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BJ, 오늘은 얼마나 많은 젊은이를 죽이신 건가요?”
공연을 마치고 한 마디의 물음이 머릿속에 울린다. 60분을 가득 채운 편지의 수취인은 불명이다. 린든 B. 존슨, 혹은 신, 혹은 누구든 먼저 이 편지를 읽는 이다. 연극 〈소년에게서 온 편지: 수취인불명〉(A Letter to Lyndon B. Johnson or God: Whoever Reads This First)은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을 거쳐 뉴욕, 런던, 서울로 이어지며 전쟁과 남성성, 유년 시절과 성장, 죄책감과 희망을 담은 무대를 펼쳐 보인다.
작품은 1960년대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의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당시 1963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 이후 부통령이던 린든 B. 존슨(LBJ)은 대통령직을 승계하고, 곧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 본격적으로 개입한다. 전장의 최전선으로 수많은 젊은이가 향한다. 그 상황을 보는 두 보이스카우트 아이의 시선이 이 극의 출발점이다.
공연은 두 인물 Grasshopper(호퍼)와 Ace(에이스), 그리고 타이어 하나만 있는 무대에서 시작한다. 두 배우는 등장한 순간부터 많은 대사를 동시에 쏟아내고, 무대 위를 뛰어다니고, 굴러다니고, 하모니카를 불며 역동적인 퍼포먼스를 펼친다. 그 에너지가 가히 압도적이다. 한국에서 적지 않은 공연을 보았지만, 이토록 공연장에 가득 넘치는 에너지를 느낀 적이 있을지 생각할 정도였다.
중간에 주머니에서 꺼낸 하모니카로 연주하는 곡은 모두 비틀즈의 곡이다. 사실 이 밴드의 음악은 공연 전부터 흐르고 있었다. ‘I Saw Her Standing There’, ‘Drive My Car’, ‘Hard Day’s Night’ 등으로 이어지는 선곡은 흥겹게 시대적 분위기를 조성했다. 연극이 모두 끝난 후에는 공연이 담은 내용을 강조하는 역할이었음을 깨닫는다.
비틀즈는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밴드 중 하나이지만, 단지 사랑과 청춘만을 노래한 밴드는 아니다. 그들은 1960년대 중반 이후 베트남 전쟁과 미국 사회의 갈등을 직간접적으로 반영하는 곡들을 발표하며, 반전 메시지를 음악에 담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All You Need Is Love’는 전쟁과 폭력의 시대에 던진 가장 단순하지만 강력한 평화의 구호였고, ‘Blackbird’는 인권과 해방의 상징으로 해석되곤 한다.
가사 없이 두 개의 하모니카로 연주되는 곡들은 흥겨운 분위기를 만들기도 하고, 인물의 대사 대신 메시지를 전달하는 중요한 도구가 된다. 어느 순간에는 말보다도 더 확실하게 인물의 생각과 마음이 전달된다. 소년들의 놀이를 더 순수하고 경쾌하게 만들고, 문자로 표현할 수 없는 전쟁의 참혹함이 하모니카의 애처로운 선율로 관객의 마음에 울린다.
연극의 구성은 일직선이 아니다. 전쟁 놀이를 하던 소년의 시간대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시간대가 퍼즐처럼 얽히어 진행된다. 소년 시절의 다양한 에피소드도 전달된다. 호른 이야기, 교회 이야기, 절벽 이야기가 있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소년들이 경험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연극이 진행될수록 이들이 전하는 내용 속에 담긴 메시지를 발견하게 된다.
호퍼와 에이스의 가정 환경과 그들이 들려주는 에피소드는 대비 구조를 이루며 정서를 밀도 있게 만든다. 호퍼는 외동에 수영을 배운 적이 없고, 교회에 가는 할머니와 살면서 일요일마다 함께 교회에 간다. 반면, 에이스는 부모님과 형들이 있고, 아버지는 군인이며 폭력적이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에이스는 터프하고 강한 모습을 보여준다. 호퍼는 에이스의 그런 모습을 배우고 싶어 하고, 둘은 친구지만 사령관과 부대원처럼 보이는 순간들이 있다.
호른 에피소드 - 에이스
귀엽게 묘사되는 소년들이 그 시대로부터 학습한, 믿는 것이 무엇인지가 드러난다. 예컨대 초반에 소개되는 호른 이야기는 10살도 되지 않은 소년 에이스가, 권위적인 아버지를 피해 몰래 대통령을 위해 악기를 연주하는 상황을 담고 있다. 몰래 나오느라 신발도 못 신고 나왔는데, 예정된 시간보다 기차는 늦게 도착하고, 생각보다 순식간에 지나간 기차는 그곳에 타고 있다는 린든 B. 존슨(LBJ)에게 소년의 호른 소리가 전달되었는지 알 수 없게 만든다.
사실 에이스는 그의 소리가 들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알고 있다. 그래서 기차가 저 멀리서 보이는 순간부터 호른을 불기 시작한다. 대통령이 나의 소리를 못 들어도 자신 앞을 지나가는 찰나의 시간 동안 그 모습을 볼 수라도 있기 때문이다. 그 잠깐, 눈을 마주치기도 어려운 순간을 위해 두려운 아버지를 피해 나온 소년의 모습은 국가에 대한 충성심으로 가득 차 보인다.
교회 에피소드 - 호퍼
호퍼의 교회 에피소드는 소년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드러난다. 그날은 매주 할머니와 함께 가던 교회에 호퍼 혼자 가야 하는 날이었다. 늘 앉던 자리에서 정해진 순서에 맞게 있다가 오면 될 줄 알았는데, 그날은 성찬식이 있는 날이었다. 8살부터 참여할 수 있는 의식을 7살 반인 호퍼가 고민하다가 몰래 처음으로 참여한다. 그는 새로운 경험에 설레고 좋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을 가르쳤던 선생님을 마주쳐 자기 입에 있는 성찬의 빵을 들킨다.
소년은 이후 ‘신이 나를 미워하면 어떡하지’라며 두려움에 휩싸인다. 이후 호퍼는 교회에 가고, 기도하는 것을 주저하게 된다. 살면서 할 수 있는 실수에 불과한 이 상황에 걱정에 뒤덮인 모습을 보며, 작은 잘못에 집중하여 삶이나 관계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했다. 호퍼의 이 장면은 자신을 엄격한 도덕적 판단과 죄책감에 내모는 유년기의 마음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연극의 영어 제목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린든 B. 존슨(LBJ)과 신은 두 소년이 위기의 상황에서 찾는 가장 생각나고 필요한 존재들이다. 이 지점에서 다른 전쟁을 다룬 작품과 차이를 느꼈다. 신을 찾는 모습은 낯설지 않지만, 가족보다 LBJ를 먼저 생각하고, 그에게 쓴 편지라는 연극의 주제는 소년들의 정체성에서 국가가 가족보다 우선되는 자연스럽지 않은 위치를 보여준다.
두 사람의 보이스카우트 시절, 겁에 질리는 상황에서 함께한다. 그때 에이스는 호퍼에게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함께 신에게 기도하자는 아이디어를 낸다. 두 사람이 기도하는데, 이때 기도하는 것이 어색한 에이스가 실수로 LBJ에게 기도한다. 소년들에게 그가 신처럼 대단한 존재로 인식되어 있다는 것이 확실히 관객에게 전해지는 장면이다.
에이스는 이후에도 신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서 LBJ를 먼저 찾고, 만나고 싶어 한다. 잠결에 아버지를 보는 장면에서도 실제 아버지가 아닌 LBJ의 모습으로 꿈이 그려질 만큼 마음으로 가장 존경하고 의지하는 존재라는 사실이 놀라웠고 안타까웠다.
보이스카우트 두 소년의 전쟁 놀이는 우리 팀의 결속을 강화하고 적이라고 여겨지는 인물에게 벌레를 이용해 골탕 먹이는 정도에 지나지 않지만, 소년들이 성장하여서 참여한 베트남 전쟁 상황은 잔혹하다. 장난처럼 시작된 표적 연습은 전갈을 쏘다가 사람을 향해 총을 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전쟁에서 장난은 허용되지 않고, 소년들은 죽음 앞에서 애도한다. 멋있다고만 생각했던 군인의 모습은 모두 생사를 결정짓는 상황이었음을 깨닫는다.
전쟁에서 목숨이 오가고 있는 현실에서, 소년이었던 아이들은 어느새 어른처럼 맥주를 마시며 부대의 성과를 함께 축하하는 나이가 되었다. 아직 침을 뱉어 악수하며 맹세하는 어린아이의 마음을 가진 에이스와 호퍼는 전쟁의 현실 앞에서 다른 어른들처럼 어울리려 한다. 그 모습이 무척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가장 아렸던 순간은 죽음을 마주한 상황에서도 이들은 끝까지 국가에 충성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전쟁을 일으킨 어른들에게 분노하고, 자신들의 젊은 날을 마감하는 것에 대해 억울해하는 것이 아닌, 여전히 린든 B. 존슨(LBJ)을 아버지, 신이라 생각하며 그에게 자신의 이름을 전하고 싶은 마음을 내비친다는 것이 마음 아팠다.
하모니카로 연주되는 마지막 두 곡 ‘I Wanna Hold Your Hand’, ‘Yesterday’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소년의 장난스러운 멜로디의 음악은 공연이 진행되며 점차 전쟁의 무게가 담긴 곡으로 넘어온다. 이 흐름을 의식한 이후에 연주되는 곡이라 지금까지 그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비틀즈의 낭만적이기만 하던 노래는 전쟁의 잔혹함과 만나며 관객에게 새로운 감정선을 만든다.
전쟁 중인 현재와 소년이었던 과거를 관통하는 주제는 절벽 이야기다. 소년들이 살고 있는 마을의 끝에 있는 절벽에서 떨어지면 그 아래 거머리가 피를 빨아 먹은 뒤 진짜 남자가 된다는 전설이 있다. 에이스처럼, 군인처럼 남자가 되고 싶은 호퍼에게 이것은 마치 어린 시절을 넘어서기 위한 통과의례처럼 여겨진다.
복잡하고 어려운 길을 따라 올라선 절벽에서 용기 있게 떨어진 소년은 거머리에게 물리지 않는다. 대신 그곳까지 도달하는 동안 생긴 상처와 굳은살을 얻으며 자란다. 절벽 아래 남자가 되는 마법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고, 자신이 이루고 싶은 목표를 향하는 과정에서 이미 성장의 아픔을 겪은 것이다. 이것은 당시 미국 사회에 존재했던 폭력적인 구조 안에서의 성장, 혹은 ‘남자다움’이라는 사회적 학습에 관한 은유다.
공연의 마지막 순간까지 배우들은 에너지를 아끼지 않는다. 한국어는 “감사합니다. 아니요.”만 할 수 있는 두 사람이지만, 무대 위에서 줄곧 관객을 향한 그들의 눈빛은 대사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관객과 눈을 맞추며 배우는 연극 속 소년의 시선을 빌려 관객에게 질문을 건넨다. 공연이 마친 뒤 공연장에 있는 관객은 제3자가 아니다. 우리는 이 편지를 함께 읽는 수신인이며, 동시에 그 편지를 쓴 소년이기도 하다.
〈소년에게서 온 편지: 수취인불명〉은 우리에게 묻는다. 어른이 된다는 건 무엇인가. 남자가 된다는 건 무엇의 규칙을 따르는 일인가. 국가는, 그리고 전쟁은 소년에게 무엇을 남기는가. 비틀즈의 아름다운 음악이 어른들의 전쟁을 관통하며, 공연은 말한다. 아직 이 편지는 답장을 받지 못했다고.
이 편지는 여전히 수취인불명이다. 그러나 무대 위 그 반짝이는 두 소년의 눈동자를 기억한다면, 어쩌면 우리는 이제 그 답장을 써야 할 차례다.