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리뷰] 인문학에게 뇌과학을 말하다 - 크리스 프리스

글 입력 2014.10.12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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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한 심리학 굳혀보기

물리학이나 화학에 비해 심리학의 역사는 굉장히 짧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물리학이나 화학은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것을 학문의 대상으로 삼고 있지만 심리학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심리학은 사람의 ‘정신’을 학문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러나 사람의 정신은 자신을 제외한 다른 이에게 보여줄 수 없다. 예를 들어 ‘사과’라는 한 단어를 두고 두 사람에게 상상하라고 하면 한 사람은 잘 익은 빨간 사과를 상상할 수도 있고, 또 다른 사람은 익지 않은 파란 사과를 상상할 수도 있다. 혹여 같은 빨간 사과를 떠올렸다 하더라도 두 사람이 완전히 똑같은 사과를 생각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즉, ‘정신’을 측정하고자 하면 측정 대상에 따라 공통된 점은 있을지언정 똑같은 결과를 얻기는 어렵다. 이렇게 정신은 다른 이와 공유할 수 없다. 그러나 다른 이와 ‘소통’할 순 있다. 물론 소통도 완벽하진 않으나 우리는 정신의 소통으로 다른 이와 정신을 교환하고 ‘문화’를 만들어낸다. 그렇기에 심리학은 정신의 산물인 ‘문화’ 또한 학문의 대상으로 삼는다. 한 사람의 정신도 객관적으로 측정하기 어려운데 둘 이상의 사람들의 정신이 소통하여 만들어낸 문화를 접근한다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이런 ‘주관적인’ 면 때문에 심리학은 근래에 기술이 발전되기까지 진정한 과학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이 책의 저자는 연구 대상의 측정을 보다 객관적으로 할 수 있는 과학을 ‘딱딱한 과학’이라 칭하고 있으며 물리학이나 화학이 이에 해당된다. 반면에 객관적으로 측정하기 어려운 심리학을 ‘말랑한 과학’이라 칭한다. 그러나 근래에는 말랑한 과학인 심리학도 기술의 발전으로 딱딱한 과학 쪽으로 한 걸음 나아가게 되었다.


인간의 뇌는 인간의 신체 활동을 제어한다. 신체활동이 이루어질 때 뇌에서는 혈류 변화가 일어나며 에너지를 소모한다. 이것은 심리학보다 딱딱한 과학인 생물학에서 증명된 사실이다. 근래에는 뇌의 모습뿐만 아니라 기능까지 들여다보는 영상 기술이 발전되었다. 그리고 이 기술로 뇌의 혈류변화가 신체활동뿐만 아니라 정신활동이 일어날 때도 똑같이 나타난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즉, 정신활동의 객관적 측정을 할 수 있는 ‘뇌’를 통해 심리학은 주관적 경험을 어느 정도는 객관적으로 측정하고 증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인문학에게 뇌 과학을 말하다』의 저자는 책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뇌 과학을 통해 말랑했던 심리학을 실증적 실험과 증명으로 딱딱하게 설명해낸다. 그렇다고 하여 딱딱한 심리학이 말랑한 심리학보다 어려운 것은 아니다. 납득할 수 있는 증거들을 제시하여 두루뭉술하고 형체를 느끼기 어려웠던 심리학을 전공자가 아닌 이들이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한다.


과학적으로 심리학을 접근하는 것은 처음엔 섬뜩했다. 이 책에 의하면 나의 신체활동과 정신활동을 지배하는 것은 나의 뇌이다. 나의 뇌는 나의 무의식과 의식을 전부 통제하는데 보통 내가 ‘정신’이라 여기는 부분은 무의식이 아니라 ‘의식’이다. 나의 뇌는 감각기관을 통해 받아들인 감각정보들로 세계를 추론하는데 뇌의 판단에 따라 진실이 감춰지거나 아예 왜곡될 수도 있으며 진실의 일부만 추론의 결과로 남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내가 나의 정신이라 여기는 의식은 추론의 과정이 아닌 추론의 결과만을 자각한다. 내가 감각기관으로 받아들인 것들을 내 의식이 전부 알지 못한다는 것은 마치 나도 모르게 나를 지배하는 다른 이가 내 안에 있는 것만 같다. 공상과학 소설이나 영화에 나올법한 상황이 상상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의 뇌와 의식이 이원적 존재는 아니라고 한다. 조금 낯설게 느껴지긴 해도 내 뇌 또한 나의 일부이다. 자신의 뇌를 낯설게 느끼고 있는 나도 내가 감각기관으로 받아들인 이 책의 정보를 뇌가 추론하여 그렇게 느끼도록 한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는 나와 나의 뇌가 구분된다고 느꼈지만 나와 나의 뇌는 하나이다. 이 책을 읽기 전 나는 나와 나의 뇌를 구분하여 느끼지도 않았으며, 내 생각과 행위 모두가 나 스스로 결정한다고 믿고 있었다. 사실 내 생각과 내 행위는 내 뇌가 외부에서 받아들인 것을 추론한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책의 작자는 이러한 것을 ‘뇌가 만들어 내는 최종적 착각’이라 칭하고 있다.


그렇다면 내 뇌는 왜 이런 최종적 착각을 만들어 내는 것일까? 이 책의 저자는 그 이유를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서 찾고 있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것을 양보하는 것,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 그리고 자신의 것을 희생하여 타인을 처벌하는 것. 보통 이러한 이타적 행위는 자신에게 직접적인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또한 이타적 행위를 하는 이들도 보통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이타적 행위는 인간이 짐승이 아닌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해주며,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데 기여한다. 그리고 인간의 이타적 행위는 내가 내 행위를 ‘스스로 결정’한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실 내 생각과 행위는 외부의 자극을 통해 뇌가 추론한 결과이지만 나는 내 생각과 행위가 내 독자적으로 행해지고 있다고 믿음으로써 기꺼이 이타적 행위를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뇌가 만들어낸 최종적 착각 덕분에 인간들은 개개인의 역량을 서로 합쳐 사회와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중간에 섬뜩함을 느끼긴 했지만 최종적인 느낌은 바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이 세상에 대한 경외감이다. 완벽한 미술 작품을 보게 되면 이런 느낌일까. 이 넓은 세상에 비하면 작디작은 인간의 뇌가 수많은 일들을 행하고 그것이 여럿 모여 사회를 이룬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또한 인간들이 모여 만든 사회는 과학적 지식과는 연관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뇌과학이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는 점은 내가 아직도 모르는 분야의 지식들이 많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해주었다. 여러 분야의 학문들이 서로 융합되었을 때 우리는 우리가 사는 세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나는 부족한 인간이기에 모든 분야의 지식을 다 배울 순 없다. 그렇지만 내 전공과 다른 분야의 책을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내 세상을 더 크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인문학에게 뇌과학을 말하다>란 책은 세상을 알아가는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기회가 된다면 인문학을 전공하는 다른 이들에게도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박하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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