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한 달마다 오는 거지 같은 생리 주간이 돌아왔다. 파트 타임 아르바이트를 주 5회 뛰었고, 개강까지 겹쳐서 몸이 적응하기 힘들었는지 생리통이 평소보다 길게 이어졌다. 약을 먹어야 통증이 가라앉는데, 먹고 잠들면 이틀의 시간이 증발해 버린다는 사실이 무력하고 짜증이 난다. 아프다는 사실 자체에 화가 난다. 스스로 어찌할 수 없고, 내 생활이 통제되지 않는 느낌이 싫다.

 

원래 정신과 신체를 분리하여 통제할 수 있다고 믿거나, 생리 현상을 통제함으로써 자기효능감을 느끼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이 긴 세월 동안 인류는 배설은 어느 정도 참을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면서 그놈의 피는 왜 참지 못하는 것인지, 그리고 인류의 절반이 이 고통을 겪는데 왜 이에 대한 담론이나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한 시도는 이토록 적고 쉬쉬하는지 궁금하다. 생리에 대해 화를 내다보니 모 밴드가 여성 예술가의 음악에서 ‘자궁 냄새’가 난다고 했던 발언이 떴다. 그가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 피오나 애플을 향한 묘사였다고 해명했다는 기사도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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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나는 여성성이라고 정의를 굳이 내려야 하는 게 있다면 생리만 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 이는 생리불순을 겪는 여성이나 트랜스젠더 여성을, 자궁이 없는 모든 여성을 소외시키는 말이라는 생각이 곧 이어진다. 그렇지만 매달 찾아올 아기집을 짓고 허물면서 주체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내 일부의 신체적 사이클의 반복, 그리고 생리가 오기 전 일주일 동안 온갖 심리적 요소 때문에 내가 스스로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만큼 고유한 고통은 없다. 사회적으로 규정되고 이름 붙여진 수많은 여성성을 떠나 굳이 여성성이라 불러야 할 게 있다면 그건 그냥 이런 생리 현상일 뿐이다. 피오나 애플의 노래를 들을 때 느끼는 특유의 지독하고 화나 있고 사랑받고 싶다가도 상대를 증오해서 견딜 수 없는 정서가, 그 진저리 나는 순환이 진짜 생리 같고 자궁이 내 의지와 관계없이 진동하는 느낌과 닮았다.

 

이런 이야기를 남자에게 나눈 것을 후회한다. 나는 왜 이런 불편해할 주제를 불편해 할 것 같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할까? 불편하고 이유 모르게 지워진 수치심 때문에 이야기를 피하다 보니 쉬쉬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쉬쉬하게 되는 건 하등 쓸모가 없기에 일부러 이야기를 던진다. 여러분도 화가 나진 않으세요?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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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마치고 호프집으로 출근하며 미아리 텍사스가 완전히 철거되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3시간 전, 수업에서 2005년도에 그곳에서 일어났던 화재에 대해 배웠다. 밀폐 불법 개조된 1∼2평 남짓한 방, 합판으로 막힌 창문, 쇠창살이 달린 미닫이문은 여성들의 탈출을 가로막았다고 한다. 2023년, 이곳의 철거가 시작되었고, 그 곳에서 일하는 성 노동자 여성분들이 생존권을 위해 시위를 벌였다는 소식을 접했었다. 완전히 철거되었다는 건 그곳에 사는 사람들도 철거되었다는 걸까.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초등학생 때 영등포 타임스퀘어 근처로 놀러가길 좋아했다. 디스코 팡팡을 타러 가면 DJ라고 불리는 남자가 ‘팬티가 보일락, 말락’이라며 치마를 짧게 줄인 중학생 언니들을 튕기며 희롱했다. 그녀들은 원판 위에서 중심 잡기에 집중하며 웃으며 즐겼던 기억이 난다. 아직 화장을 시작하지 않고 긴 바지를 입고 갔던 나와 친구들은 그 언니들과 달리 DJ의 주요 표적이 아니었다. 그는 우리보다는 그 언니들이 탄 자리를 흔들었고, 저렇게 입고 오면 더 세게 흔들어주나? 더 재밌게 놀 수 있나? 라는 고민을 했었다. 나는 2살을 더 먹고 나면 저 언니들처럼 커서 놀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고, 이는 이사를 가며 무마되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그 디스코 팡팡은 영등포 타임스퀘어 집창촌에서 걸어서 3분 거리였다. 청소년 출입 불가라는 표지판이 내걸린 지역에서 3분 거리에 내가 시간을 보냈던, 아이들의 놀이터가 있다. 이사를 간 뒤 나는 이런 이야기와 멀어졌을까? 지금은 재개발되어 없어진 구반포역 왼편에는 밖에서 안을 볼 수 없는 구조로 되어있는 핑크색 간판의 가게들이 줄지어 있었고 친구들과 나는 그 길을 지나다니며 등교했다. 그곳들이 소위 말하는 방석집이라는 걸 어른들은 알려주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언젠가부터 수군대며 피해 다니라고 떠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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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프집으로 출근하다 보면 xx셔츠룸같은 성 업소 홍보 전단이 잔뜩 널려 있다. 구매층이 아닌 나에게 그것은 그저 헬스장 전단이나 종교 삐라처럼 바닥에 밟히는 쓰레기일 뿐이다. 한 여성이 호프집에 홍보용 사탕을 돌리고 갔다. 같이 일하는 남자 A는 나에게 저 여자를 보았냐고, 이상한 거 못 느꼈냐고 물었다. 내가 전혀 맥락을 못 잡고 무슨 소리냐며 되묻자, 그는 ‘업소녀잖아요’라고 웃으며 답했다. 왜 웃는지 알 수 없었고 불쾌감이 이어졌다. 그런 대화 속에서 내가 더럽혀지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고 대응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왜 더럽혀진다고 느끼는 걸까? 화가 나서 그 남자에게 어떻게 그렇게 잘 아냐며 조소와 함께 되물었다. 그는 유튜브나 인터넷에서 많이 접하지 않냐는 식으로 넘어가려 했고, 나는 무엇을 보고 다니냐며 그를 장난으로 공격했다. 옆에서 여자 B가 나와 동조하며 그 남자를 웃으며 몰았고, 나는 이 대화가 내 의도와 다르게 이어지고 있다는 괴리를 느꼈다. 이 대화는 B의 지인 애인의 말투가 여캠 같아서 싫다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업소 여성에 대한 담론이 지인의 애인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며, 이게 왜 비난인지조차 되물으며, 나도 누군가가 나에게 여캠 같다고 하면 모욕으로 느낄 거라는 내 안의 혐오감을 마주하며, 나와 A, 홍보 전단을 나누던 여자, 이런 우리를 관통하는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너무나 아프게 느껴졌다.

 

싸구려 호프집에는 다양한 손님들이 온다. 늦게까지 영업하고 가격 부담이 낮기 때문일 것이다. 11시가 넘어가면 한국말을 하지 못하는 두 외국인 여성분들이 단골로 자주 방문한다. 그들의 외향 탓에 눈에 띄었기에 나 또한 그녀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A가 또 다시 웃으며 저 야시시한 분위기의 외국 여자들도 업소를 다닌다고 했다. 나는 같은 레퍼토리로 어떻게 아냐며 대화를 피하려 했고, 그는 신나서 포주랑 같이 온 걸 몇 번 본 걸 증거라고 말한다. 방금 내가 이 글을 쓰며 업소의 주요 이용자가 사장이라는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왜 그의 존재를 무의식중에 숨기려 했던 걸까? 나는 이 대화를 통해 그 두 손님을 처음과같이 볼 수 없었다. 듣고 나니 A가 말한 사실처럼 보였고, 따로 반박할 요소나 필요성을 찾지 못했으므로 A와 동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불쾌했다. 나는 어느 편에 공감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웠다. 

A는 이따가 서빙을 나가며 그녀들의 옷차림을 보고 맞는지 확인해 보라고 했다. 그들이 화려한 머리에 섹슈얼한 옷을 입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한 것만으로 동조한 것 같아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같은 여자로서 옷차림으로 그렇게 판단된다는 게 불쾌하지만, 사장님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니 아주 다른 말은 못 하겠네요.’라고 답하니 동의하며 웃는 A의 얼굴을 보았다. 너는 이게 재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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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앞의 여성 (1897) _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 뉴욕 매트로폴리탄 미술관

 

 

그가 즐겁게 웃고 있는 게 싫어서 성매매가 합법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냐고 웃으며 물어보았다. 그러자 당황하며 자기는 그런데 관심이 없어서 모르겠다고 내두른다. 유튜브도 챙겨보고, 나에게 신이 나서 이제껏 이야기해 왔으면서  관심이 없다는 말이 우습다. 그는 어차피 불법이어도 할 사람들은 다 하면 합법화하는 게 낫지 않냐고 답한다. 나는 합법화되었을 때 일어난 반작용들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하고 왜 반대하는지, 나에게도 어려운 문제라는 사실을 간소하게 소개했다. 그의 입가에서 웃음은 사라졌다.

 

나는 A와 생산적인 논의를 할 가치가 없다고 느낀다. 그렇지만 동시에 입을 다물지는 못하겠기에 안에서 화가 치솟는다. 그렇지만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차분하게 A가 자신이 웃음거리로 가져온 삶에 대해 고민하도록 만들고 싶다. 이어진 그의 질문은 정말 이상했다. 내게 남사친이 많냐고 물었다. 그 질문은 업소녀인 걸 알아보겠냐는 질문보다 의도가 불투명해서 또 한 번 혼란을 주었다. 많다고 답한 뒤 이어진 침묵에, 그런 질문은 왜 하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남사친들과도 이런 이야기를 하냐고 묻는다. 하지 못할 건 무엇일까, 당신은 내게 계속 이 소재로 이야기해 오지 않았나?

 

많이 대화한다고 하니 당황한다. 나의 남자인 친구들이 어떻게 대답하는지 묻는다. 나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그들도 질문하면 잘 모르겠다고, 어려운 문제라고 답한다고 했다. 나는 이제 당신이 우습다. 당신은 내게 업소에서 일하는 여성에 관해 물었다. 나는 성매매에 관해 물었는데 당신은 당황했다. 내게 처음 이 이야기를 꺼냈을 때 대화가 웃음으로 끝나기를, 홍보물을 돌리는 여자가 업소에 다닌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서 고개를 숙이고 지나갔다는 당신의 묘사에, 두 외국인 노동자가 야시시하게 입었다는 품평에 대해 내가 함께 웃으리라 생각했나? 왜? 당신은 왜 저 여성들을 보고 웃는가? 왜 내가 함께할 것이라고 가정했는가.

 

그녀들의 옷차림을 살펴보라고 했을 때, 나는 화려하게 입은 나를 떠올렸다. 짧은 치마를 입고, 가슴골이 보이게 진한 화장을 하고 섹슈얼한 모습으로 클럽에 갔다 집에 오는 나를 보고 A들은 이렇게 생각했을까. 난 순간 그녀들과 내가 같은 카테고리로 분류된다는 데에 공포를 느꼈다. 그녀들과 묶이는 게 기분 나쁘다면 난 위선을 떨고 있는 걸까? 그렇지만 그녀들을 비하하려는 의지는 없다고 할 때, 나의 혐오감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 걸까. 그리고 이 고민을 이어지도록 한 것이 생각 없이 웃고 있는 남자라는 사실이 나를 화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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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글을 쓰며 A와의 대화를 곱씹는다. 내가 그녀들과 같은 카테고리 안에 묶이길 거부한다는 건 그 남자와 전혀 다를 게 없기에 부채감에 끝이 없다. 작년 여름 혼자 한 달 동안 유럽 여행을 갔었다. 첫 여행지였던 암스테르담의 홍등가를 걸었을 때의 기분을 기억한다. 쇼핑몰의 마네킹처럼 붉은 조명 아래 서있는 여자들, 일상처럼 지나다니는 주민들, 옆에 100년 동안 서 있던 성당, 그 옆의 식당 거리,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 운하를 타고 이어지는 아이들의 자전거길. 이 거리에 대해 궁금해서 찾아보았을 때 화려하고 섹시한 거리라는 홍보문구와 합법화가 된 네덜란드에서도 홍등가를 시 외곽으로 옮기려 한다는 기사가 함께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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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박 4일동안 호텔로 돌아가기 위해 홍등가를 지나가며 그 공간이 역설적으로 성범죄율을 줄여준다는 논지의 기사를 읽었다. 그 길을 지나며 나는 안전하다고 느꼈다. 그렇지만 무엇 때문에 안전하다고 느끼는지에 대해 생각할수록 안전과는 멀어졌다. 그녀들을 여느 가게를 지나듯 쳐다보면 무례를 범하는 것일지 고민했고, 고개를 푹 숙이고 지나가면 그녀들을 수치스러운 존재로 낙인찍는 것일지 고민했다. 그 안에 서 있는 나를 상상하기도 했다. 남성들의 태도는 달랐다. 그들은 웃는 표정으로 열심히 그녀들을 바라보며 떠들었다. 그 불빛 아래 있는 게 자신이라는 병치가 불가능한 삶이란 어떤 걸까. 여행자였던 나는 그 요소를 암스테르담의 특수성으로 받아들이려 했지만, 내가 일하는 호프집에서 똑같은 수치심과 혐오감에 빠졌고 그게 나의 것인지 남이 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녀들과 내가 다르지 않다는 자각과, 그럼에도 달라야만 한다는 배제감, 그리고 그런 생각의 시작을 누르는 생각 없이 웃는 남자.

 

미아리 텍사스에서 일했던 사람들의 재활을 위한 봉사활동을 찾아보았다. 25살 이상에 장기간 봉사할 수 있어야 하며, 일의 특수성으로 여성만이 가능하다. 누군가의 삶에 대해 자세히 알고 돕는 일은 매우 수고스럽고, 정성이 필요하며, 시간을 써야 하기에 어렵다. 반면에 모른 상태로 웃고, 판단하고, 혐오하기는 너무 쉽다. 난 또 어렵다는 이유로 내일 아침이면 이 일을 까먹을 것이다. 혹은 한 달에 2만 원씩 지원하자고 마음먹었다가 호프집 파트타임으로 돈 버는 내가 누굴 도울 처지인가에 대한 자문으로 전락할 것이다. 내일이면 나는 8월에 출국하기 위해 교환학생 신청서를 작성하느라 바쁠 것이다. 장시간 동안 한국에 있지 못하기에 관련 봉사활동을 신청하지 못한다. 우스운 일이다. 그 남자나 나나 사회에서 그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기로는 매한가지다. 그저 내가 웃지 않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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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동안 영화 산업을 비롯한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는 소외되었지만, 눈에 띄는 사람들을 소재로 써왔다. 서커스와 같이 그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려고 하기보다는 사회로부터 격리된 그들의 입지를 화제성으로 소비했다. 나 역시 성매매 집결지를 지나며 ‘청소년 출입 금지’라는 표지판이나 붉은 불빛에 자연스레 눈이 갔고, 이런 즉각적인 관심을 시장은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폐기한다. 가벼운 웃음과 오락만이 등장했다가 증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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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노동자의 삶을 다룬 영화 ‘아노라’는 작년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쓸었다. 주연이었던 마이키 매디슨이 여우주연상을 탔을 때 이는 여성 인권의 하락이라고 쏟아졌던 악성 댓글들이 생각난다. 작품상·감독상·각본상·편집상을 수상했던 감독 션 베이커에게 성 노동자 페티쉬가 있다며 그가 제 1세계 백인 남성이기에 그런 위치를 점할 수 있는 것도 계급 권력에서 비롯된 것이라 화를 냈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나는 그에게 쏟아지는 비난의 이유를 알고 싶어서 그의 전작들을 보기 시작했다. 스타렛, 탠저린, 플로리다 프로젝트. 션 베이커는 그들의 삶에 대해 리얼리즘 사조를 차용해 최대한 가까이 담아낸다. 어떤 평가의 시선 없이 그들을 담아내는 션 베이커의 시선은 그간 그들을 단순히 화제로 소비하고 버리는 매체들과 다른 시선을 제공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영화를 보고 나면 감히 그들을 판단할 수 없게 된다. 그런 삶의 형태가 있다는 것을 수용하게 된다. 물론 그 안에서의 삶의 묘사도 션 베이커의 시선에서의 왜곡을 거치고 난 뒤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지만 우리가 타인을 받아들일 때 왜곡이 발생하는 건 그 누구도 극복할 수 없는 한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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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분명 그의 영화를 보고 내 출처 모를 거부감에 대해 재고하고, 내가 그들을 향해 무지 속에서 취했던 타자화에 대해 되돌아보았다. 그러나 아노라가 주목받았던 것이 다수에게는 그저 또 다른 화제성으로 여겨지며 웃음거리로 소비할 만한 또 하나의 분출구일까. 마이키 매디슨이 열연하는 폴댄싱과 쇼걸 장면만을 클립으로 딴 쇼츠로 또 다른 성적 대상화를 양산하고 있는 걸까. 영화의 성공이 그들의 삶에 대해 생각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비율 증가로 이어지는 경우는 몇이나 될까. 설령 그 비율이 높지 않더라도 시도 자체에 의의를 두어야 하는 걸까. 쉬쉬하지 않고 공개했을 때 비난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받는 상처는 필요악일까? 내가 어제 그 남자와의 대화에서 분노했던 이유는 내가 그녀들과 묶이는 게 싫어서였을까, 그 남자와 묶이는 게 싫어서였을까. 그 둘 중 누구 와도 묶이지 않으려 했던 건 나의 우월의식일까.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나는 지금도 피를 흘리고 있다. 참지 못하고, 계속 아랫도리에서 피가 흐른다. 왜 흐르는지, 왜 아직도 아무도 이걸 멈출 방법을 발견하지 못했는지, 완전히 아프지 않을 방법을 생각해 내지 못했는지에 대한 분노와 의문이 같이 흐른다. 묶이고 싶든 싶지 않든 나나 그녀들이나 모두 피 흘리고 있다는 사실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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