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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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맨 프 어스(2007)>의

결말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생을 꿈꿔본 적 있는가? 혹은 영원의 세월을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본 적 있는가? 그 상상 속 영원의 존재는 어떤 모습인가? 이 세상에 숨겨진 진리를 꿰뚫는 현자, 혹은 능력을 사용해 인류를 구하는 슈퍼히어로가 떠오르지는 않는가? 영생을 두고 누군가는 그것을 신의 능력이라 여기고, 또 누군가는 저주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 그 영원의 존재가 당신 곁에, 평범한 사람의 얼굴을 한 채 앉아 있다면?

 

이렇게 끝없는 사유의 소용돌이로 당신을 초대하는 영화가 있다. 2007년 영화 <맨 프럼 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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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그 이상, 당신의 상식과 이론을 파괴하는 최고의 반전.

 

10년간 지방의 대학에서 교수 생활을 하던 중에 종신 교수직도 거절하고 돌연 이사를 가려는 존 올드맨 (데이빗 리 스미스 분)은 그의 행동에 의심을 품고 집요하게 추궁하는 동료들이 마련한 환송회에서 갑자기 폭탄선언을 한다. 그건 다름 아닌 자신이 14,000년 전부터 살아온 사람이라는 것. 만약에...로 시작한 고백에서 그는 매번 10년마다 자신이 늙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채기 전에 다른 신분으로 바꿔 이주해왔고 이곳에서도 10년을 채웠기 때문에 떠날 수밖에 없으며, 자신이 그 동안 이동하면서 역사 속 많은 인물들과 사건에 관여했다고 주장한다. 맨 처음엔 그저 농담으로 생각하던 사람들이 게임형식으로 질문을 던지고, 존이 논리정연 답변을 척척 해나가면서 각 분야 전문가인 동료 교수들은 그의 주장에 점차 신빙성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급기야 그가 자신이 부처의 가르침을 중동에 전하려다 본의 아니게 예수가 되어버렸다고 하자 존의 주장에 수긍해 주던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동료의 분노를 사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의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없는 정연함에 동료 모두들 괴로워하자 그런 동료를 위해 존은 지금까지의 자신의 얘기가 다 거짓말이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동료들이 다 떠나고 나서 그의 주장에 대한 놀라운 진실이 밝혀지는데...

 

 

   

14,000년을 살아온 자의 고백 – 영화 <맨 프럼 어스>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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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판 좋고 건실한 역사학 교수 존 올드맨은 교직 10년째를 맞이하며 갑작스럽게 종신 교수직을 거절하고 먼 곳으로 영영 떠나겠다는 은퇴 선언을 한다. 그가 떠나기 전날 밤, 존의 송별회를 위해 존과 친밀했던 생물학, 미학, 고고학, 인류학 교수가 존의 시골 오두막에 모인다. 동료 교수들은 안정된 일자리와 10년간의 교직 생활을 모두 버리고 떠나려는 그에게 이유를 캐묻는다. 한참을 망설이던 존은 힘겹게 입을 연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오두막 안에 모여 있던 석학들을 경악케 하기 충분했는데, 바로 자신이 14,000년 전부터 이 지구에서 살아왔다는 것.

 

오랜 망설임 끝에 존은 마침내 입을 연다. 그가 털어놓은 이야기는 자리에 모인 석학들을 경악케 한다. 자신이 14,000년 전부터 살아온, 늙지 않는 존재라는 것. 그는 구석기 시대 유럽 지방에서 태어난 크로마뇽인으로, 약 35세 무렵 자신의 육체가 늙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타인의 생명력을 흡수한다’는 오해를 받아 무리에서 쫓겨났고, 그 일을 계기로 주변 사람들이 자신이 늙지 않는다는 사실을 눈치채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약 10년이라는 점을 파악하게 된다. 이후 그는 10년 주기로 거주지를 옮기고 신분을 바꾸는 삶을 반복해왔다.

 

모두가 그의 이야기를 터무니없는 말장난이라 여기며 반신반의하는 가운데, 고고학 교수 아트는 그가 정신 이상을 겪고 있다고 판단해 명망 높은 정신과 의사 윌 그루버를 오두막으로 불러들이기까지 한다. 이 와중에도 그에게 연심을 품고 있던 미학 교수 샌디는 유일하게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믿음을 보인다.

 

교수들은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쌓아온 지식으로 존의 주장을 반박하려 하지만, 그는 모든 반문에 논리적인 설명을 곁들여 일만 년에 달하는 자신의 삶을 조리 있게 풀어낸다. 그러나 이야기가 이어지던 중, 자신이 예수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는 발언에 이르자 분위기는 급격히 흔들린다. 그 자리에 있던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미학 교수 이디스는 자신의 신앙을 뒤흔드는 그의 말에 크게 상처를 받는다. 이디스를 포함한 그 자리에 있던 교수 전부는 자신이 지금껏 쌓아온 지식과 사상이 몽땅 흔들리는 상황에 큰 혼란과 충격을 겪고, 결국 존은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지금까지 해온 말이 전부 거짓이고 소설이었다고 말한다. 그렇게 송별회는 마무리되고, 동료들은 모두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이때 아직 자리를 뜨지 않은 샌디와 존이 나누는 대화를 듣고, 존을 상담하려 했던 정신과 의사 윌 그루버는 어린 시절 자신을 떠난 아버지가 바로 존이었음을 알게 된다. 윌은 존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지만, 존이 자신의 어머니의 이름과 어릴 적에 키우던 애완견의 이름까지 알자 울음을 터트리며 충격에 빠진다. 존은 그를 어린 시절의 애칭으로 부르며 다정하게 달래려 하지만, 심장병을 앓고 있는 데다 파티 전날 아내를 잃은 슬픔으로 이미 쇠약해져 있던 윌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심장병이 악화되어 존의 눈앞에서 사망한다.

 

실의에 빠진 존은 언제나처럼 이번에도 혼자 떠나려 하지만, 이번에는 자신의 말을 모두 믿어주었고 10년간 자신에게 깊고 오랜 애정을 보여준 샌디와 함께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그렇게, 다시 한 번 긴 시간의 강을 건너기 위한 발걸음을 뗀다.

 

 

 

초월적 존재의 평범한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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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을 누리는 불멸자, 혹은 평범한 인간 수명을 아득히 뛰어넘는 초월적 존재는 미디어의 단골 소재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별에서 온 그대(2013)>의 도민준이나 <늑대소년(2012)>의 철수, 서양 판타지 세계관에서 묘사되는 엘프들과 같은 경우가 그렇다. 이와 같은 작품들에서 영생을 누리는 캐릭터는 보통 초능력자이거나 인간 이상의 존재로 그려진다. 2007년작 <맨 프럼 어스>의 존 올드맨 또한 14,000년을 살아온 존재다. 하지만 그가 보여주는 모습은 여느 불멸자와는 전혀 다르다. 그는 초능력자도, 신도, 외계인도 아니다. 존은 동료 교수들과 농담을 나누고, 고뇌를 털어놓고, 사랑하는 이와 미래를 꿈꾸는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거대한 서사보다 사소한 일상을 살아가는 그에게선, 오히려 깊은 공감이 피어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뒤통수에 눈이 달린 것도 아니고, 벼룩 소리를 들을 수도 없어. 슈퍼맨 같은 능력자가 아니라고.”

 

 

존은 외계인도 전지전능한 신도 아닌 그저 죽지 않고 늙지 않는 인간일 뿐이다. 그가 아는 것들도 인류의 축적된 지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기에 자신의 지식은 당대 인류의 지식 수준을 능가할 수 없으며 자신의 출신과 이동 경로도 교과서를 통해서야 제대로 알았다고 말한다. 모든 것을 알고 태어난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라, 필멸자와 똑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배워온 셈이다.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는 불멸자들은 보통 인간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지적 능력을 갖추고 있고, 오랜 시간 동안 인간적 감정에서 멀어져버린 모습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존은 다르다. 그는 10개 이상의 박사학위를 가졌음에도 스스로의 삶에 대해 끊임없이 고뇌하고, 내면의 공허와 외로움을 감내하며 살아간다. 그런 그의 모습은 오히려 우리와 더욱 닮아있다. 오래 살았다는 사실이 그의 인간성을 앗아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인간적인 내면을 다듬게 만들었다는 역설이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지점이다.

 

 

 

영원한 고독 끝에서도 다시 한 번 사랑을 믿어보고 싶게 만드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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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엔딩은 잔잔하지만 깊은 울림을 남긴다. 그 이유는 단순히 반전 때문이 아니라, 주인공 존 올드맨이 겪는 고통과 그 속에서도 여전히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그의 태도 때문이다. 존은 10년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을 반복하며 살아왔다. 아내와 자식, 친구들과 정이 들어갈 즈음이면, 그가 늙지 않는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또다시 모두를 떠나야만 했다. 그렇게 그는 수없이 많은 관계를 끊고, 또다시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했다. 그 끝없는 순환은 몹시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던 그가 마지막 장면에서 마주하는 인물은 무려 60년 전 자신이 떠났던 아들이다.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 속에서 겨우 끄집어낸 아들은, 존 앞에서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간 듯 울음을 터뜨린다. 그러나 아이였던 그는 이제 존보다 훨씬 나이가 든 노인이 되어 있었고, 그 자리에서 눈을 감는다. 존은 말없이 그 죽음을 지켜본다. 오열도, 감정의 폭발도 없이 그는 그 순간을 가만히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 고요함 속에서 우리는 존이 살아온 지난 14,000년의 시간과 그 안에 쌓인 수많은 고독과 상처들을 짐작할 수 있다.

 

이토록 오랜 세월을 살아오며 그는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었고, 또 셀 수 없이 많은 이들과 작별해야 했다. 그런 식으로 140세기 동안 셀 수 없을 만큼 상처 입었을 것임에도 주인공은 계속 사랑을 믿고 사랑을 찾는다. <맨 프롬 어스>의 결말은 우리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이어진다’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그리고 그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도, 초능력도 아닌, 결국 '사람에 대한 애정'이라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진리라는 것을 보여준다.

 

 

 

밀도높게 완성된 한 편의 사상극


 

<맨 프럼 어스>는 그 안에 내포한 철학도 탁월하지만 그를 뒷받침하는 완성도가 갖추어져 있다.  초저예산으로 제작되어 처음부터 끝까지 존의 허름한 오두막집을 배경으로 하고, 2시간도 되지 않는 87분의 러닝 타임 동안 CG도 한 컷 없이 진행되는 이 영화는 굉장한 흡입력으로 관객을 존의 오두막 안으로 끌어들인다.

 

특히 생물학, 종교학, 고고학 등 각 분야 전문가인 교수들과의 대화는 이 영화의 백미다. 그들은 존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반박하려 들지만, 점차 그의 말에 설득되고 갈등한다. 누군가는 신앙과 윤리의 충돌로 괴로워하고, 누군가는 자신의 학문적 믿음이 흔들리는 순간에도 진실에 다가가려는 태도를 보인다. 이 영화는 일종의 ‘사상극’처럼 철학적 토론이 극의 중심이 된다.

 

또한 영화에는 이따금 주인공 존과 여주인공 샌디가 집 밖으로 나와 대화하는 로맨스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의 삽입은 타이밍이 몹시 절묘한데 그 덕에 관객은 과열된 토론의 긴장감을 해소하며 영화를 즐길 수 있다. 작은 예산, 좁은 공간, 짧은 시간 안에서 거대한 세계관과 철학을 설득력 있게 구축해낸 이 영화는, 아이디어의 힘이 얼마나 강력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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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본 후, 나는 오래도록 한 질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만약 내가 1만 4천 년을 살아간다면, 나는 과연 지금처럼 내 주변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을까?”

 

영생이란 단어는 찬란하지만, 영화 속 존은 지독하게 외로운 존재다. 정을 쌓는 모든 관계가 언젠가는 끝나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고통이 계속해서 반복된다. 그럼에도 그는 사랑을 택한다. 이 영화는 SF명작으로 불리지만, 나에게는 그를 뛰어넘어 삶을 어떻게 견디고 이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진심 어린 고백처럼 느껴졌다. 지독하게 외로운 삶 속에서도 다시 한 번 사랑을, 사람을 믿어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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