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ust by EUNU]
‘그곳은 무엇이든 만들어내는 곳이었지.’
잠시 내려두었던 파도가 내리는 빗살에 철썩였다.
성난 파도가 옛 기억을 싣고 떠밀려온다.
흐르는 운명에 다시 몸을 맡기고서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가장 처음으로 돌아가 보는 거야.
건너오기 전에는 무엇이 있었는지, 왜 건너왔는지.
그런데 아무것도 그릴 수가 없네.
첫 장면을 떠올렸을 때,
나는 이미 차가운 물 속이었어.
제 발로 걸어들어온 것 같았어.
파묻혀 죽어도 상관없다는 듯이.
나의 마지막 계절,
향조차 떠올리기 싫은 그 계절이 버거워 휩쓸렸다.
‘진실’, 그까짓 게 뭐라고.
고작 눈두덩이를 적시던 것이 어느 날 크게 범람했고
나는 그곳을 ‘바다’라 이름 붙였다.
세찬 물결이 어제를 집어삼키고,
오늘의 깊이가 어디까지인지 닿을 수 없으며,
내일의 날씨를 감히 내다볼 수 없는 곳.
이제 영원한 밤 속에 갇혀 끝없이 침몰한다.
아무도 모르는 곳, 나조차도 몰랐던 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