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극장가는 뜻하지 않은 일본 애니 붐을 맞이하고 있다.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도 추석 연휴에 적합한 ‘보스’도 PTA와 디카프리오의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도 이들에게 예매율이 밀리는 실정이다.
단순히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 덕에 일어난 현상이라고 할 수 없다. 그전부터 차근차근 쌓여진 관심이 모여 이제야 양지에서도 빛을 발하는 중이라고 봐야 한다.
도대체 일본 애니메니션은 왜이리 인기를 끄는 걸까.
총 5가지로 나눌 경우, 시기적으로 보자면 코로나 19가 첫 번째 원인으로 꼽힐 수 있다. 집에만 머물러야 하는 시간이 길어진 탓에 넷플릭스 같은 OTT들은 기존 판도를 뒤엎을 만큼 엄청난 붐을 맞았다.
OTT 자본으로 제작된 드라마, 영화가 하나하나 대중들의 관심을 받으며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넷플릭스 작품을 영화제 후보에 넣어야 하느냐는 논란은 벌써 까마득한 옛날 얘기처럼 느껴진다.
일본 애니는 OTT 붐의 가장 큰 수혜자이기도 하다. 그간 다른 영상물들에 비해 장벽이 높았던 일본 애니는 코로나 19 사태 이후로 집에서 리모컨 하나면 볼 수 있게 됐다. 전 세계인이 일본 애니를 알게 될 정도로 접근성은 높아졌다.
넷플릭스는 이를 빠르게 알아차리곤 대규모 자본으로 일본 애니를 제작 및 수입하기에 이르렀다. 영역은 조금 달라도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들을 가져오기 위해 지브리 스튜디오에 1조 가량의 금액을 지급했다는 소문도 존재한다.
이러한 흐름에 맞물려 기존 소년만화 작법이 바뀐 것이 두 번째 원인이다. ‘원피스’, ‘나루토’, ‘블리치’, ‘드래곤볼’ 등 호흡이 길었던 기존 작품들과는 달리 소년만화들은 빠른 전개를 추구했다.
‘귀멸의 칼날’, ‘주술회전’, ‘괴수 8호’, ‘사카모토 데이즈’ 등은 주인공 일행에게 쉴 틈 없이 사건을 안겨 다소 비정상적일 정도로 빠른 성장을 유도했다.
그 덕에 액션신도 자연스레 많아졌다. 그리고 본즈, MAPPA, TOHO animation 같은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은 말그대로 ‘인력을 갈아넣은 듯한 작화’로 이뤄진 액션신을 제공했다.
이는 성공적인 방법이었다. 어쩌면 현대 일본 애니는 영화, 드라마에 비해 자극적인 도파민을 필요로 하는 현대인의 니즈를 가장 잘 충족시키는 미디어일지 모른다.
그러한 영향 때문인지 최근 소년만화들은 또 한 번 새롭게 변화된 전개를 그려내는 중이다. 당연히 완결까지 함께할 줄 알았던 핵심 인물을 최대한 빠르게 그리고 과감하게 죽인다. 이는 일명 ‘귀주톱’이라 불리는 현대 소년만화 3대장의 공통점이며, ‘최애의 아이’는 이를 가장 극대화시킨 케이스다.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가 갑작스레 죽는다면 충격과 배신감이 가장 먼저 들 것이다. 하지만 이내 독자들은 궁금증과 호기심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아니, 이 다음에 대체 어떻게 전개하려고 그러지?’ 같은 반응들이 나오기 마련이다.
작품과 캐릭터를 향한 애증과 여운은 여기에서 더욱 극대화한다. 오타쿠라 불리는 이들은 특히 충성심이 강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위해 만화를 계속해서 보고 자신이 매료됐던 순간을 잊지 못하고 작품을 손에서 놓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세 번째 원인이다. 일본 애니계는 캐릭터로 팬층을 사로잡는 것에 고단수다. 이들은 다양한 굿즈들을 가공하는 것은 물론 2차 창작물을 대부분 규제하지 않는다.
게다가 굿즈나 2차 창작물 등은 콜라보의 형태로 공식적으로 출시되기도 한다.
일본 애니계가 잘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콜라보다. J-pop과의 콜라보는 말할 것도 없다. 요네즈 켄시, 호시노 겐, 리사(LiSA), 킹누(King gnu), 크리피넛츠(Creepy Nuts), 바운디(Vaundy) 등 가장 주목받는 J팝 아티스트들에게 OP와 ED를 맡기는 것은 관례 수준이다.
이 외에도 사회 곳곳에 애니 캐릭터를 그려 넣으며 일본 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큰 홍보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이것이 네 번째 원인이다.
‘블루 록’은 J리그와 콜라보했으며 2022 카타르 월드컵과 2023 카타르 아시안컵 시기에는 실제 축구 선수들과 잇따른 콜라보를 진행해 인기가 급상승하기도 했다.
이는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어떤~시리즈’ 등으로 대표되는 2000년대 초반 일본 애니계에서 시작된 것이다. 하츠네 미쿠나 ‘러브 라이브’, ‘아이마스’ 등이 등장하는 시기부터 일본 애니계는 캐릭터를 활용한 굿즈 팔이가 성행하는 변화를 맞이했다.
그리고 현재 일본 애니계는 또다른 변화를 준비 중이다. 일부 만화와 애니는 과거에 비해 대중친화적 정서를 도입했다.
일본 특유의 다소 저질스러운 변태 개그가 줄어들고 있다. 물론 이것이 대중성을 저하하는 부분은 아니다. ‘단다단’,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을 보면 그렇다.
다만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의 비판점 중 하나가 시도 때도 없는 저질 개그라는 점을 생각했을 때 그리고 ‘주술회전’을 비롯한 여타 작품들이 장르적 쾌감에 더욱 집중한 것을 고려했을 때 마지막으로 가족친화적인 ‘스파이X패밀리’에서처럼 힐링과 귀여운 캐릭터들로 인기 몰이 중인 작품들을 보면 변화는 일어나고 있는지 모른다. 이것이 다섯 번째 원인이다.
일본 애니가 극장가까지 점령한 이상 10대~30대에서 이뤄지는 붐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파이가 커졌다고 볼 수 있다.
이로 인해 예전 명작 애니들에도 관심이 뻗치고 있다. 최근 열린 에반게리온 전시회는 성공적인 개최로 보인다. ‘강철의 연금술사’, ‘헌터X헌터’, ‘아키라’ 등 고전 명작들에 대한 수요도 높아지고 있다.
일본 애니계의 다음 과제는 이를 어떻게 이어가느냐다. 여전히 소년 만화 장르를 빌린 작품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국제적인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고 있다. ‘오등분의 신부’나 ‘여친, 빌리겠습니다’ 등은 오타쿠들 사이에서 가장 핫한 작품이기도 하나 대중들과의 거리는 꽤 멀다.
‘귀주톱’ 중 두 작품이나 완결된 상황에서 후발 주자들의 몫이 가장 중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