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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넌 왜 게임을 해?”

 

이 질문에 답을 하자면 꽤 오랜 시간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단지 ‘재미있어서’와 같은 지루한 대답을 꺼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극악무도한 악당을 무찌르고, 미친 듯이 돈을 벌어도 현실 속의 나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흔히 게임을 두고 ‘의미 없는 것’이라며 비아냥대곤 한다. 나는 이 말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생각한다. 이 넓은 세상 속 모든 의미는 본래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의미 없는 모든 것들에 자신만의 감정과 정의를 덧붙이며 살아간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게임은 오히려 삶과 아주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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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만을 이용해 엔딩에 도달해야 하는 게임 < Jump King >

 

 

‘노가다 게임’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노가다 게임’은 목표 하나를 위해 단순하고 지루한 노동을 반복해야 하는 게임들을 일컫는다. 예를 들어 오직 ‘점프’ 하나로만 엔딩에 도달해야 하는 게임이나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항아리 게임 이 대표적인 노가다 게임 중 하나다. 수백 번 넘어지고, 다시 뛰어오르고, 실수 하나가 몇 시간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리는 그런 게임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이 이 게임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게임은 현실처럼 복잡하지 않다. 게임 속 노동은 현실의 노동과는 달리 단순하고 명확하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주변 상황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며, 뛰어난 전략이나 타고난 능력이 필요하지 않다. 의무감과 성취감은 배가 되고, 가장 현실적인 부담감과 책임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그만두고 싶다면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는 것, 설령 그만두더라도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가장 비현실적인 설정은 오직 게임에서만 가능하다.

 

그리고 이 단순한 경험은 놀라울 정도의 도전 정신과 끈기를 이끌어낸다. 쉽게 시작할 수 있지만, 엔딩을 보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노력을 들여야 하는 게임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이들은 결국 게임을 통해 자신의 끈기와 인내심을 증명하게 된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원동력이 될 수 있는 이러한 경험을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자유롭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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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한 난이도와 플레이타임을 자랑하는 게임 < Getting Over It >

 

 

현실의 문턱은 높지만, 게임에서는 누구나 성취감을 느끼고 인정받을 수 있다. 결국 이 점이 사람들을 ‘의미 없는’ 게임 속 노동의 세계로 빠져들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나는 이러한 경험과 감정이 단순히 게임이라는 가상 세계 속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 믿는다.

 

누군가에게 이런 인정은 성취감으로 인한 삶의 자신감이 될 수도, 깨달음을 통해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폭제가 될 수도 있다. 물론 나에게는 ‘노가다 게임’이 이런 자신감보다는 현실 도피에서 찾는 원동력의 의미로 작용한다. 잠시라도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유일한 믿을 구석이 되는 곳은 게임뿐이다.

 

물론 게임을 끄고 현실 속의 나로 돌아왔을 때, 공허함이나 허무함이 없다고 이야기한다면 그건 분명 거짓말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현실 속에서 받지 못하는 인정이나 성취를 통해 나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고자 한다. 그럼 나는 내가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

 

걱정이나 자책보다는 게임 속의 일에 집중하고자 한다. 움직이는 손과 평화로운 머릿속. 그리고 그런 집중에서 나오는 즐거운 성취는 지겨운 현실 속으로 돌아가는 나를 배웅한다. 그럼 나는 언제든 다시 돌아갈 수 있다. 힘들거나, 지치거나 혹은 심심하거나… 어떤 상황이든 돌아갈 곳이 생긴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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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 작업을 반복하는 게임 < Crime Scene Cleaner >

 

 

의미 없는 행동으로 보이는 단순한 반복은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돌아보는 거울이자, 삶을 나아가게 하는 힘의 원천이 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보면, 현실의 삶도 게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맨땅에 헤딩하듯 무작정 시도하고 노력해 도달하는 게임의 엔딩처럼, 현실에서 우리가 성공이라 부르는 것들 역시 노력과 시간이 있다면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턱없이 많은 변수가 있더라도, 특별한 재능이 없는 누군가도 꾸준함이라는 무기로 충분히 현실을 살아낼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게임은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은 축소판이다. 내가 게임에 ‘가능성’이라는 의미를 부여한 것처럼, 게임은 각자가 자기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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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을 통해 농장을 가꾸는 게임 < Stardew Valley >

 

 

모든 사람은 결국 자신만의 의미를 찾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것을 경험하든, 그 안에서 의미를 발견하느냐 마냐의 문제일 뿐이다.

 

그러니 “넌 왜 게임을 해?”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삶에 있어 의미 있는 것은 없으며, 오직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의미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게임 속에서 내가 찾은 것들은 단순한 성취감을 넘어 현실 속에서 내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준다. 단순히 게임을 하는 이유라기보다는, 게임을 통해 ‘의미 없는 것’에서 ‘나만의 의미’를 찾아나가는 것이 좋다.

 

물론 아직도 나는 내 삶의 의미와 이유를 잘 모르겠다. 어쩌면 평생 그것을 찾아 헤매며 살아갈지도 모른다. 그 과정에서 나는 기쁘기도 하고, 지치기도 하며, 때때로는 아무런 의미도 느껴지지 않는 나날들을 견뎌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해서 삶 속으로 뛰어들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반복 속에서도 언젠가는 또 다른 의미를 마주하게 되리라는 믿음이 있다.

 

게임을 통해 찾은 수많은 의미처럼, 익숙한 실패를 딛고 나아가며, 무의미해 보이는 순간들 속에서 나만의 이유와 의미를 찾아가는 것. 그것이 내가 찾은 삶을 즐기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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