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밀한 결정>은 ‘오가와 요코’의 초기작으로, 알 수 없는 힘으로 인해 많은 것이 ‘소멸’해 가는 섬의 이야기를 담았다. 예를 들어 ‘텀블러’가 ‘소멸’한다면, 텀블러와 관련된 기억뿐만 아니라 텀블러라는 단어, 그 개념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다. 둥근 텀블러를 보아도 원통형의 딱딱한 물체로 인식할 뿐, 액체를 비롯해 무엇을 담는 통이라는 용도를 잊는다. ‘피 한 방울 없이 그려낸 고요한 디스토피아’라는 평가가 매우 적절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다소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신선한 설정인 만큼 많은 생각을 해야 하기도 한다. 책의 마지막 장을 향해가는 수많은 생각 중 일부를 공유해 보고자 한다.
1. ‘소멸’에 관하여
<은밀한 결정>을 읽어가다 보면 ‘자연스러움’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낄 수 있다. 자연스럽게 잊어 가고 늙어 가는 행위, 현상의 중요성을 전한다.
기억은 그저 늘어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시간과 함께 변해가거든. 때로는 사라지기도 하고.
- 오가와 요코, <은밀한 결정>, p.107.
‘소멸’이 진행되지 않는 R씨는 기억을 위와 같이 설명한다. 기억은 자연스럽게 변해가고 사라지기도 한다. ‘소멸’에서 자유롭다고 모든 것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섬의 사람들은 ‘기억할 권리’ 자체를 빼앗겼다. 무언가의 존속을 시간의 흐름에 맡길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은 장미가 소멸하면 강을 붉게 물들일 만큼 모든 장미를 처분해 버리고, 소설이 소멸하면 큰 불기둥이 솟아오를 만큼 모든 소설을 태운다. 어제까지 존재했던 것이 오늘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그 간극으로 인한 혼란까지도 모두 그들의 몫이다. 소멸의 영향으로 직업을 바꾸고 식량과 계절을 잃어도 그들은 현상을 부정하거나 부당하다고 생각할 수조차 없다. 사람들은 예고도 없이 소중한 것들을 앗아가는 현상에 저항하지 않는다. 이러한 저항의 부재는 독자가 단순한 무력감을 넘어서 섬찟함을 느끼게 한다. 소멸의 부당함과 함께 그들이 이루는 체제의 공포를 느낀다.
보통의 ‘자연스러움’을 잃은 이들에게 그렇지 않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밖에 없다. R씨를 비롯해 ‘나’의 어머니처럼 소멸에서 자유로운 이들은 자신의 기억을 다소 수다스럽게 전한다. 마치 사라져가는 것들을 함께 붙들어 주길 바라는 말과 같기도 하다. 그들의 애틋한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러움’의 중요성을 더 체감하게 될 뿐이다. 함께 음식을 즐기거나 추억을 나눌 이가 사라지는 것이다. 너무도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행하고 있는 것들이 모두 불가능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독자는 소멸에서 자유로운 이들의 외로움과 애틋한 마음에 동감하게 된다. 당연했던 것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는다.
2. 소멸의 끝에서 발견한 메시지
이야기는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양상으로 흘러간다. 모종의 이유로 강제되는 사람들과 사회 체제, 숨죽인 사람들. 반복되는 과거가 떠오른다.
소멸에서 자유로운 사람들, 소멸이 진행되지 않는 이들은 ‘잊지 않음’의 이유로 끌려간다. 비밀경찰은 그들을 탄압하고 연행한다. 그 끝이 안전하다면 바랄 것이 없겠지만 끌려간 이들이 주검으로 돌아온 탓에 그들은 숨는 것을 택한다. 어머니의 죽음을 겪은 ‘나’는 R씨에 관한 진실을 알자 곧장 은신처를 꾸리기 시작한다. 비밀경찰에게 끌려간 ‘소멸이 진행되지 않은 자’의 말로를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다시 소중한 이를 잃을 수 없었던 ‘나’는 숨기기를 택한 것이다. 숨고 숨기며, 숨죽인 채 지내는 이들의 모습이 그리 낯설지 않다.
사라지지 않는 마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지요.
- 오가와 요코, <은밀한 결정>, p.155.
무언가를 잃었지만 그것을 되찾고자 하는 이들의 의지는 대개 투쟁으로, 희망으로 드러난다. <은밀한 결정>도 마찬가지다. ‘나’의 직업이자 ‘나’와 R씨의 연결고리였던 소설이 소멸했을 때 R씨는 끝까지 그 끈을 놓지 않았다. 이미 소멸이 진행된 ‘나’에게 소설을 써보라고 설득했고 ‘나’는 그의 권유에 결국 기존의 원고를 완성했다. 그는 소멸이 발생한 이들이 잃은 것, 사라진 것들을 지켜냈다.
다리, 팔, 몸을 비롯해 목소리까지 전부 소멸하고, 신체의 모든 것이 소멸한 이들에게는 사실상 죽음이 찾아온다. 그렇게 되고 나서야 비밀경찰의 기억사냥이 멈춘다. 이에 마침내 은신처의 사람들이 바깥세상에 나오게 된다. 소멸한 ‘나’를 두고 은신처의 사다리를 밟고 올라서는 R씨의 모습과 그 결말은 씁쓸하지만 희망적이기도 하다. 결국 소멸의 진행을 막지 못했지만, 소멸한 것들을 기억하는 이들이 살아있는 이상 ‘소멸’을 향한 투쟁은 끝나지 않는다. 마치 R씨가 되찾아준 ‘나’의 소설처럼, 사라져간 ‘나’도 언젠가는 되돌아올 수 있다는 희망의 씨앗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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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이 발생해도 저항할 수조차 없는 사회의 부조리를 전하는 <은밀한 결정>. 이야기는 부조리를 비판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희망을 내포하고 있다.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일축되는 것들도 투쟁 끝에 바꿔나갈 수 있다. 그들은 잊을 권리만큼 기억할 권리도 가지고 있다. 본인에게 주어진 권리를 지키고 보통의 평화로운 일상을 영위하기 위한 투쟁을 이어 나갈 수 있다. 비록 소멸이 진행되었을지라도 투쟁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고 전한다.
은신처에서 은밀하게 이뤄낸 ‘결정’, 그 희망을 담은 이야기가 많은 이들에게 가닿아 우리의 투쟁이 소멸하지 않을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