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뇌 빼고’ 감상하라구요? 얼마나, 어디까지요? #2 [만화]

글 입력 2023.12.09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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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가 저물고 있다. 더이상 개그 프로그램을 밀어주는 방송사는 없다. 매주 일요일 밤을 책임졌던 개그콘서트조차 점차 늦은 밤으로 편성되더니 결국 사라졌다. 매일 밤 거실에 모여 앉아 시트콤을 보던 시절도 이젠 다 옛말이다. 그렇게 서서히, 매일 가볍게 웃고 넘길 수 있는 개그 콘텐츠는 죽어가고 있다.


웹툰도 마찬가지다. 가장 큰 웹툰 플랫폼인 ‘네이버 웹툰’만 하더라도 2010년대까지는 다양한 개그 웹툰들이 활개쳤다. 초창기 웹툰 <정글고>, <마음의 소리>, <와라 편의점>부터 <놓지마 정신줄>, <이말년씨리즈>, <웃지 않는 개그반>등 까지… 웹툰을 잘 모르는 사람도 알 법한 소위 ‘간판’ 웹툰에서 개그가 차지하는 비율은 무지막지했다.


그런 점에서 네이버 웹툰의 ‘ㅋㅋ단편.zip’ 공모전은 가벼운 개그 웹툰을 기다려오던 웹툰 팬들에게 희소식이었다. 개그 장르에만 국한해서 기성/신인 작가들을 가리지 않고 공모받았다는 점에서 더 새롭고 참신한 개그 웹툰을 기다렸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총 30개의 작품이 공개되었다. 모두 각기 다른 강점을 쥐고 각자만의 스타일로 웃음을 주는 좋은 작품들이었고 그 중 두 작품을 골라 소개하고자 했다. 전주에는 30회를 통틀어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을 다루었다면 이번 주에 다룰 작품은 30회를 통틀어 가장 아쉬웠던 작품을 다룰 것이다.

 

 


‘B급 감성을 노린 D급’, <기짱쎄>


 

‘ㅋㅋ단편zip’이란 이름으로 공개된 30회의 만화는 모두 공모전 입상작이다. 즉 심사 과정에서 그 작품성을 인정받은, 한 마디로 어느 정도 재미와 매력이 검증된 만화라는 뜻이다. 이를 입증하듯 ‘ㅋㅋ단편zip’의 별점은 모두 8점대 후반에서 9점대에 머물러있다. 단 한 작품만 제외하고 말이다.

 

유대환 작가의 <기짱쎄>는 27번째로 공개되었고 최종 별점 3.67에 그쳤다. 눈에 띄게 낮은 점수를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항상 웹툰을 다루는 글을 쓰기 전에는 스토리를 대략 정리해 플롯을 파악하는데, 본 작품은 플롯을 정리하기가 여러모로 힘들었다. 플롯이 그야말로 없었기 때문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사건의 연속이라도 나열하자면 이렇다. 18살의 ‘기장세’는 좋아하는 여자에게 고백했다가 ‘기도 안 찬다’라는 말을 듣고 ‘기’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일 년 동안 기를 단련하고 수련한 끝에 기가 아주 강한 사람으로 등극했고, 그 어떤 기 싸움에도 지지 않게 되었다. 만화에는 총 세 번의 기 싸움이 벌어지는데, 첫 번째 기 싸움은 버스에서 서서 가는 것에 불평하는 아저씨와 벌어졌다. 기장세의 전략은 버스에서 지독한 방귀를 뀌고 아저씨가 뀐 척을 하는 것. 그 결과 ‘기 싸움 1승’이 기록된다. 두 번째 기 싸움으로 아저씨가 버스에서 따라 내려 시비를 걸자 갑자기 진한 키스를 퍼부어서 ‘기 싸움 2승’을 적립한다. 마지막 기 싸움은 작년 고백했던 여학생의 현재 남자친구와 벌어졌는데, 기 싸움을 하다가 그만 ‘원기공’을 만들어 학교 사람들을 전멸시키고 경찰특공대에 붙잡히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기짱쎄.jpg

 

 

웃긴 것은, 전 주에도 말했던 ‘제4의 벽’을 깨는 연출을 본 만화에서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마지막 기 싸움에서 원기공을 날리기 전 다음의 대화가 오간다. 

 

 

남친: 갑자기 왜 드X곤볼이 됨? 이딴 식으로 전개되는 게 맞음??

기장세: 전개…? 그런 건 작가 맘인데 왜 나한테 ㅈㄹ이야!!!!!!

남친: …. 개그콘서트조차 개쓰레기네…

작가: 내맴ㅋ

 

 

작가 본인도 스토리가 ‘개쓰레기’라고 표현할 정도로 별로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개그콘서트조차 ‘개쓰레기’인 것은 의도된 것일지, 위 대화가 자조적 웃음 포인트라고 생각한 건지 궁금할 따름이다. 어떤 반응을 예상했을까. ‘뇌 빼고 오겠습니다’ 등의 소위 ‘병맛’ 만화에 자주 보이는 반응을 기대했다면 이번 기회에 작가는 반성의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뇌 빼고 봐야 하는’ 예상치 못한 전개의 개그 만화도 만화 플롯의 아주 기초적인 것들은 갖추어야 한다.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는 주인공과 그것에 반하는 장애물, 때로는 조력자의 도움을 받아 장애물을 넘는 주인공의 분투. 그리고 끝내 무언가를 이루거나 이루지 못하는 결말. 최소한 이 기본 구조는 있어야 플롯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작가는 ‘병맛 만화’의 대표격인 <언덕 위의 제임스> 감성의 웃음을 의도한 듯하다. 그러나 <언덕 위의 제임스>와 <기짱쎄>는 플롯의 짜임새에서부터 큰 차이가 있다. <언덕 위의 제임스>의 가장 최근 두 에피소드를 보자. 지난 에피소드 ‘게스트 하우스’는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는 주인공 귀신들이 육체를 되찾기 위해 인간의 영혼을 탐하는데 거구의 여대생 세 명이 게스트 하우스를 방문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육체를 되찾고자 하는 욕망, 그 이유, 그에 반하는 중대한 장애물과 이에 맞서는 주인공들의 분투가 상식적이진 않지만 충분히 개연성있다. 이번 주의 에피소드 ‘행성 게임’도 마찬가지다. 우주신이 나타나 행성 게임을 시작해 탈락하면 ‘행성을 소멸시킨다’라는 장애물 앞에, 주인공 ‘제임스’는 지구 대표로 발탁되어 게임에 참여하여 생존을 위해 분투한다.


세세한 연출과 대사, 그림체, 예상치 못한 전개 등의 웃음 장치들은 이 큰 플롯의 골자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최소한 독자들이 만화를 읽을 때 이 인물이 왜 이것을 하고 있는지, 그의 목표와 장애물은 뚜렷이 있어야 서스펜스를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라는 호기심이 스크롤을 내리는 주된 동력이기 때문이다.

 

반면 <기짱쎄>의 플롯에는 핵심적인 하나가 빠졌다. 기장세의 목표는 모든 기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다. 왜냐하면 과거에 ‘기도 안 찬다’라는 말에 큰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 설명부터 개연성이 떨어지지만, 만약 설정이 그러하다면 본 만화는 기장세가 모든 기 싸움에서 이기고자 하는 그 분투에 집중했어야 했다. 그러나 <기짱쎄>에는 주인공을 가로막는 결정적 장애물이 없었다. 기장세의 기 싸움 과정을 더 드라마틱하고 독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매력적인 것으로 그려내야 했지만 그 분투에서 긴장감이라곤 찾을 수 없었다. 무엇에 맞서 싸우는 것인지가 이해되지 않았기에 ‘과거의 트라우마’로 인한 집착이라는 설명만으로는 기장세에 몰입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그의 분투는 불쾌함, 불편함, 억지스러움 등의 감정만을 남겼다. 'B급 감성을 노린 D급'이라는 베스트 댓글은 뼈아픈 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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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본 만화에서 진지하게 짚고 넘어가고자 하는 부분은 ‘소재’의 영역이다. 이는 비단 만화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닌, 방송이나 영화 등의 영상 예술에서 공연예술까지도 해당하는 부분이다.

 

사람이 사람을 웃음거리로 삼는다고 생각해보자. 그 안에는 분명 권력관계가 있다. 분명 저 사람은 벌컥 화를 내지 못할 거라고 확신하거나, 화를 내봤자 전혀 위협이 안 되기 때문에 그를 농담거리로 만드는 것이다. 약한 사람은 웃음거리가 되고, 강한 사람은 낄낄댄다. 그 사람의 아픔이나 상처까지도 ‘웃을 수 있는 가벼운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힘의 차이를 교묘히, 그러나 악랄하게 이용한다. 웃음과 농담이란 누군가 불만을 제기했을 때 그를 ‘속 좁은 사람’으로 전락시켜버리기에 가장 쉬운 전략인 것이다. 그렇게 농담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껏 수많은 사람의 상처가 가벼워졌고 무뎌졌다.

 

개그는 그 소재를 고를 때 신중을 기해야 한다. 특히 만화의 경우엔 오로지 이미지로만 모든 것을 전달하기 때문에 대사, 장면 묘사, 연출 등 이 모든 면에서 조심해야만 한다. 내 개그의 소재가 행여나 약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지는 않은지, 나의 묘사와 연출이 그들을 희화화하는 것은 아닌지 깊이 고민해야만 한다.

 

이는 ‘뇌를 빼고 보는’ 개그 만화도 해당한다. 전주에도 말했지만, ‘뇌를 빼고 보는’ 만화라 하더라도 ‘뇌를 빼고 만들면’ 안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기짱쎄>는 아쉬운 작품이었다. 두 번째 기 싸움 장면에서 기장세는 시비를 거는 남자에게 갑작스레 ‘딥키스’를 날린다. 좋다, 상식적인 전개에서 벗어난 웃음 포인트가 될 수 있다. 치자. 그러나 작가는 키스 장면에만 무려 다섯 컷을 할애한다. 이는 두 번째 기 싸움 시퀀스의 절반에 해당한다. 입과 혀, 끈적하게 늘어나는 타액을 확대한 클로즈업 컷부터 멀리서 사람들이 지켜보는 마스터 컷까지 타액과 홍조 묘사, ‘츄릅’ ‘하악’ 등의 의성어를 총동원해 키스신을 연출한다. 임팩트를 주고 싶은 부분이었나 보다.

 

개그만화에서 임팩트를 주고 싶은 부분이라면 웃음을 유도하는 장면일 테다. 하지만 이 장면은 웃음을 주기는커녕 과도한 묘사로 불편함을 준다. 특히나 아직 사회적 시선이 좋지 못한 동성애에 대한 혐오감을 부추기는 듯한 묘사는 더욱 불쾌하기만 하다. 과거 개그 프로그램에서 남성 동성애자의 말투를 어눌하게 표현하거나 ‘여성스러운’ 목소리를 내는 식으로 과장하고 전형화했던 것과 같은 방식의 개그를 의도한 듯하나, 오히려 역효과가 났다.

 

비단 동성애뿐만이 아니다. 개그는 웃기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 만능 방패가 아니다. 물론 사회적 시선으로 특정 소재를 터부시하는 것은 자유로운 창작에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소재의 문제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동일 공모전 작품 중 15번째 <만우절>이라는 작품도 동성애적 소재를 차용하고 있으나 혐오스러운 묘사가 아닌 반전의 한 요소로 적절히 사용했다. 그런가 하면 25화의 <전학생 만지기>라는 작품은 소재는 따뜻하고 감성적이지만 여학생이 얼굴을 붉히고 깜짝 놀라는 썸네일과 '만지기'라는 제목으로 추행을 연상시켰다. 민감한 내용을 만화적으로 사용한다면 그에 걸맞은 고민과 숙고가 반드시 뒤따라야 하는데, 'ㅋㅋ단편zip.'의 몇 만화들에서는 그 부재를 여실히 느꼈다.

 

마지막으로 생각해보자. ‘뇌를 빼고’ 보는 개그 만화. 우리는 어디까지 뇌를 빼고 볼 것인가? 어느 정도로 생각 없이 볼 것인가? <기짱쎄>의 동성 애정행각 묘사 장면을 어떤 식으로 감상할 것인가?

 

이제는 약자와 소수자를 과장하고, 전형화하고, 희화화하는 개그에 더이상 웃음 짓지 않았으면 한다. 어쩌면 개그 만화가 다른 장르보다도 더 잔인하게 그들의 상처를 후벼 팔 수 있음을 알았으면 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러한 문제 제기를 ‘재미없는’, ‘속 좁은’ 행동으로 여기지 않았으면 한다. 논쟁적인 작품도 당연히, 누군가는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은 채 즐길 수 있다. 모두의 취향과 성향은 다르기 때문에. 그러나 다른 누군가가 그 개그로 상처받고 불편하다면 당연히 우리는 그것의 적절성에 대해 고심해봐야 하지 않겠나. 그건 민주적인 예술로 올라서기 위한 최초의 걸음일 것이다. 그렇게 부적절한 농담은 재고하고 더욱 나은 유머를 고민해가면서 개그라는 장르는 발전할 수 있다. 그 어떤 약자도 공격하지 않고, 그 어떤 소수자도 웃음거리로 만들지 않으면서 말이다. 그러니 우리 사회의 새로운 ‘불편함’에 대해 모두 함께 논의하고 해결책을 토론하는 문화가 절실히 필요하다. 누가 아나? 언젠가 나의 지향이 소수가 되어 다수의 웃음거리가 되어버릴지. 또 그런 나의 불편함을, 나머지 다수는 ‘노잼’이라 비난할 수 있으니. 그런 점에서 올해 서울대법원의 판결문을 인용하면서 글을 마무리하겠다.

 

[누구나 어떠한 면에서는 소수자일 수 있다. 소수자에 속한다는 것은 다수자와 다르다는 것일 뿐, 그 자체로 틀리거나 잘못된 것일 수 없다. 다수결의 원칙이 지배하는 사회일수록 소수자의 권리에 대한 인식과 이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고, 이는 인권 최후의 보루인 법원의 가장 큰 책무이기도 하다.]

 

 

[박상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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