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말이 목 끝까지 차올라도 차마 뱉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 단순히 상대의 반응이 두려워서일까, 아니면 내가 뱉게 될 마음의 무게가 버거워서일까.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하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하지만 거제의 작은 바닷가 마을에는, 자신의 마음을 꾹꾹 눌러담아 손끝으로 전하는 순수한 이들이 있다.

“거제 바닷가 마을에 사는 초등학교 4학년 성준. 같은 밤 봄이의 수어 공연을 본 날, 첫사랑에 빠지고 만다.”
친구들이 짓궂게 굴어도 모진 말 한 번 내뱉지 못하던 성준의 삶은 봄이의 수어 공연을 본 날 완전히 뒤집혔다. ‘왜 이런 걸 배워야 하냐’며 투덜대는 친구들에게 발끈하고, 늦은 밤 자신의 마음을 꾹꾹 눌러 편지를 쓰기도 한다.
하지만 성준은 아직 초등학교 4학년. 너무나 어리고, 마음을 전하는 법이 서툴렀다. 그런 성준에게 용기를 가져다준 행운의 상징이 있었으니, 바로 같은 태권도장을 다니는 유진의 ‘검은 띠’였다.

우리는 여기서 ‘유진’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유진은 성준의 갑작스러운 부탁에도 군말 없이 자신의 검은 띠를 허리에 묶어주었다. 누군가 용기가 필요할 때 선뜻 자신의 것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 그리고 본질을 잃지 않도록 잡아주는 사람. 유진은 그런 단단한 사람이었다.
검은 띠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 성준의 순수함이 참 사랑스러웠다. 마치 만능 부적을 얻은 듯 들뜬 성준을 보며 ‘얼마나 봄이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으면 저럴까?’ 웃음이 나왔다.
한편으로는 나에게도 ‘검은 띠’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걱정을 떨치고 온전히 ‘나’ 자신을 밀고 갈 수 있는 비장의 무기 말이다. 이제 성준처럼 순수하진 않지만, 그래도 나 자신을 조금은 더 잘 아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으니 결국 나를 지탱하는 건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지 않을까 싶다.

사실 수어를 알지 못해 봄이와 성준이 나누는 마지막 대화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느껴지는 첫사랑의 풋풋함이 좋았고, 두 사람의 손짓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어린 아이들도 자신의 진심을 손끝으로 전하는데 어른인 우리라고 왜 마음을 숨겨야 할까. 마음에도 타이밍이 있다. 이런저런 걱정 속에 세상에 나오지 못한 마음들이 얼마나 아까운가.
나도, 그리고 우리도 조금 더 용기를 내어 마음을 표현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