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당신에게 자매가 있다면, 한 순간쯤은 나의 언니/동생에게 느껴봤을 복잡미묘한 감정의 응어리가 있으리라 믿는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나에게 자매란 더없이 애틋하다가도 콱 쥐어박고 싶게 얄미운 존재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비슷한 감상을 느꼈으리라.
연극 [언더독: the other other Brontë]도 결국은 멜랑꼴리한 자매 이야기다. 이 극을 쓴 작가가 여성이라고 하던데, 분명 자매가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아니고서는 나올 수 없는 극이다.
이 극의 주인공이자 화자는 샬롯 브론테, [제인 에어]의 작가이다. 가장 적극적이고 독선적인 브론테이자 가장 성공한 브론테인 샬롯은 늘 성큼성큼 걷고 행동한다. 행동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것일까, 그는 세 브론테 자매 중 가장 오래 살아남은 브론테이기도 하다.
화자 샬롯은 '이 이야기는 내 이야기가 아니'라고 하다가도 '약간은 내 이야기이기도 하다'라고 말하며 연극을 시작한다. 이후 일종의 변형된 수미상관으로 재등장하는 대사이자 관람 후 내가 천착한 대사다.
여러분이 이 연극을 보았다는 가정하에, 이야기의 끝으로 빨리 감기 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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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을 나오면서 불평했다. '아니, 이러면 극작가가 캐스켈보다 나을 것이 뭔가?' 결국 이 이야기의 주체는 샬롯이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앞으로 진행하는 것들이 전부 샬롯에게 일어난 일들이었고, 그것들이 샬롯의 입으로 이야기되었다. The other other Brontë의 주인공으로 보이는 앤은 결국 샬롯의 입으로 전해진 인물이자 이야기의 객체로 남았다는 인상이 강했다.
앤을 주연으로 한 어떠한 사건이 일어나리라 기대한 나에겐 실망으로 다가왔지만, 함께 관람했던 언니는 조금 다르게 보였었다고 했다. 언니의 눈에 비친 극은 "샬롯의 인생 자체가 앤에게 묶여있는 느낌"이었고, 그렇기에 이 극의 제목이 '언더독'이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때마침 이 멋진 감상을 전해준 것이 나의 자매, 언니이기에 순간 많은 장면이 눈앞을 지나갔다.
앤의 사회 고발 소설들을 판매 중단시킨 샬롯,
앤의 죽음을 더 소설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조작한 샬롯,
앤을 모티브로 삼은 인물을 청초하고 아름답게 그려낸 샬롯.
분명 훨씬 입체적이었을 앤이라는 인물을 납작하게 누른, 소위 '성녀캐해'한 샬롯의 본심을 그제야 알아차렸다.
그래, 이건 누구 하나의 이야기가 될 수는 없었던 거다. 자매란 내 인생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니까.
다름에서 오는 무형의, 때론 유형의 우열이 넘을 수 없는 벽처럼 거대하게 느껴지다가도 그 또한 같은 생각을 하겠거니, 뭉뚱그려지는 미온의 열등감. 평생을 알아 왔음에도 이 사람이 어떤 사고방식으로 이러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머리를 쥐어뜯게 만드는 거리감.
샬롯은 동생이 죽은 후 이 모든 감정들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단순히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 함께 삶을 이겨내고 글을 써온 동지였으니까. 그러니 그저 애처로운, 뽀얀 새앙쥐 같은 '앤'만을 남겨두어야 했던 거다. 그래야 자신의 인생에 변하지 않는 무언가가 생기고, 그래야 자신이 배신한 동지를 외면할 수 있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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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는 기본적으로 나에게 만든 이야기를 주는 사람이지, 나에게 본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은 아니다. 이렇게나 생생한 극으로는 더욱. 그래서 이런 접근이 더 신선하고 내밀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남성 주류의 문학계에서 서로를 위해 연대하고 또 누군가를 배신하는 자매로 당시 여성들의 사회적인 지위를 고발하는 극은 빅토리아 시대와 현대 사회를 동시에 풍자해 내는 페미니즘 작품이기도 하다.
"결국 여자가 파고들어 갈 수 있는 건 하나"라는 씁쓸한 명제는 현대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불문율이기도 하다. 여성의 자리는 대개 상징적이고,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다니는 직장을 벗어나 고개를 돌려보면, 분명 평직원들은 여성이 넘쳐나는 여초 직장인데도 이상하게 이사급은 남성이 대다수다. 분명 함께 일하고 웃는 동료이지만, 몇 년 후에도 이곳에 남아 있을 사람은 남성 동료임을 모두가 알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몇 안 되는 여성 이사들의 화려한 전적은 꽤 많이 알려져 있는데, 남성 이사들은 뭘 해서 거기까지 올라갔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특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음, 분명 이 극은 현대 풍자극이다.
언더독은 이런 의미에서 굉장히 안전한 공간이기도 하다. 남성의 역할이 낮은 비중을 차지하고, 당연한 성격처럼 대놓고 여성 차별적인 폭력을 휘두르기보다는 시대를 대변하는 파도에 가까운 행동을 취한다. 이야기 자체가 살롯과 앤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하는데, 이 극 자체가 "[제인 에어]의 제인은 앤을 모티브로 삼은 인물이 아닐까?"라는 전제를 두고 시작한 극으로 보일 정도로 섬세히 엮인 두 인물이 인상적이다.
과하게 주인공다운 남주인공이 불편하고, 여성 배우들의 긴장감 있는 상호작용을 좋아하는 관객에게 이 극을 추천하고 싶다. 브론테 자매들의 이야기 혹은 그들이 창작한 이야기를 사랑하는 관객 또한 이 이야기를 사랑할 테다.
마지막으로, 자매가 있는 여성에게도 [언더독]을 추천하고 싶다. 내 자매와 나의 이야기가 이렇게 만들어진다면 정말 끔찍하겠지만, 남의 자매 얘기는 늘 흥미로우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