이브의 신보 [NAIL]의 타이틀곡으로, 글로벌 아티스트 롤로 주아이(Lolo Zouai)가 피처링에 참여했다.
묵직한 비트와 대비되는 롤로 주아이의 가벼운 톤이 침투하듯 시작하고, 이브의 저음으로 이어졌다가 이내 고음으로 전환된다. 이렇게 벌스와 프리코러스에서 쌓아 올린 긴장감을 하이라이트에서는 여유로운 사운드와 속삭이는 듯한 보컬로 풀어준다. 후반부의 독특한 기계음까지 이브가 지금까지 추구해 왔던 방향성을 꾹꾹 눌러 담은 곡이라는 것이 잘 느껴진다.
음악이 시작해서 끝나는 그 순간까지, 날카로움과 둔탁함이 교차하며 청자의 심장 속으로 파고드는 경험을 선사한다.
이브는 2024년 솔로 데뷔 이래로 매 앨범 자신의 색을 증명해 왔다. 대형 소속사가 아니면, 또 그룹이 아니면 크게 성공하기 힘들다는 걱정이 무색하게도 이브는 국내외에서 많은 호평을 받고 있다. 사이버 선악과의 맛을 이미 알아버린 이상, 그의 음악과 퍼포먼스를 응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